각자의 결정과정
옛날 옛적 연애시절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 지금의 남편이 한국에 다른 일로 방문했었다. 그때 만나서 서울 곳곳을 관광하며 정신없는 2주일을 보냈다. 물론 다 내가 계획해서. 남편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었나. 우리는 또 대판 싸웠다. 내가 니 가이드인 줄 아냐고 왜 아무 계획도 없냐고.
남편은 그때도 똑같이 대답했다. 나는 관광을 안 해도 된다고. 그냥 여유롭게 되는대로 있어도 좋다고. 아마 죄책감이나 미안함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를 관광 가이드로 만들어놓고 왜 상대가 같이 계획하지 않는지 화를 냈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행은 싸우기만 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사진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인다. 그때의 내가 참 좋아 보인다.
그 뒤로 남편은 세 번이나 한국에 더 방문했고, 나도 미국에 세 번을 다녀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고, 나는 나 스스로를 며느라기로 만들었다가 피해자로 만들었다가 희생자로 만들었다가 불행한 아내로 만들었다가 난리부르스를 추었다.
결혼하고 첫 시댁 방문한 뒤,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각자도생 했다. 너는 시댁 나는 친정. 물론 코로나로 2년은 여행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서로 아무도 초대하지 않고 초대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 결혼하고 두 번째로 4년 만에 같이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비행기만 같이 타고 호텔만 같이 쓴다. 남편은 면접, 나는 거기까지 쫓아가서 여행.
나는 더 이상 가이드를 자처하지 않았고, 남편이 비행기와 호텔을 결정해야 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한 4년 동안 훈련받은 성과(?)로 무려 두 달 전에 비행기를 예약했고, 호텔도 예약했다. 장족의 발전이지만 물론 그 과정은 험난했다.
남편은... 지금 준비하는 시험공부며 일이며 최우선 순위로 할 일을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몇 날 며칠을 비행기표와 호텔을 찾아보고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다.
지금 네가 비행기표와 호텔에 몇 날 며칠 동안 시간 낭비한 거, 그거 일당 시급으로 계산해보라고, 차라리 이 시간에 너 공부나 일을 하는 게 돈을 버는 거라고.
비행기표는 가격보다는 최대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돈을 아끼는 거라고, 너무 일찍 도착하면 호텔 하루 더 예약해야 하는 거고, 이상한 시간대에 내리면 그날 하루를 버리는 거라고.
호텔은 어차피 일주일 짧게 머물 곳이고 어느 호텔이던 장단점은 있다고, 호텔이 싸면 위치가 안 좋아 교통비가 더 들 것이며, 어차피 쓸 돈이라고 설득을 해봐도 소용없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고민 고민하다가 결제했는데, 그것도 뭐 잘못해가지고 다시 전화를 하네 마네 전화해서 한 시간을 대기음만 듣다가 끊고... 어휴 답답해서 어떻게 돼가는지 다시 묻지도 않았는데 아마 전화도 까먹고 있을 것 같다.
남편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남편이 왜 이런 답답한 행동을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긴 한다.
나는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긴 해도, 그냥 대충대충 결정하는 편이다. 뭐든 장단이 있겠지 이 정도면 됐어하고 약간 운에 맡기기도 한다. 나는 운이 좋았을까, 그때 그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타이밍 기가막히게 행복한 우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추진력 있게 빨리빨리 밀어부치면 자잘한 일들은 저절로 해결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잘되면 럭키인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지만 사실 단점이 없는 곳은 없다. 어쩌면 나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하고,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본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점이 보이면 얼른 회피하거나 끝내버리게 된다.
남편은... 자신이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최선에 최선에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낼 때 까지 심사숙고한다. 그렇게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거의 모든 일에 그렇게 시간을 들여 결정한다.
내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 상황에 얼마만큼 투자하고 싶은지, 이 환경에서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 등등. 단점에 대비하며, 장점을 기대하며,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을 고려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
그래서 남편은 여행을 가면 그 장소 그 시간 그 분위기 작은 디테일까지 정말 잘 기억하고 그 순간의 감상까지 잘 표현한다. 정말로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감사하는 게 뭔지 보여주는 사람. 여행을 일상처럼 여유 있게 즐길 줄 아는 사람.
문제는 그게 마음의 준비뿐, 실질적인 효용성은 없다. 표를 산다거나, 식당을 예약한다거나 하는... 그렇게까지 세부적으로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그래서 그런가 남편은 별로 후회도 없어 보인다. 진짜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진심으로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을 결정할 때에도 각자의 방식대로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차피 결혼할 건데 빨리빨리 서류 작업해놓고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 둘 다 노력하면 돼지. 사랑하니까 다 잘 될 거야!!!
반전은 내가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남편은 이 생각 저 생각 이러면 어떡하나 저러면 어떡하나 결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현실적으로 생각했겠지?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아가면서, 그 사람이 왜 이런 일련의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해는 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414149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https://class101.net/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744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