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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Mar 19. 2024

정신이 번쩍 드는 빨간 맛

우리 집 일본인 #16

나는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 한국에 있을 땐 조금이라도 맵다 하는 것을 먹으면 금방 땀을 쏟으며 종국에는 음식으로 배가 찬 건지 물로 배를 채운 건지 모를 정도가 된다. 위장 안에 찰랑찰랑 물이 고여있는 느낌, 히- 호- 하- 혓바닥의 아픔을 식혀보려고 쉬익 쉬익 가쁘게 내쉬는 숨, 땀으로 흠뻑 젖은 목덜미. 그 어느 것 하나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매운 음식을 스스로 찾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일본에서는 매운 거 잘 먹고 또 좋아하는 사람으로 통하게 되었다. 일부러 그런 사람인 척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람은 매운 것을 잘 먹는다'라 들은 이들이 같이 밥을 먹으러 가면 빨갛게 버무려진 음식이나 '피리카라(ピリ辛, 살짝 매콤)'라 쓰여있는 음식을 주문해 내게 권했다. 진짜 잘 먹는지 궁금한 것도 있겠고, 얼마나 매울지 몰라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의 맵기를 판별하는 기미 상궁 비슷한 용도도 있을 것이다. 나는 흔쾌히 젓가락을 들어 그 빨간 음식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대담할 수 있는 것은 일본에서 팔고 있는 매운 음식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말하는 매콤의 발 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준으로 치면 나는 이미 '매운맛 마니아'였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가 한국에선 명함도 못 내밀 맵찔이라는 걸. 






일본인들이 '맵다'라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맵지 않았다. (간혹 정말 매운 것도 있다. 맵기 레벨 1부터 10까지 숫자를 매겨 파는 것들은 요주의) 이 호들갑 민족은 혓바닥도 참 호들갑이다 싶었는데 혓바닥이 살짝 고장 나 있는 건 사실 쪽일지도 모른다. 쌈장을 처음 먹은 사람에게서 '살짝 매콤하지만 맛있어'라는 감상을 듣고서야 쌈장에서 매운맛이 난다는 걸 알았을 정도다. 고추장이 들어가니 매운맛이 있는 당연할 텐데 그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매움에 단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쌈장을 먹고 '맵다' 했다던 사람은 남자친구다. 우리 집에 놀러 왔던 그를 역까지 바래다주러 갔다가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은 날의 일이다. 소고기와 그 부산물이 메인인 일본식 야끼니꾸(焼肉, 고기구이)만 먹어온 그에게 삼겹살은 티브이에서 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먹는 것은 처음이라 했다. 회식으로 간간히 한국요릿집에 가고, 내게 매운 것을 먹어보라 하는 내 주변인들과는 또 달랐다. 살짝 이 촌사람, 같은 생각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동네에는 손쉽게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한국 가게가 없었다. 도쿄와의 인프라 차이는 이런 세세한 것에서까지 나타난다. 



그날 그는 처음 삼겹살을 먹었다. 길게 자른 삼겹살 두 덩어리를 비스듬하게 기운 철판 위에 펴서 구워주던 점원은 어느 정도 고기가 익자 가위로 설겅설겅 잘라 위쪽에 줄을 세우고 기름이 내려오는 길목에 양파와 마늘, 김치를 얹었다. 구워지는 소리만큼이나 맛있는 냄새가 금방 포슬포슬 피어올랐다. 


"손바닥 위에 상추를 놓고 삼겹살을 양념에 찍어서 이렇게 싸 먹는 거야. 상추쌈이 너무 커질 것 같으면 처음부터 작게 찢어도 돼."


내가 보여준 샘플은 와아앙 하고 상추쌈을 한입에 쏙 넣는 것이었는데, 나를 따라 상추쌈을 만들던 그는 쌈을 한입에 넣지 않고 두 번에 걸쳐 나눠 먹으며 맛있다고 했다. 이건 그뿐만 아니라 다른 지인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쌈 형식의 취식문화가 없다 보니 쌈을 입 안 가득 넣고 씹는 것 자체를 낯설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쌈 하나도 호쾌하고 복스럽게 먹지 못하고 토끼처럼 앞니로 끊어 눈치 보며 먹는 모습이 참 많은 상황에서 소심하고 찌질해지는 일본인스러운 모습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들의 눈에는 내가 필요 이상으로 행동이 크고 게힌(下品, 품위가 없음)스러운 사람으로 비치고 있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으니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생활양식에 맞춰가며 살았지만 이것만큼은 그들처럼 할 수가 없다. 

 

먹는 방식이야 어떻든 간에 야들야들하고 고소한 삼겹살과 거기에 콕 찍어먹는 쌈장과 기름장을 처음 맛본 그는 삼겹살이 일본어로 뭐냐고 묻더니 귀갓길에 마트에 들러 부타바라(豚バラ, 삼겹살)와 쌈장을 사서 들어갔다. 그리고 집에서 구워 먹으며 사진을 보냈다. 세상에 얼마나 맛있었으면 점심에 먹은 것을 저녁에 또. 거봐, 삼겹살 맛있다고 했잖아. 


뿌듯했다. 


그래서 오늘 그가 구운 김치를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삼겹살의 대히트 이후, 나는 그에게 맛있는 한국의 맛을 알려주겠노라 다짐했다. 이걸 모르다니 너무 안타깝다, 같은 기분도 있었고, 나의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해 그가 우리 집에 오면 종종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사각형으로 접는 김밥, 부추전, 명태전, 깻잎에 싸 먹는 삼겹살, 콩나물 해장국 같은 것들. 먼저번 수육처럼 평소 하지도 않는 걸 했다가 망하는 일 없도록 메뉴 선정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것도 없었다. 어떤 음식에 대해 맛이 있고 없고를 느끼는 감각이 비슷했기 때문에 내가 맛있다 느끼는 것이 그에게도 맛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부대찌개'의 차례가 왔을 때였다. 


사실 부대찌개라기보다는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와 라면 그 사이 어드메 잡탕'에 가까웠다. 이제까지 만든 음식들을 잘 먹어주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빈 냄비를 꺼내 기름을 살짝 붓고 고춧가루 약간과 신라면 분말수프를 넣고 달달 볶았다. 이렇게 하면 한층 더 풍미가 산다. 거기에 김치와 고기를 넣고 마저 볶다가 물을 붓고 스팸과 두부, 버섯, 파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그의 시선에서 동요가 느껴졌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긴장감. 부대찌개 처음 먹어서 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걸까?


"건더기랑 수프는 국자로 뜨고 면발은 이 요리 젓가락으로 뜨면 돼."


시범을 보이며 그의 그릇에 건더기를 덜어주었다. 먹고 또 먹어,라고 덧붙여가며. 그런데 그의 젓가락질에 영 힘이 없다. 비쩍 말랐지만 대식가인 그의 젓가락이 이렇게 깨작깨작 움직이는 건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왜? 맛이 없어?"

"아니. 실은 나 매운 거 잘 못 먹어서."


이미 매웠는지 말을 마치자마자 앞에 놓인 맥주캔을 들이켰다.  

아, 안돼! 매울 때 탄산 마시면!!!!


"辛っ!(매워!)"


입에서 불나, 이 사람아...






"그래도 맛있어."


그는 근성 있는 남자였다. 중간중간 얼음을 물고 찬물을 들이켜면서도 만든 나에 대한 예의로 열심히 자신의 몫만큼은 끝까지 먹어주었다. 찌개 안에 든 신라면도 처음 먹는다 했다. 패키지부터 매워 보여서 먹어볼 엄두도 안 났다고.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매운 게 질색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긴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홀린 듯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제껏 경험한 적 없었던 짜릿한 감각에 그의 오장육부는 전율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 가지 선택에 내몰렸겠지. 


'다 내보내자, 다. 

그리고 모두 다 편안해지는 거야.'


한동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그가 핼쑥해진 얼굴로 돌아와서는 비척비척 침대로 가 무너지듯 누웠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너덜너덜해 지다니. 생각해 보면 내가 그에게 매운 요리를 만들어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맵찔이인 내가 먹을 수 있을 정도면 그도 조금 매워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어쩌면 내 심층심리 안에는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진짜 한국의 맛'의 범주 안에 '일본식으로 타협된 맛이 아닌 진짜 매운맛'도 들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나의 루트가 되는 한국에 대해서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욕심을 들이밀고 말았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고, 많이 먹어본 적도 없는 그에 대한 배려를 잊고 말았다. 서로 국제연애고, 서로가 외국인이지만 그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을 이유로 나는 이 사람에게 일방적인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나의 정서적 배경이 된 한국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았으면 좋겠어.

넌 나를 사랑하잖아.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가 그에게 그리 해주길 원했던 것들을, 그도 그리 하길 원했는지는 확인한 적 없었다. 내가 끊임없이 외쳐오던 사랑 하니까, 사랑하므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말들은 하나같이 내가 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를 사랑하기에 감수해야 할 것들 앞에 붙여 써야 할 말들이었다. 


정말 사랑한다는 건 뭘까.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뭘까. 

그가 내게 해주는 것만큼, 정말 나는 그를 포용하고 있을까. 

당연한 그의 노력에, 나는 당연한 듯이 노력해 왔을까.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다음 화요일. 그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날아왔다. 

한눈에 봐도 신라면이었다.


"신라면이야?"

"응. 한 개씩 팔길래 사 와서 끓여봤어."


양배추와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까지 한알 탁 깨서 넣은 신라면. 


"잘 끓였네. 안 매워?"

"매운데 맛있어. 그때 너네 집에서 먹은 이후로 이상하게 생각나더라고."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그는 그렇게 화요일 저녁마다 신라면을 끓였다. 

한눈에 봐도 야채 썰어 넣느라 너무 푹 끓인 신라면이었지만 이 맛을 잊지 못하겠다며 매주 호르륵호르륵 먹는 그의 미각은 아무래도 이전의 그 난리통에서 알게 모르게 새로운 문을 하나 열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삼겹살이야."


그의 말투는 익살스러웠지만,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몽글몽글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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