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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Mar 12. 2024

첫 집 데이트

우리 집 일본인 #15

일본에서 처음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사람이 말했다.


"여자분 혼자 사실 거면 이만한 곳도 없죠. 역, 슈퍼도 가깝고, 큰길에 파출소도 있어 안전하고요. 좁긴 하지만 평일엔 잠만 자고 나가실 테니 괜찮은 집이에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장점이 많은 집이었고, 안타깝게도 그 모든 장점은 집 밖에 있었다. 침대 하나 놓으면 꽉 차는 원룸은 조금만 어질러져도 방안이 통째로 쓰레기통 같아 보였다. 결국 그 좁음에 질려 도쿄 외곽 치바현으로 이사했다. 통근시간은 늘었지만 집세는 만 엔 싸고 공간은 두 배나 커졌다. 하지만 막차 놓치고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경험을 몇 번 하다가 '그 어떤 상황에도 집에는 들어가고 싶다'는 귀소본능의 발현으로 2년 만에 다시 집세 비싼 도쿄로 돌아왔다.


세 번째 집은 여전히 비좁았지만 미닫이 문을 닫으면 방과 거실로 공간을 분리시킬 수도 있었다. 샤워를 한 다음에도 뽀송뽀송한 화장실을 쓸 수 있고 새하얀 싱크대와 분위기 있는 조명이 달린 집. 미세하게나마 삶의 질이 좋아졌다.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들 그렇게 열심히 버는 거구나. 아직도 사람을 부르기 어려운 비좁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미미하지만 조금은 발전이 있는 나의 삶에 살짝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요 이주간 내동 나가 다니느라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평일엔 집안일을 할 여유가 없어 우에노에 가기로 한 우리의 네 번째 데이트 전에는 그간 미뤄둔 청소며 집안 정리를 하고 나가기로 했다.


참 아둔한 발상이었다. 집 정리에는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청소를 하다 보니 땀범벅이 되어 다시 샤워를 해야 했다. 시곗바늘은 촉박하게 움직였다. 그래도 아직 회생의 기회는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빌어먹을 콘택트렌즈가 눈에 들어가 주질 않는다. 눈이 말라 그런가 싶어 인공눈물을 넣고 씨름하는 동안 눈가의 화장이 스멀스멀 번져갔다. 면봉으로 눈가를 닦고 다시 파운데이션, 다시 셰도우, 이것저것 하는 사이에 깨달았다.


속눈썹을 계산 안 했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사실 그거 하나 안 붙인다고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있었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겉모습에 집착한다 했던가. 미용실에 갈 때도 풀메이컵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중요한 날일수록 화장을 겹겹이 쌓던 시절이다. (그래서 더 실패했다) 그가 좋다고 여긴 것은 외모일리가 없는데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역까지 전력질주로 뛰어간다면 시간에 맞출 수도 있겠지만, 내 손엔 아직 속눈썹이 들려있었고, 화장이 묻어있는 채 만나려면 경보가 최선이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할까(1시간은 기다려야 할 텐데), 장소를 우리 집 근처로 바꿀까(아무것도 없는데).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 라인이 왔다. 좀 빨리 도착할 것 같다고. 하필이면!


일단은 상황을 설명했다. 꾸물대다 늦는 바람에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그 뻔뻔한 고백에 이어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그에게 제안했다. 다시 되돌아와야 하겠지만 우리 집에 와서 낮술이라도 하면서 드라마 보자고.


아, 세상에. 지금 보니 이거 2화의 '어떤 사람' 레퍼토리랑 똑같지만 나는 '그럴 마음'은 없었다. 그저 조급했을 뿐. 지각자는 항상 근처 사는 사람이라지만, 이제 겨우 네 번째 만나는 건데 벌써부터 지각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고 늦지 않기 위해 항상 만반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가끔가다 이렇게 크게 터지... 말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신빙성 없어 보이나.


어쨌든 내 쪽으로 오게 하는 것이 시간을 제일 세이브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놀고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나온 답이 우리 집이었다. 그는 내게 추천받은 '퐁당퐁당 러브'를 보는 중이었으니 그다음 편, 또는 다른 드라마라도 보면 되지 않을까. 1시간이나 멀뚱멀뚱 기다리게 하느니 차라리 그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그런 다급함이 '우리 집으로 가자'라 말하게 했다.


우에노에 거의 다 닿아가던 그도 좋다고 했다. 순식간에 여유로운 입장이 된 나는 버스는 뭘 타고, 어디서 내리고, 어떻게 오면 되는지 설명했다. 대접할 것이 없어 마트에서 만나 같이 장을 보기로 하고는,  근처에 왔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속눈썹을 마저 붙이고 화장도구들이 널브러진 책상 위를 정리하고 메뉴를 생각했다. 이윽고 도착 연락이 왔고 나도 집을 나섰다. 우리 집에서 마트까지는 1분이면 충분하다.




"아, 깜짝이야! 왜 여기 있어?"


그를 만난 것은 마트 앞이 아닌 우리 집 앞이었다. 현관계단을 내려가 한 열 걸음 정도 걸었으려나. 우리 맨션과 다른 건물 사이에 난 도로에서 난데없이 그가 튀어나왔다. 아직까지도 운명의 계략이 계속되고 있다고 느꼈다. 심장이 뛰었다.


"너야말로 왜? 지금 막 나온다면서?"

"그야, 여기가 집이니까."


손으로 맨션을 가리키자 그가 '아...'하고 납득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더 멀리서 오는 줄 알고 근처 구경하고 있었어."


볼 것이라고는 지금 한창 짓고 있는 병원 공사터, 냉동라멘 자판기, 줄줄이 늘어선 단독주택들 밖에 없었을 텐데.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를 걷는다는 건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시골)사람에게도 신선한 경험인 것 같다. 마트로 향한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돼지고기를 삶겠다고 삼겹살 블록을 사고(지금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고기가 익는 동안 먹을 횟감과 삶은 문어, 마른안주, 술들을 차례로 담았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있던 빨간 장바구니를 빼앗아 계산대에 내려놓고 '멀리서 와주었으니 오늘은 내가 쏜다'며 바코드 화면을 내밀었더니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쿄는 이게 되는구나. 처음 봐."


그의 동네는 아직도 현금 사회라 했다. 체인 편의점, 마트처럼 선진화되어 있는 곳이 이제 겨우 신용카드를 쓸 수 있게 된 정도라나. 생각해 보면 도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대응이 장려되며 신용카드나 바코드 결제가 조금 활성화되었을 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금이 없으면 안 됐다. 당장 여기 이 마트도 현금 이외엔 회원가 할인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금 쓰기를 유도하고 있고.


"나는 사람이랑 같이 장 보고, 누가 짐 들어주면서 함께 집에 가고 있는 이게 더 신기한데."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내 생활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까지 전부 오픈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말짱하지만 먹고살기만 바빠 집을 예쁘게 꾸밀 줄도, 아니, 제대로 정리할 줄도 모르고 사는 내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친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집안에 들이지 않았고 식사도 대접한 적이 없다. 입에 풀칠하려고 하나 둘 만들어 보던 요리는 이제 막 레퍼토리를 불려 나가고 있는 정도라 누굴 불러 먹일 처지도 못됐다.  


그런데 지금,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를 집으로 부르고 요리를 대접하려 하고 있었다. 설마 먹다가 픽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고, '맛이 어떨까' 두 근 반 세 근 반 걱정하듯 바라보는 낯간지러운 일 따윈, 상상도 해 본 적 없다.


이성에게 집을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여차하면 안전이별을 고려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는데 상대가 집을 알고 있다면? 그런데 그땐 대체 무슨 깡이었는지 평소의 내 사고보다 그저 지각하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는 안도감이 우선시 되고 있었다.


맨션 엔트란스에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엔트란스 바닥이 광택감 있는 타일이고 조명이 화려해 여기만 보면 꽤 좋은 집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집 이 현관문을 열면, 여섯 평도 안 되는 그냥 작고 난잡한 소굴.

물건이 많지도 않은데도 맥시멀리스트처럼 보이고 마는, 감출 수도 없는 나의 정신없고 불안정한 생활상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그는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그제야 '내가 괜히 일을 키웠구나!' 싶었다. 몇 년 전에 살던 집보다는 삶의 질이 좋아진 자부고 뭐고, 곧 드러날 장면들은 세간 일반적으로 보면 그저 나의 치부에 불과했다. 머뭇거리며 소굴의 문을 여니 머쓱함이 더해져 왔다. 괜히 '자, 어서 오시죠, 나의 아지트에' 같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소파에 그를 앉혔다. 평소엔 집 안에 널어져 있던 빨래들도 빨래가 아닌 것까지 포함해 전부 베란다로 내쫓아 두었다. 그 덕에 조금은 넓어 보이는 우리 집에 그가 앉아있는 모습은 어쩐지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을 콜라주 해놓은 것처럼 어색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이거부터 마시고 있어."


허겁지겁 회와 문어를 썰어 내놓고, 그는 처음 마신다는 참이슬과 맥주를 같이 꺼냈다. 돼지고기가 삶아지는 동안 회를 씹는 것인지 민망함을 씹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술과 안주를 곁들이고, 처음 와보는 동네 어떠냐 같은, 묻는 사람도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고, 대답하는 사람도 열과 성을 다 하지는 않을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수육이 다 삶아질 즈음에는 알코올이 힘을 발휘해 민망함도 뭣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런 양념 없이 물에 삶기만 한 수육을 먹어본 그는 말은 맛있다 하면서도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기니까 맛있는 것 같다' 같은 표정을 지어 씁쓸했다. 사람을 불러 대접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니 앞으로는 밖에서만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한 수육 (無맛)


그런 결심과는 달리, 자의 반, 타의 반 이런 시간들은 당분간 쭉 이어지게 된다. 코로나 정책이 자꾸 바뀌는 바람에 만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그와 함께하는 이 공간은 특별하고 더 따뜻하게 느껴져 데이트 장소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같이 점심 먹고, 동네를 산책하고, 드라마를 보며 저녁을 먹을 뿐인 단조로운 데이트였지만 그 잔잔하고 소박한 느낌이 좋았다. 안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토요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 먼지 한 톨 나오지 않게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사람과 함께한다면 매일이 이렇게 즐거울 거야.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이 집보다는 조금 더 넓고 깨끗한, 해가 잘 드는 집에서 이렇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지내고 싶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딱 그 소망대로 살고 있으니 '말이 씨가 됨 법칙'은 정말 무섭다.




나중에 듣기로는 커리어를 중시하는 어른 여성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맨션 엔트란스까지만 보고 집도 드라마에 나올 법한 으리으리한 일인 가구를 상상했는데 현관문을 열고 나온 집안이 너어무 아담하고 이것저것 정신 사나워서 오히려 인간답게 느껴졌다고.


좋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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