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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Sep 11. 2023

그 남자의 눈물버튼

잘 우는 일본남자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했던가.

태어났을 때 울지 않았던 남편은 받아준 의사 선생님이 명치를 꾹 눌러서 울렸던 첫울음을 시작으로, 세 번은 고사하고 미처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눈물방울을 뿌리며 인생길을 걸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순사 나까무라를 배출한 일본이지만, 엄격한 한국 사회와 비교하면 남편을 포함해 남자의 눈물이 그리 귀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이다. 내 주변 한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남편 본인은 본인이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아닌데? 눈물 많은 사람 맞는데? 엄마 아빠가 도쿄에 왔을 때 잘 챙겨주지 못해 아직도 후회된다는 10년 전 이야기를 했을 때도, 내 옛날 학생들 졸업기념으로 만든 2년 간의 추억영상을 보았을 때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티브이 방송에서 나온 안타까운 사연을 볼 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가 100이면 100 울고 마는 '눈물버튼'이 있다.





아저씨, 왜 거기에


요즘 우리 가정의 마이붐은 에버랜드의 판다들이다.

먼 이국땅에서 한국에 온 판다들. 둘이 와서 다섯이 된 기적의 판다가족.

처음 남편이 판다 영상에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러바오(아빠 판다)의 옛 사육사가 한국에서 지내는 러바오의 VTR을 보는 영상을 보여줬을 때다. 중국방송이라 한국어 자막이 달려 있는 걸 보았는데 마치 러바오인 것 같이 성우가 목소리를 입혔다.


'안녕, 웬신 (러바오의 옛 이름)이에요. 엄마 잘 지내요? 나는 한국에서 잘 지내요. 얼마 전엔 생일이라 미끄럼틀도 선물 받았어. 매일이 너무 신나. 근데 엄마,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받은 선물은 엄마가 만들어 준 그네였어. 엄마 날 잊지 마. 나도 엄마 영원히 기억할 거야. 엄마의 아기판다, 웬신으로부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당연히 직접 기른 사육사 분은 눈물바다가 되는데, 와이 엠 아 크라잉...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어쩌다 본 영상이어서 아직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는데, 이 감동적인 것을 나만 볼 수가 없어 옆에 널브러져 있는 옆지기를 발로 찔러 이걸 보라고 내밀었다.


그리고 웬신인 척하는 중국 성우의 대사를, 일본어로 읽어 주었다.

혼신의 연기력으로.


그리고 남편은, 웬신인 척하는 중국 성우의 대사를 웬신인 척하며 울먹이는 한국인의 일본어 연기를 들으며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 콧물을 흘렸다.


그렇게 부부는 눈물의 아침을 맞이했다.







한동안 남편은 '안녕, 웬신이에요.'만 들어도 눈물이 핑 고였었는데, 너무 많이 놀려서 약효가 떨어졌는가, 이젠 '저리 사라져! 웬신인 척하는 한국인!' 하며 마치 퇴마 하듯 나를 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의 눈물 치트키가 하나 남아있는데,



그 러바오의 딸 푸바오가 사육사 할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 전날의 영상.


수십 번을 돌려봤는데도 아직도 운다. 사육사 강바오가 마스크 아래로 감추고 있는 착잡한 마음이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 절절이 드러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푸바오는 천진난만하게 당근을 먹고, 그가 골라준 댓잎을 먹고, 강바오의 어깨에 척하니 손까지 올려놓는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무심하게 당근을 깨무는 푸바오와 대비되는 강바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올려놓은 푸바오의 털뭉텅이 같은 손이 짠하다 한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다 큰 성인 남자가 볼 때마다 울 정도인가 기가 막히기도 해, 일부러 울리고 싶을 때 조용히 유튜브를 켜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또 트냐고, 이젠 울지 않는다 하면서도 어느새 훌쩍훌쩍 소리가 나 돌아보면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좀 복잡해진다. 밖에서야 이렇게 질질 짜고 다니진 않겠지만,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이 풍진 세상살이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이 친구의 우산이 되어줘야지 싶으면서도 아니지! 가장인 얘가 나의 우산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 남자든 여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하다.  


어느 날은 이 영상을 보고 눈물 콧물을 쏟다가 벌게진 눈으로 '나는 혹시 전생에 판다였을까? 왜 판다를 보면 눈물이 나지' 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남편은 올해 초, 일본에서 태어난 판다 샹샹이 중국으로 반환되었을 때에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샹샹은 돌아갔지만 그 엄마 아빠인 신신과 리리는 아직 일본에 있고, 샹샹의 쌍둥이 동생들인 샤오샤오, 레이레이가 우에노 동물원을 지키고 있는데 정작 그들에게는 시큰둥하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판다는 오직 용인 에버랜드의 삼성직원들 뿐이다.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 전생에 판다인 게 아니라 전생에 용인 바오일가의 선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은데. 


"다음에 한국에 갈 땐 에버랜드 가고 싶어"

"나도. 근데 너 가면 감격해서 막 울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창피하니까 떨어져서 걸어라"






그러던 어느 날, 에버랜드 유튜브 계정이 골드버튼을 받았다는 영상이 올라왔다. 푸바오에게도 골드버튼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흥미롭게 클릭했다. 


우리는 평이하게 영상을 시청했다.

판다뿐 아니라, 기린, 호랑이, 반딧불 등 다양한 동물들을 돌보아 주시는 사육사 분들, 기념품 샵 직원분들, 조경사 분들, 어트랙션 운영 직원분들, 레스토랑 조리사 분들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에버랜드와, 에버랜드에 놀러 온 수많은 아이들의 꿈을 지탱해 주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생각이 미치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해지며, 어.... 어라...?


"뭐야, 우냐?"

"아니 감동적이잖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의 꿈을 지탱... 으흑흑"

"... 아무래도 정신이 좀 아픈 게 틀림없어"


남편의 눈물버튼은 푸바오인데, 나의 눈물버튼은 에버랜드 레스토랑 직원분들이었다.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직원들에게 약한 부부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 남편의 눈물버튼을 양모펠트 인형으로 만들어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커밍 순.


실은 완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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