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빛,
가을 단풍을 앵글에 담아

by 뚜벅뚜벅

매주 8-10분짜리 아침 프로그램에 나갈 코너를

담당할 때였다.

일상에서 10분은 유튜브 영상 하나만 봐도

금방 지나치는 시간이지만,

방송에 나갈 10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꼬박 매달려야 간신히 제작이 가능하다.

먼저 각 코너별 성격에 맞는 아이템을 찾아

촬영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아이템 기획안을 만든다.

이후 아이템이 확정되면 하루 이틀 만에

촬영에 필요한 출연자를 섭외하고

촬영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아침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은

외부 제작사 5-6곳이 요일을 담당해서 제작을 했는데,

제작사 입장에서는 매주 받는 시청률이

다음 계약의 중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에

경쟁이 심했고 더 핫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 같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현장을 나간 피디는 2-3일 촬영을 하며

매일 저녁 촬영 원본을 보내줬다.

작가는 그 원본 파일을 보며

글로 옮기는 작업(프리뷰)을 하는데

이유는 편집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꼬박 하루 밤을 새워 편집해야 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출연자의 인터뷰 내용 중 어떤 부분을 활용하면 좋을지

미리 표시해둘 필요가 있었다.

영상을 초단위로 표시하며

출연자 인터뷰를 받아 적다 보면 ‘속기사를 해볼까?’

싶을 정도로 손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숙련된 작가들은

필요한 인터뷰를 빠르게 골라내고

편집구성의 방향을 잡아 나간다.

완성된 영상을 받아 그에 맞는 원고를 쓸 때까지

이런 고단한 과정들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내 노트북 키보드는 성한 날이 없었다.

키보드 필름을 쓰다 보면 곧 구멍이 나고,

스티커로 때워보지만 그마저 다 떨어지고 지워져

결국 키보드만 교체하는 식이었다.

담당 코너가 사건사고, 시의성 있는

뉴스의 뒷이야기나 심층 취재가 필요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키보드를 더 거칠게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기계적인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담당 피디가 촬영 원본을 주며

영상을 끝까지 봐달라고 부탁하고 웃음 지었다.

“현장에서 뭐 건졌어요?”

사무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고 난 뒤

영상 프리뷰를 시작했다.

‘왜 이렇게 많이 찍은 거야?’

피로와 불만이 뒤 섞인 채로 프리뷰를 마칠 때쯤

담당 코너에서는 보기 힘든 예쁜 야외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들리는 피디의 음성

‘고생이 많아. 보너스 영상이야’...

순간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영상과 씨름하고 있을 작가를 위해

지금 밖의 풍경을 담아준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조금 전까지 영상을 보며 투덜거렸던

나의 태도가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보너스 영상이 도착했고

이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보는 추억이 됐다.

“나는 이런 사람이랑 일 해봤다!

어디 이런 사람 또 없나요?”를 외치며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가끔 일에 치일 때면 그의 배려가 떠오른다.


나는 동료에게 기운을 주는 사람일까,
사무적인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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