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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P Sep 02. 2024

'우려먹기 끝판왕' 은하영웅전설, 스페인 왕가 근친혼

(1부) 볼레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시녀들

# 작가는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해


‘은하영웅전설’이라고 ‘1,500만 부 판매돌파’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일본의 유명 SF소설이 있다. (지금은 더욱 늘었을 것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과 전쟁’을 다뤘다 하여 ‘스페이스 오페라’라고도 하는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양 웬리라는 두 명장을 필두로 하는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간의 치열한 정치•군사적 격돌이 매력적이다.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라는 두 걸출한 캐릭터 외에도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아 그 인물들이 펼치는 온갖 향연을 가볍게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지만, 이 소설의 진가는 그들이 벌이는 전쟁보단 그 전쟁을 촉발케 한 근간, 정치구조에 대한 단상에 있다. 저자 다나카 요시키는 끊임없이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를 시도했는데, 제법 묵직하다.

 

 

‘부패한 민주주의는 독재정치라는 화초의 온실이다’, ‘정치가가 뇌물을 받아도 이를 비판할 수 없는 상태를 정치적 부패라고 한다’, ‘정치권력과 매스컴이 결탁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비판과 자정능력을 잃고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게 된다’ 등 지금의 우리네에게 대입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통찰을 세련된 문장으로 구사해 냈다.

 

 

단순한 오락소설로 치부할 수 없는 그 퀄리티는 공전의 히트로 이어졌고, 일본 특유의 ‘원 소스, 멀티 콘텐츠’에 따라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심지어 연극으로까지 보폭을 넓히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게임은 6편까지 PC게임으로 발매된 거에 더해, 온라인게임, PS게임 등 다양하게 재생산되었고, 애니메이션은 이미 165편이라는 최장편으로 제작이 된 바 있음에도 최근 ‘Die Neue These’라는 리메이크로 다시 제대로 우려먹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작가가 너무 자본주의의 맛을 알아버린 건지, 이러한 쾌거에 반비례하듯 집필속도는 악마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인 ‘아르슬란 전기’ 16권 완결에 무려 31년, ‘창룡전’은 권수도 줄었는데 15권 완결에는 33년이라는, 이걸 과연 연재라고 볼 수 있는 건지 싶은 흠좀무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역시 예술은 배고파야 그나마 좀 굴러간다는 걸 몸소 실천해주고 있다.


 

애초에 집필속도가 느린 작가였는가. 은하영웅전설의 경우, 14권을 6년 8개월 만에 완결 지었다. 당시 대학생이었기에 이걸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나. 아르슬란 전기나 창룡전 또한 모두 초창기에는 빠른 집필속도를 보이다가 현저히 폼이 떨어졌던 걸 보면(창룡전 13권과 14권의 발매 간격은 16년), 그냥 생계형 작가가 배가 불러서 그런 거 같은데, 그래도 뭐 어찌 됐건 은하영웅전설은 완결 났으니까 됐다.

 


개인적으로 처음 은하영웅전설을 접한 건 게임이었다. 예전엔 게임잡지에서 번들로 줬었던 ‘은하영웅전설 4 EX plus’였는데, 한 국가를 고르는 게 아니라, 특정 인물 하나를 골라서 플레이하는 게 입에 맞아 즐겨하곤 했었다. 아무튼 이때 ‘은하제국’ 측 인물을 고르게 되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게 바로 프랑스 음악가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다.

 

 

 

 

은하영웅전설로 스타트를 끊은 이번 포스트에선 먼저 음악으로 넘어가 모리스 라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다음, 다시 미술로 넘어가 벨라스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리스 라벨과 벨라스케스의 접점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마르가리타 왕녀를 초점으로 하여 그녀의 집안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고귀한 혈통 ‘푸른 피’에 대한 집착이 결국 자신들 합스부르크의 씨를 말려버린 비극적 역설까지, 한번 제대로 우려먹어 보자.

 

 

 

 

# 볼레로, 꽃봉오리가 만개하듯

 

모리스 라벨은 드뷔시와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두 음악가는 ‘인상주의에 얼마나 몰입했는가’로 구분되는데, ‘더 클래식’의 저자 문학수는 둘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드뷔시의 음악은 굉장히 몽환적이고 불투명합니다. 반면에 라벨의 회화는 보다 투명하고 명확하지요. 드뷔시의 음악이 일부러 윤곽선을 흐릿하게 뭉개놓은 그림이라면, 라벨은 좀 더 분명한 색감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대상의 윤곽을 잡아주는 ‘선’이 명확하지가 않은 경우가 많다. 선 대신 색과 색을 병치시켜 대상을 묘사하는 느낌이다. 드뷔시가 인상주의에 매료되어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과 자주 어울리며,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인상주의가 그림에서 ‘선’을 내려놓은 것처럼, 드뷔시는 음악에서 명확함을 내려놓은 것이 아닐까.

 

 

인상주의라고 다 ‘선’ 없이 흐릿한 건 아니다. 에드가 드가는 선과 데생을 강조한 신고전주의 거두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와의 개인적인 연으로 그림에 명확함이 있다면, 생계고에 시달리다 못해 당시 주류 미술로 잘 팔리던 신고전주의로 갈아타 경제적 자유를 실현한 르누아르의 그림에서도 상당히 명확한 면이 있다. 친구의 신분상승에 자극을 받은 모네, 시슬레 등도 결국 타협을 했다는 건 차마 안 비밀.

 

 

‘스위스 시계공처럼 명확하다’라고 평가받은 모리스 라벨에 대해서도 인상주의 화가임에도 여전히 명확함을 살렸던 드가와 르누아르를 토대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사실 활자로는 말을 하겠는데, 실제 음악에서 이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확 와닿지가 않는 게 있는데, 인상파 그림을 끌어와 살펴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모리스 라벨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볼레로’를 운 좋게 공연장에서 직관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관현악곡과는 다르게 참 보는 맛이 있었다.

 

 

우선 드럼을 오케스트라 중앙에 포진시킨 뒤, 시작부터 끝까지 똑같은 자세, 똑같은 템포로 두드리는 고문을 가한 다음, 그 소리 위에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등 다양한 관악기들의 독주를 하나씩 얹는다. 그러다가 관악기 모두가 달려들어, 소리를 풍성하게 쌓아 올리고,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이번에는 피치카토로 소리를 깔아주던 바이올린, 비올라, 더블베이스 등이 차례차례 가세하여 어느새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로 완성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간단한 멜로디를 반복하되, 여러 악기들의 소리를 조금씩 덧대어 그 멜로디를 풍성하게 쌓아 올리는 음악인데, 이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는 중독성이 쩌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다. 거기에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로 접해보면, 하나하나 꽃잎이 펼쳐지다 마지막에는 꽃이 만개하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 딴 건 몰라도 이 곡만큼은 한번쯤은 직접 볼 것을 종종 말하고 다닌다.

 

 

‘볼레로’는 라벨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한 슬럼프를 넘어선 뒤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곡으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등이 있다, 이 곡은 20세기 위대한 철학가로 거론되는 오스트리아 출신 분석철학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자, 라벨과 마찬가지로 제1차 대전의 피해자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한 맞춤곡이다.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라는 두 저작이 각각 ‘비엔나 학파’과 ‘일상언어학파’를 탄생시켰을 정도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굇수였지만, 사실 그는 음악적 재능이 빼어나 어린 시절 지휘자를 꿈꿨다고 한다. 그리고 예체능은 역시 노력보단 재능의 영역이라는 듯, 비트겐슈타인의 형 또한 피아노 실력이 출중했는데, ‘모차르트의 재래’라고 불리며 오스트리아 원탑의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막 재능이 만개하려던 찰나에 1차 세계대전이 터진 것.

 

 

군에 복무해야 했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오른팔에 총격을 당해 그 팔을 절단해야 했다. 사실상 피아니스트로선 사형선고를 당한 셈인데, 긴 시간 방황 속에서도 결국 피아니스트로서 다시 일어서고자 유명한 작곡가들에게 자신을 위한 맞춤곡을 의뢰한다. 그에 화답하여 나온 게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전 세계 피아니스트를 죽여놓는 그 흉악한 난이도에 파울 본인도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결국엔 초연에 성공하여 의지의 피아니스트로 우뚝 섰다.

 

 

라벨은 이 곡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이 곡은 두 손을 위한 곡보다 그 직조가 얇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가장 둔중한 협주곡 스타일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끝나면 곡은 일변하여 재즈 스타이롤 바뀝니다.’ 실제로 공연을 보면, 보통의 클래식 음악들에 꿀리거나 모자라다는 인상 없이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만 죽어날 뿐.

 

 

라벨의 또 다른 명곡으론 옛 스페인 궁전에서 어린 왕녀가 춤추던 장면을 떠올리며 썼다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다. 여기서 파반느는 공작새를 뜻하는 ‘Pavo’에서 파생된 어휘로 공작새가 걷듯 느릿느릿 추는 우아한 2박자의 궁정 무곡이라는데, 사실 너무 서정적이고 애달픈 피아노곡이라 이게 무곡이 맞는 건가도 싶다. 그래서 라벨도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느’가 아니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가이드를 남긴 걸지도.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고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이 있음에도 모종의 트라우마로 음악을 멀리하게 된 소년 ‘아리마 코우세이’가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미야조노 카오리’를 만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해 나간다는 이야기로, 클래식 음악에 청춘 성장물을 잘 녹여냈는데, 마냥 그렇다고 밝고 활기찬 건 아니다. 왜냐하면 카오리는 얼마 못 가 죽는 시한부환자기 때문이다.

 

 

시한부 환자라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를 쓴 애니메이션임에도, 이게 명작으로 평가받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빼어난 연출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의 코우세이 등의 내면묘사는 마치 그 음악과 한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압도적인 몰입감을 제시하는데, 별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백치 아다다 마냥 입 벌리고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도 있다.

 

 

밤하늘의 수 놓인 수많은 별들처럼 그러한 면면이 애니메이션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하는데, 그중 하나가 이야기가 종막에 다다를 즈음, 코우세이가 시시각각 엄습해 왔던 카오리의 죽음을 직접 목도해야 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코우세이가 카오리의 병실에 들어섰을 때 흘러나온 배경음악이 바로 이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벨이 제목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만, 어떤 느낌으로 그가 이 곡을 작곡했을까를 상상해 볼 때, 이 애니메이션을 곁들여서 생각해 봐도 나쁘진 않겠다 싶다.

 

 

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라벨이 스페인의 유명한 바로크 시대의 화가인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벨라스케스는 평생을 스페인 궁정화가로 지내며 왕실에 관한 여러 그림을 남겼는데, 그 그림들의 대상으론 이 곡의 주인공으로 언급되는 스페인 마르가리타 왕녀도 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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