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CLS (전문 심장소생술) 교육을 받은 의사이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고, 숨길을 다루는 의사가 되고 싶어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비인후과가 수술을 하는 과인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비인후과가 얼마나 많은 암환자들과 중환자들에 개입을 하는지를 알게 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상황에 맞는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지는 일반인보다는 잘 알고 있어도, 의료진이 아닌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할 때면 이비인후과의 분과 중에 하나인 두경부외과 의사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그 급박했던 날의 상황에도 그랬다.
피가 흥건한 그 속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제가 의사입니다! 상황 아시는 분은 설명 좀 부탁드려요!"
50대 환자 분이 쓰러져 있고 머리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다. CPR을 하고 계신 분을 일단 멈추게 하고 환자를 먼저 살폈다. 실제로 심정지가 생긴 후에 다시 돌아온 맥박이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가락으로 한자 손목, 목 등 맥박을 살폈을 때, 꽤 강한 혈압이 규칙적으로 느껴졌다. 처음부터 심정지의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잠시 주변을 조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후 귀를 대고 호흡소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Obstruction (기도 막힘)의 징후는 없는 것 같았다. 환자는 불러도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급한 대로 핸드폰의 라이트를 켜고 환자의 눈을 강제로 열어 빛을 비추어 동공반사를 살폈다. 빛이 들어가자 양쪽 눈 모두 미세한 움찔거림이 느껴졌다. 정상 반응이고, 뇌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다. 바로 shock position을 취했다. 주변 분들에게 부탁해 양쪽 다리를 가슴보다 높게 올려달라고 말씀드렸다.
환자는 술을 드신 상태였고, 어쩌다 보니 뒤로 넘어지며 머리부터 부딪힌 후 피가 나고 의식이 없었다고 설명을 들었다. 환자의 vital이 비교적 안정적인 것을 확인한 후 상처 부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두피는 충격으로 인해 찢어져 있었다. 많은 피가 흐른 것은 두피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손수건을 빌려 압박하며 지혈했다. 새빨간 피가 내 양손에 묻었다. 이 상항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두 개 내 출혈일 것이다. 의식이 돌아오는지 119가 올 때까지 확인해야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으으' 환자가 입으로 처음으로 소리를 내었다.
"ooo님 맞으세요?? 정신 드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o,, o,, o이요... 무슨 일이죠??"
환자는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보였다. 때마침 119가 도착했다. 가지고 오신 거즈와 압박붕대를 사용해 머리 쪽 소독을 한 후 출혈이 없도록 빙빙 감아서 지혈을 마쳤다. 환자 상태를 얼른 119 대원에게 인계해드리고 안전하게 차로 이송하게 해 드렸다. 다행히 근처 병원 응급실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전화도 한 통 미리 하였다. 누가 갈 것이고, 상황이 어땠는지, 뭘 더 봐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었다. 떠나는 구급차를 보니 긴박했던 상황이 지나고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환자의 직장 동료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 명함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멈칫거림이 생겼다. '알려주어도 될까?' 그러나 한 번 개입을 하기로 맘먹은 이상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00 대학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김민규입니다. 아무 일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병원 고객만족팀으로부터 익명의 편지가 도착했다.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과 함께 환자 분은 무사하시다는 소식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의사가 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병원에도 알려져 여러 칭찬도 듣는 일도 생겼다. 그러나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내 무의식 속 어떤 생각이
그 상황을 보고서 찰나의 멈칫거림을 만들었는지, 용기를 내지 못할 수도 있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내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책과강연#의사가되려고요#김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