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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May 03. 2021

우울한 심정으로 들어가면서

제가 사랑하는 심리과학이 당신의 마음 세계에 의미 있기를 바라면서


들어가면서.


어려서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가수가 노래 제목따라 간다고 하듯, 하물며 제 이름에도 ‘글 서(書)’ 자가 들어가니깐 나서부터 글과 인연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깊은 고민에 잠길 때,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과 강렬한 감정을 동반한 아이디어들이 스쳐 가는데, 막상 “그래서 뭐가 걱정인데?” 라고 물으면 내면에 느끼는 감정만큼 생생한 언어로 표현하기 곤란할 때가 참 많습니다. 좋고도 싫고, 설레고도 불안한 마음을 어떤 간결한 문장으로 걸맞게 쓸 수 있을까 고민에 잠기고, 그래서인지 아직 문장화되지 않은 생각을 글로 적는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의 효과가 좋은 것도 이 ‘글’이 가진 힘 덕분인 것 같습니다.  

    

심리학이 좋아서 대학 전공으로 택했고, 졸업 직후 직장 생활을 시작해 돈 버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학교로 돌아와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뜻밖의 이른 시기에 귀중한 기회를 얻어 얼마 전 완벽주의에 관한 책을 공저하면서 저는 이 때에 제가 사랑하는 심리학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글로써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직접 대면하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범주 이상의 불특정 다수 많은 분들께 어떤 감명을 줄만한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감명이 되는 멋진 글, 더 나아가 좋은 글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 했습니다. 상담심리학도가 말할 수 있는 좋은 말과 글은 무엇일까? 고민에 잠겼고, 살아오면서 제게 때맞춰 위로가 되었던 타인의 말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과거 기억들을 헤치다 이르게 된 결론은, 감정을 터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정에 절묘하게 닿아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위로는 말 자체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에 의한 말인지, 대상도 중요하고요.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떤 표정과 뉘앙스로, 심지어는 대화가 오가는 장소의 분위기도 한 몫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조건이 따라줘야 하는 멋지고 감성적인 위로는 자신이 없지만, 때론 투박한 연구실의 과학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살 날이 무한대인 것처럼 젊고 활기찼던 청년이 어느 날 청천병력과도 같은 병환을 맞닥뜨리게 되면 충격과 함께 사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어째서 하필 나에게 이런 재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고야 만 것인지 분노에 휩싸이고요. 불같은 분노가 지나간 자리엔 깊은 실의와 우울감이 찾아옵니다. 한 차례 순차적인 감정의 파도가 잦아들면, 자신의 병에 대한 책과 정보를 무섭게 독파해나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몸으로는 병을 아직 이겨내지 못했지만, 관련한 모든 것을 알고 체화해서 머리로 그 병을 정복하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홀린듯한 시간이 흘러 이제 웬만큼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은 경우 약간의 평정심을 되찾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다음 단계를 계획합니다.     


마음의 병환도 신체의 질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상에 폐해를 끼치고 이전과 같이 하루를 감당해낼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주변에 우울하다고 토로했을 때 따뜻한 말과 위로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힘이 되었겠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모르는 타인인 제가 여러분의 실제 삶에 사랑하는 이들만큼 애틋하고도 감동이 되는 감성적 위로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심리과학적 사실들이 여러분의 마음 세계, 분투의 과정에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이 깊어져 현재와 미래가 막막할 때, 

불면증에 시달려 어느 날 밤에는 외딴 우주에 떨어진 먼지보다 작은 존재가 된 듯한 외로움이 사무칠 때,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실체 없이 느껴진다면,

대한민국 몇 퍼센트 동년배가 우울이나 불면증을 가지고 사는지, 그리고 어떤 방안들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그들의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검증되었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심리학이 당신의 마음 세계에 어떤 의미가 되기를 바라면서,

투박한 사실들을 일상적인 글로 전하고 싶습니다.     






모란 (김서영)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심리학과 상담심리학 전공 박사과정 재학 및 수료  

미국 Stony Brook University 심리학과 B.A. 졸업 

연구관심: 비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 심리질환과 대인관계 


논문: 

  Depression contagion in romantic relationships: A systematic review (인간연구, 2020)

  자해 청소년에 대한 대중의 반응 및 태도: 네이버와 다음 뉴스 댓글을 중심으로 (재활심리연구, 2020)

  초기 성인기 자해행동 (재활심리연구, 2021)

  Review of Perfectionism Research from 1990 to 2019 Utilizing a Text-Mining Approach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021) 


저서: 

  <네 명의 완벽주의자> 공저 (흐름출판, 2021년 2월 출간) 


출연 영상: 

  [작가들의 이슈화] 네 명의 완벽주의자 (북피알미디어 Youtube) - https://youtu.be/AiRSvzqei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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