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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뀰사마 Jan 04. 2022

21.Dec.2021 ~ 26.Dec.2021

럭셔리한 회사 라이프를 포기한 방콕러

21. Dec. 2021


마침내 복용량을 늘린 바이반스를 약국에서 사왔다. 날이 꿉꿉하고 덥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멍하니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고. 나는 내 ADHD에 대해서 30대 이전에는 별로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다. 집중력이 산만해도 공부든 일이든 뭔가 분명한 목표구간이 있으면 거기에 몰아일체를 해서 귀신들린듯한 몰입도로 다른 일들을 다 재끼고 하나에 하나를 조져버리는 패턴으로 어째저째 잘 지내왔기 때문이다. 


30대가 되고 마테크 아키텍트가 되면서 클라이언트와 면대면으로 이야기하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다른 개발자들과 일정을 맞춰 조절하며 내 일을 분할하고 분담하는 시점이 오면서 ADHD가 심각하게 내 삶을 망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하나 딱 정해진게 있으면 그걸 끝장날때까지 조지는건 잘하지만 그냥 무난하고 일정하게 기력과 시간, 꾸준한 결과물을 작은 스케일로 균등하게 내는 건 정말 절망적인 수준이었고 거기에 가장 일조한게 당연히 ADHD 그리고 내가 성장하면서 ADHD에 특성화 된 작업 패턴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ADHD 가 나쁘다고도 생각 안하고 장애이거나 어디 모자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인간은 워낙 다양한 것이고 그 장단점을 잘 살려서 활용하면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다 여전히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ADHD러들의 특성은 정말 결과를 뽑아낼 때 과하게 모 아니면 도이고 회사에서 일정하게 내 멘탈과 에너지를 항상 외부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균등하게 조정하고 결과를 뽑아내는 시스템에서는 정말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의 정체성을 그 집단의 특성 시스템에 끼워넣을래야 넣을수가 없다는게 문제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누굴 탓하랴. 애초에 여성의 ADHD는 남성에 비해 양상이 달라서 발견도 힘들고 심지어 나의 성장기에는 ADHD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는것을. 


기분이 몇달째 저조해서 왜 일까 고민하다가 너무 오랜만에 로제와인과 떡볶이, 아이스크림을 섭취했다. 한동안 나의 식단은 그래놀라,그릭요거트,그리고 과일톱핑으로 매일 채워왔지만, 아돈기브어쉿 나우. 


내일은 좀 더 알찬 하루를 보냈으면 하며 술의 기운을 빌려 잠을 청했다. 


22. Dec. 2021


아침부터 너무나 울고 싶었다. 내 자신이 한심해서. 나는 어째서 내 인생의 나 자신조차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일까.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뭐 얼마나 된다고 왜 나 자신조차 내 맘대로 계획적으로 살수 없을까. 절망감에 아침부터 혼자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그렇게 아침부터 멘붕하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사람도 만나기 싫어서 회사에서 주최하는 크루즈 송년회도 별 핑계를 대고 혼자 불참했다. 언제 내가 시드니 달링하버에서 크루즈를 타며 송년회를 하겠냐마는 도저히 맨정신을 유지하며 소셜라이징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일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 그건 허구다. 아니 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사실 크루징을 불참한다고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혼자 가만히 있다가 급습한 패닉어택을 도저히 지하철과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회사 멤버들 옆에서 침착하게 가라앉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멍하니 소파에 앉아 그냥 하염없이 울었다. 올해는 왜 이런 적이 많을까? 재택근무를 새삼스레 작년에도 안 한것이 아닌데 올해 유독 이렇다. 내년엔 좀더 나은 내가 되길 바래본다. 


오늘 본디 복싱수업가서 울분을 풀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는데 아침부터 멘탈이 저렇게 와장창이라 그러지 못했다. 뀰사마야, 다짐했잖아. 미래를 불안해하며 걱정하지 말고 일단 오늘 하루 지금 이순간을 내가 최대한 즐길수 있게 최선을 다해 살자고. 왜 그게 안되니. 


검도 도장 트라이얼도 일단 재끼고 이래가지고 송년회 저녁회식에나 참여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결국 꾸역꾸역 지친 몸을 이끌고 회식장소에 갔다. 곧 퇴사하는 동료를 마지막으로 볼 타이밍이라 안가면 안될거 같았다. 막상 가면 맛있는거 먹으며 다른 동료들이랑 수다도 떨고 잘 지내지만 나는 외향인처럼 보이는 극 내향인이라 집에 오니까 기력이 탈탈탈 털렸다. 


23. Dec. 2021 


회식 가지말걸. 목구멍이 간질간질 칼칼한것이 영 찝찝하다. 도저히 찝찝함을 이루 말 할수가 없어 근처에 코비드 테스팅 센터 3군데를 투어를 돌았다. 문을 연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미친거 아님?


24.  Dec. 2021

어제는 목구멍이 간질간질한 선에서 끝났는데 오늘 갑자기 목이 퐉 쉬었다. 연말 회사 송년회고 나발이고 그냥 가지 말걸...찝찝함이 끓어 오르는 와중에 테스팅 장소마다 다 나가리를 놓아서 이유를 몰라 테스팅 랩의 홈페이지에 갔다. 


테스팅 수요가 너무 많아 서비스를 공급할 수가 없으니 일시적으로 모든 테스팅 장소를 닫겠다는 공지가 홈페이지 구석에 올라와 있었다. 미쳤구나...? 와 이렇게 가라로 운영해도 되나? 


25. Dec. 2021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제 코로 숨도 쉬기 어려웠다. 이건 흡사 알러지 비염이 도져서 폐랑 비강쪽에 농이 찰 때의 증상과 비슷한데..그래서 코비드 옴미크론이랑 관련없이 으례 연마다 흘러가는 연례행사 아닌가 싶다가도 시드니 확진자수가 만팔천을 넘어가는 꼴을 보아하니 찝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그냥 크리스마스고 나발이고 집에 쳐박혀서 요양을 했다. 그나저나 요 며칠간 기분이 바닥을 치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대자연이 찾아왔다. 매직~매직매직~유아~마이 매직매직~매직~엄머엄머 피가 뽷 터졌어~(시크릿 Magic 음에 맞춰 부르기) 


26. Dec. 2021

세일이 나를 반겨줄 대국민행사인 박싱데이지만 Minor한 증상이 있는 와중에 전파자가 될 순 없으니 그냥 집에 얌전히 쳐박혀서 젠틀맨리그2부를 시청하며 집안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목이 너무 간질간질하면서 긁는 기침이 나와서 구자매에게 로센저를 사서 문 앞에 드롭쉽핑 해달라고 했다. 문자를 보낸 후 몇시간 후에 구자매가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이어 Sicko!'라며 로센저를 드롭해줬다. 고마워 Ex Partner...(콧물 찔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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