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보다 재취업이 훨씬 어렵다.

by 김바람

결혼 생활 15년.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빛나야 했을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나는 내 미래를 세우는 대신

'어떻게 복수할까'

'증거를 어떻게 잡을까'

'어떻게 하면 양육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을까'

생각에만 매달렸다.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주나'

억울함에 3년을 버텼다.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건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던 나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의 배신과 이혼이라는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았던 지난 3년이

너무나 아깝고 원망스러웠다.

그 시간에 내 앞날이나 준비해 둬야 했는데...

이제와 후회하니 한없이 한심하다.


난 착각했었다.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는 나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설마 안 되겠어?라고...


그렇게 자만심에 이력서를 냈지만

결과는 냉정하고 차가웠다.


지금부터 일해도 정년까지 15년도 일을 못하는데..

경력도, 나이도. 가정사도

모두 불리한 조건으로만 남았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는 기분.

노력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들이었다.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은

더 이상 내 젊은 날의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차라리 재취업보다 이혼이 더 쉬운 일처럼 느껴질 만큼

세상은 냉혹했다.


'우리'가 함께 그려왔던 노후의 그림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가장'이 되니 숨이 턱턱 막히고 불안했다.


그렇게 깊은 절망 속에 허우적대던 날,

뜻밖의 연락이 닿았다.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지인.


서로 지나치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온 인연이었다.


안부 인사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였다.

" 나 다시 일하고 싶어요 "


그 말에 그분은 마침 좋은 자리가 있다며

이력서를 내보라고 했고

믿기지 않게도

그분의 상사가 직접 면접기회를 주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에게 조차

아쉬운 소리 해본 적 없는

쓸데없는 나의 자존심이

한순간 내 발목을 잡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


사람들이 학연, 지연, 혈연이라 욕해도

막상 그만한 게 없었다.


거리가 멀어도

월급이 적어도

이번만큼은 붙잡아야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또다시 찾아올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낯선 자리에서 버틴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


손으로 꼼꼼히 적어 내려가던 서류 작업은

이제 컴퓨터로 모든 걸 다했고

회사 안의 공기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다들 빠른 속도로 일처리를 하고

모니터 앞에서 숨 가쁘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나 혼자만 낯선 시대에 남겨진 사람 같았다.

종종 마우스를 쥔 손이 굳어버리고

키보드 위에 멈춰 선 채로 마음속 깊이 작아지는 순간도 있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나 역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려움은 여전히 크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뒤늦게 찾은 이 자리에서

나는 매일 노력하고 있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더디고 서툴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뒤돌아보면

이 서툰 발걸음이

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 시작이었음을.


멈춘 듯 흐르던 내 시간이,

이제 천천히 다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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