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겁니까?
배에서 태어나, 배에서 살다.
노베첸토는 보스턴 항구에 도착한 배에서 태어난 지 열흘 남짓 된 듯한 나이에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는 상자 안에서 울지도 않은 채 발견되었다. 당시 유럽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새로운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삶이 곤궁하다 보니 자녀를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노베첸토도 그런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발견한 대니는 노베첸토를 법적으로 신고하지도 배 밖의 세상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대니는 그가 버려진 불법 이민자 자녀라서 누군가 몰래 데려가거나, 추방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결국 노베첸토는 배 안의 세계가 전부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폐쇄적인 세계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힘들어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세상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곳에서 피아노를 알게 되었고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오로지 자신의 세상에 몰입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도 배 밖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욕망 때문에 하선을 시도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익숙하고 안락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온다.
경쟁을 초월한 순수한 예술.
또한 그는 "대결한다."라는 의미를 모를 정도로 밖의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인 젤리 롤 모턴의 훌륭한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지만, 이내 그의 호전적이고 기교에만 집중한 연주에 실망한다. 이후 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훌륭한 연주로 모두를 압도한다. 그에게 음악은 성공이나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 초월자를 누가 이길 수 있을까?
미지의 세상에 대한 공포.
시간이 흘러 그의 세계였던 버지니아호가 전쟁(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을 말하는 듯싶다.)에 병원선으로 동원되었다가 심각한 손상으로 인해 완전히 폐선 시키기로 결정되었다. 당연하게도 다른 선원들은 각자의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지만 노베첸토는 하선하지 않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그의 전부였던 배, 바다, 음악은 끝이 보이는 세상이었다. 아마 그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호기심, 욕망 때문에 하선을 시도한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상에 압도되어 포기하고 만다. 그때 그가 느꼈을 공포감이 어떤 감정이었을지 공감했다. 나 역시 매일 그런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배가 폭파하기 전에 함께 했던 동료 투니에게 말한다.
"난 불행을 무장해제했어. 내 욕망들에게서 내 인생을 떼어냈지."
결국 육지에서의 평범한 삶을 포기함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와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 결말은 죽음이었다.
나의 선택, 그리고 삶의 의미.
난 그의 삶을 통해 새로움을 갈망하면서도 미지에 대한 공포감,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의 동료 투니와 같이 두렵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갈 것인가? 노베첸토의 삶이 실패하고 한심한 삶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노베첸토와 투니의 선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실정이다.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이 사그라지며, 생각과 행동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선택해야 하는 삶은 투니의 삶이다. 조금 더 고통스러워지자.
마지막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 두 가지의 삶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익숙함을 선택한 노베첸토의 삶을 선택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언제나 변화와 새로움만 추구하며 살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노베첸토의 삶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삶은 성공과 실패로 평가할 수 없다.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잠식당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과 현재 상황에 맞게 삶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