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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an 10. 2023

낮술 - 하라다 히카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

낮술 출간이 된 당시에 읽고 싶은 마음에 장바구니에 추가했던 책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당시 다른 책을 읽었고 자연스럽게 잊혔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작년 12월에 코로나 격리 해제 이후 서점에 방문했을 때 ‘낮술 1권, 2권, 3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니 2권과 3권은 비교적 최근에 출간했다.


“아 맞다. 예전에 이웃님이 2, 3권이 출간되었다고 말씀하셨지.” 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블로그 이웃님이 번역한 책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읽어야지.”라며 1권을 결제한 뒤 읽기 시작했다.




# 01.

쇼코는 나카노 심부름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그녀가 일하는 심부름센터는 독특한 부분이 있는데 업무 시간이 밤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쇼코는 밤에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낮에 퇴근을 하며 식사를 한다. 그녀가 식사를 할 때 꼭 빼먹지 않는 것은 술이다. 그녀가 낮술을 마시는 이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가 퇴근길에 술을 곁드린 점심을 먹으며 하루를 돌아보거나 덤덤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힘겹게 일을 마치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당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하며 반주를 하며 하루를 돌아보거나, 지난 추억을 떠올릴 때의 느낌. 쓸쓸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알 수 없는 그 느낌. 아마 쇼코가 낮술을 한 뒤 느끼는 ‘나른함’이 이런 느낌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계획과 기준을 수립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반주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주는 물론이고 술 자체를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쇼코의 모습을 보며 요즘 날씨도 추운데 퇴근하면서 순댓국집에 들러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순대와 함께 먹은 뒤 곧바로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싶는 생각이 들었다.


뜨끈한 순댓국과 반주를 마신 뒤 어둡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는 밖으로 나왔을 때 느껴지는 나른함이 그립다.



# 02.

카바레 클럽에서 일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하나에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에의 엄마는 카바레 클럽에서 일하고 있지만 딸만큼은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직장과 떨어져 있는 지역에 집을 얻었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보며 성장하기를 원해 집 안에는 커다란 유화를 걸어뒀다. 하지만 냉장고 안은 텅텅 비어있고 살아가는 꼭 필요한 부분은 채워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쇼코는 그런 그녀를 형편없는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이에게 필사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엄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쇼코와 같은 생각을 했다. 하나에의 엄마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귀찮아하거나 모를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깊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홀로 아이와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마지못해 살았다면 본인이 고생하면서까지 아이에게 좋고 훌륭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과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욕하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고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 03.

쇼코는 회전 초밥을 먹으며 전 남편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결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쇼코의 기억을 읽으며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4~5년 전에는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두근거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두근거림이 없다면 친구와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두근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상대를 사랑해도 꼭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들뜬 마음 때문에 상대방의 거짓 또는 실수를 넘겼지만 마음 구석에는 불신이 존재했다. 결국 이런 연애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정말이지 그 두근거림과 설렘은 며칠 지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근거림이 적거나 없어도 평소의 언행을 잘 알고 있어 신뢰하는 사람과 연애를 했을 때 더욱 서로를 존중하고 안정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교제를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결혼은 순간의 설렘과 두근거리는 사랑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지만 말이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 04.

죽어가는 식물을 가져와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모토코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떠올랐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모토코는 자녀 몰래 자신의 방에 난초 등의 식물을 키운다. 다만 꽃집에서 새롭게 구매한 것이 아니라 죽었다고 판단해서 버린 식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들은 이미 죽은 듯 보이는 식물을 집에 가져오는 것을 불편해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이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식물들이 사실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식물들이 생명이 없어져 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특성을 무시하거나 알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심고 키웠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그녀는 버려진 식물들을 가져와 각각의 특성에 맞게 환경을 만들어주고 정성스럽게 키운다. 그러자 죽은 듯 보이던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났다.


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각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은 환경에서 살다 보면 점점 죽어간다. 결국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며 버린 식물과 같은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모토코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하고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동시에 모토코와 같이 각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05.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사회의 규정이나 규범이 필요하다. 야스오는 예술가로서 아내와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현실적인 생각이 부족했지만 올곧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 세계의 규범을 신경 쓰지 않고 살다 보니 지나친 자유가 주어졌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쇼코의 말처럼 지금의 야스오는 아내의 장례도 치르지 않는 등의 사회의 평범한 규범을 행하지 않는데 이는 야스오에게 악영향을 줄 뿐이다. 특히 장례절차의 필요성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공감했다. 어찌 보면 복잡하고 구시대적인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장례가 슬픔과 이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장례절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기존의 사회적 규범, 규정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사회 규범에 얽매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사회규범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 06.

이혼한 전처에게 자신의 재혼을 이해하고 축복해 달라고 말하는 요시노리의 생각과 감정은 무엇일까? 아이 때문에 자신의 재혼 사실과 아이의 입장, 모습에 대한 말은 할 수 있지만 쇼코에게 축복을 해달라고 말하는 그의 생각과 감정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를 잊지 못하는 쇼코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 07.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부모에게 어떤 감정일까? 성장하면서 한 번만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 어렴풋이 쇼코의 마음이 아프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 미혼에 아이가 없는 나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 08.

할머니와 어머니를 간병하며 생활하는 하루나는 말한다. “일상이 계속 이어지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힘든 건 아니에요.” 그녀의 말처럼 힘든 삶도 계속 이어지면 나중에는 정말 본인이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곤함과 건강 악화는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휴식 또는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힘이 들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가장 위험한 상태이다.



# 09.

지나치게 시어머니를 무서워한 나머지 허상을 만들어 지나치게 경계했던 쇼코의 모습을 보며, 인간관계 또한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정의되고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이혼으로 인해 아이와 따로 살아가는 쇼코는 야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도우미’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아침 또는 낮에 퇴근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잊고 깊이 잠들기 위해 식사와 함께 가볍게 술을 마신다. 낮술은 그녀에게 일종의 치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더불어 그녀를 소중히 생각하는 친구들과 각자의 사연이 있는 의뢰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녀는 상처를 치유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 달성하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이러한 그녀의 치유와 성장을 따뜻하고 매력적으로 써 내려간다. 특히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식당 분위기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내가 쇼코와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 같다.


또한 사회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주제 또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생각이 녹아있는 문장을 통해 거북하지 않게 읽었다.


완독 후 쇼코에게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녀는 다음권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조만간 그녀를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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