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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n 11. 2023

인어의 비탄 마술사 - 다니자키 준이치로

유려한 문장과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단편 소설.

이웃님의 서평과 독서 감상문을 읽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보였다. “저거 뭐야? 인어?” 혼자 중얼거리며 자세히 책을 살펴봤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 열쇠.” 그의 소설 중 내가 유일하게 읽은 열쇠가 떠올랐다. 그때 당시를 떠올려보면 중간에 구역질이 났지만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책도 얇은데 읽어봐야겠다. 삽화도 좋고.”


그렇게 다시 한번 그의 소설을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 01.

부모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은 귀공자는 세상의 모든 향락을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흥미와 재미 그리고 짜릿함을 주는 존재가 사라진다. 모든 것에 지루함과 싫증을 느낀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끝에는 아편을 한다. 하지만 그의 지루함과 허무는 더욱 심해진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며칠 전 완독한 ‘평온한 삶’의 권태가 떠올랐다. 역시 인간은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의 꿈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 돈, 명예는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산물일 뿐이며 그것들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하지 못해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고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 02.

드디어 권태와 허무에 빠져있던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서양인으로 인해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그가 가져왔다는 ‘인어’로 인해서 말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경험하지 못한 존재가 생긴 것이다.


그는 인어를 만난 뒤 자신을 괴롭히던 권태와 허무에서 빠져나온다. 하지만 자신이 원했던 사랑은 이루지 못한다. 사실 인어는 인간에게 포획되어 아시아 이곳저곳을 떠돌며 굴욕적인 삶을 살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못된 말을 쏟아낸다. 결국 인어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에 그를 끌어안는다. 그 순간 죽음을 느낀 그는 인어의 말을 믿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그녀가 바다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역시 인어를 만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지중해로 향한다.


그와 인어의 모습을 보며 개인의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인어를 가둬 두었다면 결국 그는 이룰 수 없는 인어와의 사랑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고 결국 죽었을 것이다.



# 03.


[마술사]


이번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포기한 남성과 자신의 선택으로 판(pan)이 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과 자신의 사랑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여성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과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마술사의 거지 행복에 홀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삶을 포기하고 자진하여 마술사의 노예가 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며 돈과 명예 그리고 거짓된 사랑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진실을 버리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면 마술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본인의 의지로 삶을 결정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이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인어의 비탄’과 ‘마술사’라는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을 구매한 뒤 읽기 전에 조금 걱정을 했다. 몇 년 전 읽었던 그의 소설 ‘열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탐미주의 소설의 대가답게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좋았으나 퇴폐적이고 일부 변태적으로 느껴진 부분이 있어 거북했다. “설마 이 책도?”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왕 구매하였으니 읽자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책을 완독한 뒤 느낀 점은 “읽기 잘했다.”였다. 다행히 열쇠와 다르게 거북한 이야기는 없었고 오히려 그의 뛰어나고 유려한 문장을 즐기며 글에 흠뻑 빠져들었다. 특히 인어의 비탄에서 인어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부분과 마술사에서 극장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된 삽화는 독자가 그의 글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평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장을 읽어보고 싶은데 그의 글 소재가 거북하게 느껴지거나 글의 길이가 너무 길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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