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비실 Oct 15. 2024

[ 오늘은, 여기 ] 19. 예비 국제개발전문가, 일송

증명은 스스로에게,

 


 열아홉번 째 인터뷰이는 현재는 취준생이지만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일송 님입니다.


 목차

1.    인물소개

2.    오늘 여기의 나 : 국제개발

3.    개발협력이란?

4.    어쩌다 개발협력

5.    삶에 대한 평가

6.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7.    기타질문

8.    자기PR

9.    마침



이름(별명) : 일송

나이 : 30세 

성별 : 여성

학력 : 석사 / 사회과학(해외)

경제력 : 현재 귀국한지 얼마 안된 취준생이라 돈을 쓰기만 하는 중




1. 인물소개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 나이, 성별(성 정체성)

안녕하세요. 일송입니다. 여성이고요.

학사는 국내에서 어문학과 사회과학을 복수전공 했고, 석사는 해외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석사 졸업하고 귀국한지 얼마 안 돼서 지금은 백수입니다.




2. 오늘 여기의 나 : 구직 중인 취준생


 현재 백수시라고요?

 네. 전 백수입니다. 구직 중인 백수.


(백수라면 아무래도 경제력이 없겠네요.)


 네. 그동안 모아뒀던 것들을 까먹고 있습니다. 귀국한지 얼마 안돼서 그저 통장이 비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현재 구직 중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분야의 직업을 얻기 위해 구직 활동 중이신가요?

 저는 개발협력 전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활발히 구직 중인 현재, 일송 님의 생활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요?

 일단 제가 2년 만에 귀국을 했거든요. 석사하고 있는 동안 한국에는 한번도 안 들어왔기 때문에 들어오자 마자는 사실 생활 패턴이 없어요.


 왜냐면 귀국 직후에는 바로 부모님 댁에 있었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지금까지 못 만났던 친구들을 돌아가면서 만나고 있고. 


 제가 가진 안 좋은 습관 중의 하나는 새벽에 글 작업이 잘 된다는 거예요. 제가 계속 지원서를 써야 되잖아요. 그건 밤에 잘 된단 말이죠. 그래서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그 다음에 자고 일어나서 고양이 안약을 넣어주고, 고양이 밥 주고, 고양이 간식 주고, 뭐 이런 거 하다가 친구랑 약속이 있으면 나가고 아니면 이제 계속 집에서 이거(지원서) 써요. 쓰다가 고양이 한 번 보고. 이거 한 번 보고.


(친구를 만나거나 고양이를 돌보거나 구직활동을 하거나 이 3가지로 지금 삶이 돌아가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이제 여기에 운동을 추가할 생각이에요. 체력이 쓰레기가 되어 가지고.(웃음)




3. 개발협력이란?


 구직하고 있는 분야가 ‘개발협력’ 분야라고 하셨는데,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어떤 분야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국제개발협력은 영어로 하면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입니다.


 개념을 살펴보면 국가 간의, 혹은 개발도상국 내에 존재하는 빈부격차 같은 개발의 차이를 줄이고, 빈곤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서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 국제사회가 하는 노력입니다.


 뭉뚱그려서 가볍게 설명하자면 공여국, 즉 어떤 자원을 제공해주는 국가와 수원국, 즉 개도국과 같이 그 자원을 받는 국가 사이의 상호 협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되 주요 포커스를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두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일한다면 아무래도 해외에서 일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개발협력 분야의 일은 어떤가요?

 한국에서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돼요.

 제가 석사를 나가기 전에 일했던 이전 직장에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었죠. 한국에 베이스를 두고, 협력국으로 출장을 가는 방식으로요.


(협력국은 수원국을 말하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수원국이라는 단어에 받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보니까, 주고받는 관계가 명확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협력국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의 구직 활동은 어떤 식으로 돌아가나요?

 제가 구직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가 한 3개월 정도 됐거든요. 석사 졸업하기 전부터 했으니까.


 근데 이 분야 취업 과정이, 좀 길어질 수도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 다른데, 제가 많이 지원하는 곳들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지원서를 넣고 나서 연락이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어요. 한 달이 될 지, 두 달이 될 지. 연락이 오기는 할지도. 서류 전형이 유난히 오래 걸리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을 하는 중에도 계속 서류를 넣어요. 내 기존 직장의 계약이 끝나기 한참 전부터 넣기 시작하는 거죠.

 

제가 석사 인턴 지원할 때도 서류 통과하는 데만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서류 통과하고 나면 좀 빠른 것 같아요. 지원자가 면접을 볼 의사가 있다는 게 확인되고 나면, 지원자를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수시로 사람을 뽑는 형태인가 봐요.)

 

 전반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턴은 아닌 경우도 있긴 한데. 사실 해외 취업을 하면 한국처럼 공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날짜를 안 박아 놓는 경우가 많고요.




4. 어쩌다 개발협력


 어쩌다가 보통은 접하기 힘든 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뜻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릴 적 수도권에서 자라다가 아주 지방으로 이사를 가고, 또 지방 중에서도 진짜 군 단위 지역의 거의 폐교 직전의 작은 학교까지 가고, 그런 생활을 해봤어요.

 그러면서 한국에도 기회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역 간의 차이로 인해 기회가 박탈되는 경우가 많다.)


 시골생활이나 이런 게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아무래도 보고 듣는 것이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치잖아요.


 저는 서울에 있다가 시골에 간 거기 때문에 더 극명하게 느꼈던 게, 서울에서 손에 닿을 수 있던 것과 군 단위의 시골에서 닿을 수 있는 게 너무 달랐어요. 그리고 주위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접근성 같은 것도 되게 달랐고.

 

 그런 기회의 차이로부터 오는 연쇄적인 결과물들의 차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잡아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연쇄적인 결과물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선택지가 너무 적어서 그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결과물 또한 적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내다가 우연히 와리스 디리라는 사람이 쓴 ‘사막의 꽃’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보면 FGM이라고 해서 여성성기절제, 여성할례에 관련된 내용이 나와요. 그 책을 보면서 기회의 불평등은 국경을 넘으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직접 몸으로 체감해본 기회의 불평등,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 불평등이 얼마나 더 심각하게 커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꿈을 품은 거군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개발협력이라는 개념까지는 알지 못했어요.(웃음)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대해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의 일이었거든요.


 정확히 언제 개발협력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셨나요?

 대학을 들어간 뒤였어요.


(대학에서 관련 공부를 하셨나요?)


 제가 학부생활을 한 대학에 국제협력 관련 과목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과목을 통해 개발협력을 알게 된 건 아니었어요. 개발협력은 NGO 활동을 하면서 접하게 됐어요. 정확히 NGO에서 알려준 건 아니고, NGO 활동을 통해 해외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내가 머릿속으로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불평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가 이쪽에 관심을 갖다 보니 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렇게 공부를 시작해서 석사까지 하게 되신 거군요.)


 사실 석사는 언젠가 가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학부 졸업하자마자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물론 석사가 필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제 주위에 이 길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선배들 중에도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이 개발협력이라는 게 말로만 들으면 한 분야같이 보이지만, 이 안이 엄청 넓거든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교육 사업을 해야 하면 교육전문가가 필요하고, 보건사업을 해야 되면 보건 전문가가 필요하고, 한국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이나 전자정보 이런 게 잘 돼 있으니까 그런 종류의 거버넌스 사업을 하려면 또 ICT를 해 봤던 사람이 필요하고.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해서 제가 석사를 하려고 대학원을 가려고 해도 어떤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일단 일을 해보고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지 결정하기로 한 거군요.)


 모두가 이렇게 가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오히려 공부하고 싶은 분야 자체는 학사 때부터 있기는 했어요. 학부 시절에 교직도 이수하고, 교육 봉사도 계속 했고, 또 이걸 바탕으로 교육 분야를 살려서 취업도 했거든요.

 그리고 석사를 바로 가는 건 진짜 선택권에도 없었던 것 같아요.(경제적으로도)

 그래서 일단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교육 분야의 개발협력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교육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아니요. 오히려 ‘내가 교육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다는 것이 뭐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교육 전문가는 교대나 사범대를 가서 교육 대학원을 간 사람이 있잖아요. 근데 개발 협력을 하면 완전 다른 목으로 묶인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업계 안에서는 학문 자체가 되게 개발학이랑 타 학문이 모인 것 같은 특성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 중의 하나는 ‘내가 개발 협력을 하고 싶어. 근데 나는 무엇에 대한 전문가지?’ 이런 거예요. 나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있거든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같이 일하는 분들과 함께 논문을 쓰게 될 기회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사분석과 관련된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석사를 가게 됐습니다.


 사실상 업계에서 석사 학위가 필수처럼 느껴지는데, 석사 졸업, 그것도 해외에서 석사 졸업이라면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국내에서 석사 공부를 하는 건 애초부터 크게 고려대상이 아니었어요. 물론 공부하기 좋은 곳들이 많아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공부를, 내 백그라운드를 살려서 하려면 해외에 나가는 게 나한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제적인 건 꾸준히 어려웠어요.


 저는 학부때부터 전부 다 장학금을 받고 다녔는데, 그러면서 학업에 관련해서는 부모님께 손을 안 벌리고 웬만한 건 다 스스로 해결하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대학원을 갈 때는 부모님께 손을 좀 벌릴 수밖에 없었죠. 그것도 제가 벌어놓은 돈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2년간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둔 건가요?)


 정확히는 학부 때부터요.


 제가 학부 때 2전공에 교직 이수, 교육봉사, NGO 활동을 하면서 또 학원에서도 일을 했거든요. 물론 모두 다 파트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하긴 했지만 거의 쉬는 날 없이 살았어요. 그게 즐겁기도 했고요. 그렇게 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갈 수 있었던 거죠.


 2년 동안 일을 한 것도 크지만 그 전에 인턴십도 했고, 해외 인턴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보수가 나쁘지 않아서 학비 모으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있죠.


(사실상 오랫동안 준비해왔기 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을 더해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거군요.)


 그렇게 하지 않고 다짜고짜 나를 유학 보내주세요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외동인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없이 전적으로 나를 밀어달라고 할 수는 없었거든요.


 사실 저는 늘 그랬어요. NGO 활동을 하면서도, 물론 프로그램 참가 비용이 애초에 크게 비싸진 않지만, 제가 통역 일을 한다거나 하는 조건으로 비용을 훨씬 낮춘다거나 하면서 가능한한 부모님께 받는 지원을 줄이려고 노력했어요.


 또 해외로 나가는 게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저는 증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나한테 투자할 가치가 있다.


 비단 부모님에게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에게 증명한다,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이 일을 이만큼 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이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 노력을 들였을 때 결과를 낼 수 있느냐.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다. 그런 증명이요.


 내가 하고 싶은 거를 하려면 내가 기본적으로 이 업계에서 선택받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봐야 되잖아요. 근데 저는 여러가지 조건에서 제가 봐 온 업계의 사람들과는 좀 경험적으로 차이가 있었어요.


 제가 봤을 때는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 경험을 많이 한 경우도 수두룩하고.


 그런데 저는 학부 때 교환학생도 갈 수가 없었거든요. 성인이 되어 NGO 활동으로 외국을 처음 나갔고. 학창시절은 완전 시골에서 보냈고. 학벌도 애매하고.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증명을 해야 했어요.

 나는 나 자신한테도 확신이 없었으니까.


 졸업하자마자 해외 인턴을 바로 붙어서 나가면서 어느 정도 증명이 됐어요. 주거랑 급여 같은 게 다각도로 지원되는 해외 인턴에 한 번에 붙는 게 아주 쉽진 않거든요. 그걸 한 번에 붙었어요. 그리고 또 돌아오자마자 바로 취직을 했고. 이곳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보다 훨씬 더 전문성이 있는 분들을 뽑을 것 같은 곳이었고,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은 곳이었어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할 능력이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또 현 시점에서는 증명을 해낸 셈이네요.)


 어느 정도는요.


 혹시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이 업계에 대한 흔한 착각 중의 하나가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마냥 선한 마음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거든요. 근데 사실 그렇지 만도 않아요.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런 이타심을 가지고 뛰어드신 분들도 계시죠.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고. 근데 저는 아니에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기반은 분노이기 때문에.


(불평등에서 오는 분노 말씀이시군요.) 


 네. 이게 맞나? 하는… 짜증에 가까운 건가?[웃음]


 어쨌든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거고, 일을 한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 기준에서 생각했을 때 가치 있는 일이라면 이 일이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저는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다시 업무로 돌아가면 아씨 다 때려치고 싶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웃음)




5.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 현재 본인의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행복하시나요?

 지금 사실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평균을 내기가 너무 어려운데…….


(단순히 지금 행복한지 안 한지 간단하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제가 행복한지도 잘 모르겠어요. 즐겁긴 하거든요. 근데 지금 갈급하긴 한 거 같아요.


(내 삶이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 행복과 불행을 판단 짓는 게 좀 어렵다고 느끼나 봐요.)


 어, 네 행복한 상태가 뭐죠? 행복이란 무엇인가?

 왜냐하면, 내가 나에게 행복하다고 얘기할려면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데피니션이 필요하단 말이죠.


(행복이 무엇인지 조작적으로 정의한 다음에 행복한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되는데 아직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는 거군요. 다만 즐겁냐 즐겁지 않으냐를 따지면 내 생활은 꽤 즐거운 상태인 것 같다.)

 

 그쵸. 지금은 사실 불안도 없지 않지만 불행하진 않은 것 같아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다면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 같나요?

 …….[고민]

 확신이 있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일도 그렇고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되게 확고해 보이나 봐요.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굉장히 확고해 보여요.)

 

 주위에서 보기엔 되게 그렇게 보이나 봐요. 그 얘길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도 모르거든요.


(일송 님은 그래도 개발협력 분야에 내가 원하는 나의 무지갯빛 물고기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신 거잖아요. 그래서 꾸준히 노력해왔고.)


 저는 사실 제가 이 업계에서 영원히 일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거든요. 그냥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당장은 내가 여기를 먼저 확인해 봐야겠다. 그런 거죠.


(적어도 내가 확인해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거는 알죠. 내가 다음에 가고 싶은 게 어디 어디 부근인지는 알아요. 보물 지도를 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지도를 잘못 읽을 수도 있어요.[웃음] 좀 길치라서.


(지도도 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수두룩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도를 들고 있는 일송 님에게 확신이 있어 보인다고 말을 하는 걸 거라 생각해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뭐, 대신에, 대신이라고 얘기하면 좀 웃기지만, 저는 변변한 취미나 다른 게 별로 없어요.


 저는 에너지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 우선순위가 있는 것에 에너지를 써야 하거든요. 그리고 제 우선순위는 명확하게 내가 경험해보고 싶은 일과 국가 이런 것들이라 그 외 나머지에 대해서는 흐물흐물하기도 해요.


 누군가는 취미를 드라이브(drive) 삼아서 나가잖아요. 저는 이 일과 분야가 드라이브라서 사람들이 확신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걸로도 이미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 혹시 나를 어떤 방향으로든 평가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그렇게 확고하지는 않다.


 이러다가 휙 돌아갈 수도 있어요. 왜냐면, 저 석사도 넣을 때까지는 확신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공학과를) 여기저기를 넣은 거예요. 한 달 동안의 통한의 숙고를 거친 기간이 있었단 말이죠. 거의 무슨 동굴에 들어간 사람처럼 계속 밤에 잠 못 자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어요. 어쨌든 이게 나에게 되게 큰 도약이 될 텐데, 과연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되는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틀었을 정도로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확신 있는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정확히는 그렇게 확신 있게 사는 사람 별로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확신이 있어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는 확신이 없다고 이야기해요.

 저도 그런 얘기를 듣지만 아직도 흔들려요. 똑같아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 가요?

 노후 대비가 될 만큼 벌면서, 좋아하는 일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만나면서, 가끔 자극도 받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취미도 두어 개 갖고 싶습니다!




6.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을까요?

 할머니랑 시간 더 많이 보내지 못한 거.

 제가 한참 막 대입 이런 거 할 시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셔 가지고. 할머니가 조금만 더 계셨으면 외국도 같이 모시고 가고 그랬을 텐데.

 요새 유튜브 보면 할머니 모시고 외국 가고 이런 거 많잖아요. 그런 거 볼 때마다 세상 부럽고 눈물이 나요.


(그걸 못 했다는 게 많이 아쉬운 거군요.)

 

 할머니는 그런 거 좋아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할머니한테 삶의 태도를 되게 많이 배웠어가지구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할머니랑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때 돌아가셨다는 게 그게 좀 크게 남겠어요.)

 

 그쵸. 왜냐하면, 받기만 하다가 이제 내가 조금 있으면 드릴 수 있겠다 싶을 때 돌아가셨으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할머니 이야기를 하거나 그러면 눈물이 나요. 동생들이랑 아직도 얘기해요. 할머니 돌아가신 지 10년 벌써 넘었는데도. 가만히 있다가 뭐가 생각나면 할머니 얘기를 해요. 우리는.


(그만큼 정말 좋은 분이었나봐요.)

 

 그리고 진짜 진취적인 분이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우리끼리는 자주 얘기했었거든요. [웃음]


• 반대로 내가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까요?

 뭘 잘했을까요? [고민]


 진짜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대학교를 들어가기 직전에, NGO에 들어간 거요.

 아까 NGO에 오래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처음 거기 들어가게 된 게 정말 우연하게 온 기회였단 말이죠. 우연히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영어를 하고 인권에 관심있는 사람을 찾는데 가볼래? 라고 얘기했어요.

 근데 그때 갔어요.


(그게 일송 님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터닝 포인트가 됐겠네요!)

 

 진짜 제일 잘한 일이에요. 왜냐면, 그때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지방에 있다가 막 올라오기도 했고, 제가 엄청 소심쟁이라 사람이 많으면 주눅도 많이 들기도 하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어서 갈까 말까 엄청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아마 그때도 제가 거기 가는 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갔어요, 그걸.


(그걸 용기 내서 갔다. 그게 이제 개발 협력이라는 분야로의 본격적인 첫 걸음이 된 순간이나 다름없었으니 커리어 적인 부분에서도 커다란 첫 걸음이었겠군요.)


일적인 측면도 그렇고요. 인생에서도.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열린다는 경험이 계속 쌓이잖아요.

저는 저한테 확신이 진짜 없었고, 내가 그냥 뭘 어렴풋이 하고 싶다 정도만 있는 상태에서 문을 두드렸는데, 열렸잖아요. 그게 제 태도에도 영향을 크게 줬고, 가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여러 경험들을 쌓았어요.

첫 번째 포문을 연 거예요.

그 NGO에서의 경험 아니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해외 경험 한 번 없었을 테니 해외 인턴도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NGO를 시작으로 해서 해외 인턴을 가고, 해외 인턴을 가서 취업을 하고, 취업을 했으니까 석사를 갔고, 석사를 갔으니까 다시 재취업을 하잖아요.

이 모든 것에서 제일 중요한 스태핑 스톤(stepping stone)이었던 것 같아요.

그건 진짜 잘했다.

그거 안 무서워하고 잘 갔다 모르는 사람밖에 없는데 그건 잘했지.

 



7. 기타 질문


•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별로. 그냥 그래요. 굳이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이유가 있다면?)

 

 커리어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도움이 안 돼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결혼보다도 결혼과 함께 오는 것들이 방해가 돼요.


(가족과 가족이 엮이면서 오는 여러가지 관계망 등이 해외출장을 자주 가는 등 일송 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와는 맞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근데 제가 만약 해외를 안 나가고 국내에만 있고 싶더라도 계속 일을 하고 싶다면 결혼은 사실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출산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쵸. 


• 출산에는 전혀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지금 적어도 지금으로는 전혀 없어요. 

 사실 제가 아이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어요.


 제가 석사 과정 중에 인구학 수업을 들었거든요.

 인구학에서는 출생, 사망, 이동 이 세 가지가 인구를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그런데 이 중 출생에 대해 공부할 때, ‘출산’’을 두고 사용한 단어가 있어요.

 패널티라고 해요.

 출산과 여성의 사회 진출간의 관계, 그리고 여성들이 왜 출산하지 않는지, 출생률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다루면서 선진국이 될수록 아이를 점점 낳지 않게 되는 건 결국 사회 진출과 출산의 효용에 대한 비교결과라고 했어요.


(출산의 페널티가 더 크기 때문에?)

 

 그렇죠. 그 페널티는 사실 여성이 일을 할 수 있는 국가에서 더 커지는 거니까.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페널티라는 거예요. 근데 이 표현은 제가 쓴 게 아니라 인구학이라는 학문에서 쓴 거죠. 패널티 혹은 패널라이즈 라는 얘기를 썼는데 저는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여성의 인생에 있어서 출산이 페널티라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것이 충격이었던 거군요.)

 

 그죠.

 제가 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기회 그리고 기회의 평등이었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봤던 것도 아이들이었어요. 학부 때 교육 봉사는 거의 쉬지 않고 했고, 교직도 했고, 정말 가르치는 일은 오래 해왔어요. 아이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내가 낳은 아이를 원망하는 상황에 있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만약 아이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해야 되면 아이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건 서로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상처가 될 테니까.)

 

 너무너무 그렇죠.


 그리고 지금 기후변화나 사실 이런 것만 앞으로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 굳이?

 또 교육 현장에 계속 있으면서 지켜봤을 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건강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주위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네가 엄마면 진짜 잘하겠다.’는 거예요. 차마 거기다 아니라고 얘기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봐도 제가 엄마면 진짜 잘할 것 같거든요.


(잘할 것 같습니다.)

 

 근데 진짜 불행한 엄마가 될 거예요. 그런데 불행한 엄마는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국 그러니까 아이를 낳으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하니 불행한 엄마가 될 것이고, 그 불행한 엄마 밑에서는 행복한 아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총체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현 시점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을 한 거군요.)


 그렇죠.


• 그렇다면 일송 님이 생각하는 저출산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무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건 충분한 사회 시스템의 부재.


(아이를 육아하는데 필요한 사회 시스템의 부재, 예를 들어서 뭐 육아휴직이라든지?)


 육아휴직의 문제가 아니에요. 육아휴직을 쓰더라도 그 1년 2년 동안에만 아이들이 크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돌봄이 필요하잖아요. 육아는 실질적으로 가족 위주로 돌아가야 되는 게 맞는데 우리 사회는 야근이 당연한 사회잖아요.


 결론적으로 국가도 회사도 사람들도 아이는 원하는데 엄마는 원하지 않아요.


 국가를 위해서 아이는 필요한데, 내 회사에 있는 엄마는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럴 수 없거든요.


 모든 인구학자가 한국에 집중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여전히 기업은 ‘일을 안하고 육아휴직을 막 써먹는 이런 사람을 회사에서 끝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지 않느냐.’ 이런 소리를 해요.


(더군다나 안 그래도 한 명 한 명에게 부여되는 업무량이 많은 상태에서 육아휴직자가 생기면 그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채워야 하니까 회사 동료들도 육아휴직자를 반기지 못하는 환경인 것 같아요.) 


 그 말도 맞아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거죠.

 이 시스템의 진짜 최악인 부분은 모든 부분에서 최약체인 엄마들한테 저출산도 탓하고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탓하고 돈을 안 벌어도 탓한다는 거예요. 근데 이 누가 이 자리에 가고 싶을까요?


(사회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이를 낳지 않는 첫 번째 원인이다. 어쩌면 과거에는 외벌이가 가능한 사회였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었던 걸 수도 있겠네요.)


 근데 외벌이는 그 다음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것 중 한가지가 직업적 성취잖아요. 내가 직업적 성취를 하면서 가정도 있어야 되는데 그게 불가능해요. 그래서 직업적 성취를 여성들에게서 뺏는 방법 말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회라면 잘못된 거죠.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건강하지 않은 거죠. 왜냐면, 직업적 성취만큼 내가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출산의 이유를 돈으로 꼽지만, 사실 첫 번째는 돈이 아니에요. 시스템이고, 구조예요. 사회 안에서 여성도 남성도 함께 일하며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으면서 아이를 같이 키워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사회가 엄마라는 존재에게 패널티를 주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왜 되어야 하나요?


 그리고 사실 지금 이미 나와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보육원에도 있고. 여전히 한국은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거든요. 그런데 지금 있는 아이들을 향해 가는 시선은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결국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것들이에요.

 



8. 자기PR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어필하고 싶은 게 있나요? 

 없습니다.[단호]


(그럼 이 개발협력 쪽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시겠어요?)


 도망쳐...? [웃음]


(도망쳐! 왜 도망쳐야 하나요?)

 

 힘들어요. 일의 난이도가 높은데 금전적인 보상이 아주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나서 커리어의 후반에 들어올 수도 있어요.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이 일을 시작하지 않고, 나중에 내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꽃을 피우고 난 뒤에 이쪽 업계에서 사명감을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다.)

 

 그것 또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저는 원래 하고 싶었으니까 후회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들어간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걸 되게 많이 봤어요. 말했듯이 일이 힘들고, 특히나 초반에는 리워드가 많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을 감안해야 하는데다 해외 출장도 많아요.


(육체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삼위일체네요.)

 

 빡세요. 그 와중에도 내 전문성을 키워야 해서 끊임없이 공부도 해야 돼요. 그리고 사실 개도국에서, 혹은 개도국이랑 일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한국은 사회가 빨리빨리 돌아가지만 거긴 그렇지 않아요. 뭔가 하나를 하려면 정말 힘들어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으니 각오를 하고 선택했으면 좋겠다.)


 그쵸. 그리고 처음에 진입할 때 내가 이 일을 진짜 하고 싶은 건지 한 번 보고 그 다음에 결정을 해도 괜찮아요.


 그게 아니면 내가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한국에 계속 있고 싶고 출장 많이 다니는 게 싫으면 이 일을 못하거든요.


 그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을 하고, 그 다음에 엔트리 잡을 해보면서 한번 내가 이 일에 맞는지도 한번 고민해 보고, 그 다음에도 내가 일이 좋으면 들어오되 근데 많은 능력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시작부터 이 분야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일은 내가 능력만 된다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든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니 신중하게 고민해라.)


 맞아요. 그리고 파이팅입니다.




9. 마침


• 혹시 오늘 인터뷰 소감 여쭤봐도 될까요?

 이 프로젝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비실 님이 고생이 많아요. 왜냐하면 이걸 정리하는 데 겁나 오래 걸릴 거잖아요. [웃음]




[ 오늘은, 여기 ] 프로젝트 소개 및 전체 인터뷰 목록

[ 오늘은, 여기 ] 일송 편 인스타툰 예고편 보러 가기

 -> 추가 예정

매거진의 이전글 [ 오늘은, 여기 ] 18. 시간여행역의 역장, 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