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돕는 일이 곧 행복이다

by 김봉길

사랑나눔캠프을 사명감 혹은 역할 측면에서 풀어낸다면, 아마도 ‘사랑의집짓기’, ‘가면무도회’, ‘예술향기느끼기’,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한 ‘인간느끼기’가 아닌가 싶다. 나도 인간임을 느끼는 순간, 꽃과 나무와 바위와 구름과 흙과 하늘이 다정다감 몸에 머무르는 것. 순간마다 머물러 즐거움과 고통 차이가 좁혀짐을 느끼는 것. 그래서 행복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져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건강한 삶의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돕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면, 먼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순간 깨달아야 한다. 그 능력이 확인되었을 때, 진정 도우려는 용기가 나는 것이고, 후회 없는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이라 하겠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모두 바쁘다. 자신의 뜻을 향하던 사람들, 그런 시간을 내어 참석한 교수들과 강사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모두 자원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여유가 있어서 아니면 이게 즐거워서 참석한 것은 다음 문제다. 사랑. 사랑하고 싶어서 또한 참석한 것도 다음 문제다. 사명감, 직업인으로서? 이도 다음 문제다. 참석한 이유는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문제를 모두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일. 또한 그냥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


이 캠프의 가시적인 절정은 끝나기 전날 마지막 밤에 있는 ‘가면무도회’였을 것이다. 필자는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다만, 가면을 만드는 장애우 아이와 소년소녀가장들의 모습을 기억에 담을 수밖에.





18-1. 겉과 속이 하나가 될 때까지 바꾸고 바꾸어야


가면이란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둠을 상징하기도 하고, 그 어둠 속에서 다른 무엇인가를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한 속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허용된 것이고, 그것에 관한 수치를 조정하는 것도 자유다. 조정능력이 뛰어날 수록 스스로 자신과의 대화를 솔직하게 하는 능력이 증진되고, 나름대로의 표현 방법을 습득하게 됨으로써 개성으로 승화된다. 곧 자신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원봉사자들이 가면 만드는데 함께 하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동물이나 물건이 무엇인가 물어보며, 어떤 내용의 가면을 만들지 묻고 대답하고, 그러면서 그들은 더욱 개인의 정을 나누어가고 있었다.


구름을 만들고 싶어요.

구름에도 그림자가 있어요. 아마 노을이라고 생각 되요.

일방적인 주문이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는 무엇인가 아이의 변화를 이끌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조건 네 말만 하지 말고, 질문해 볼래? 말을 서로 묻고 대답하고, 그래야 재미있는 거다, 너.

노을 색깔은 노랑으로 해주세요.

그래, 한 번 생각해 보자. 참, 질문해. 질문 없어? 그럼, 질문할 것 만들어 줄까?

몰라요.

구름에도 무늬가 있다, 너. 예를 들면, 음, 내 마음 같은 거. 구름은 무슨 색이면 좋을까?

하늘 색요. 쿡쿡.

아이는 대답을 하고나더니 멋쩍은지 묻는다. 드디어, 아이가 물었다.

하늘색은 어떻게 해서 생겼어요?

어? 그거? 하늘색이 어떻게 만들어졌더라, 음. 아, 그거! 원래 하늘색이 있었어. 너, 살 색 알지?

예. 살색도 처음부터 있었잖아, 하늘색도 처음부터 있었던 거야.

헤헤헤, 틀렸어요. 구름이 하늘색인 건, 헤헤, 훨훨 날아가고 싶어서죠.

응, 그랬구나.

자원 봉사자는 즐거운 듯 물었다.

구름 타고 날아가면 어디로 갈 건데?

장애우 아이의 얼굴이 순간 맑은 샘물에 즐거운 먼지가 앉듯 미소 같은 것이 스쳤다.

몰라요. 묻지 말아요.

가르쳐 줘.

비밀인 걸요.

아이,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

자원봉사자의 토라지는 척에 재미있다는 듯.

히히, 그곳을 알면 걸어서라도 가게요? 히히!


어쩌면 장애우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은 모두 꿈꾸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란 살아생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장애우 아이가 생각하는 평등일는지도 몰랐다.

아니, 잠깐 기다려! 그게 아니구!

자원봉사자의 눈가에 반짝 별이 빛났다. 순박한 샛별을 볼 때 생기는 눈물 같은 것이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것.

너 나처럼 아픈 곳 없이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싶은 거구나!

마음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눈으로 외치는 모습이 환했다. 울산에서 자원봉사를 위해 삼복더위 휴가대신 봉사하러 온 서유미 님의 보이는 않는 외침이 떨리는 구름 모양 만드는 가면 안에서 활활 들끓고 있었다.

그림자는 밑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밑은 진하거든. 파랑색은 더 밑이야.

하늘색보다. 파랑색을 좋아하는 아이는 끝내 웃지 않았다.

그럼, 노랑색보다 하늘색과 파랑색을 흰색으로 칠해줘.

끝내 말없이 지는 하늘가 구름을 보는 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었을까? 마음 여는데 지쳐서 그런 것일까.




18-2. 부끄러움은 드러내면 아름다워진다


구름 가면이 다 만들어지는 동안 내내 옆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쓴 가면의 개수와 종류에 대해 알고 생각하고 싶었다. 컴컴할 때 쓰는 가면, 혼자 있을 때 쓰는 가면, 사랑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과 있을 때 쓰는 가면 등등. 또, 슬픈, 기쁜, 뭐 그런 가면 말고, 슬픈 척, 기쁜 척, 뭐 그런 가면도 말고, 배부르고 싶어서, 편하고 즐거워지고 싶어서 쓰는 그런 가면,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분명히 담보할 수 있는 가면, 그런 걸 가지고 싶어하는 나의 가면에 대해, 어떤 그림자나 무늬나 모양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지금이다. 역시 자신의 부끄럼이란 기어이 스스로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내 부끄럼.


그동안 배웠던 것이 얼마나 있었을까. 또한 행동으로 옮겼던 일들을 그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하나 하나 챙겨 확인하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눈빛만큼이나 많아 고개를 쳐들 수 없다. 그러나 기억이 나는 한, 그것을 기록해 나가는 일이 남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새로 쓰는 글이란 그들과의 만남이며, 만나는 즐거움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 아이 좋아라 예삐 웃음이 입술에 머무는 믿음과 같은 것이리라.


내 시간이 앞으로 지나가는가? 누가 그 옆을 지나가는가? 나는 지나가는 사람과 어떠한 즐거운 일을 또 만들어 내는가. 그러나 미안한 일은 처음부터 시작인 듯하다. 나는 보는가. 손을 갓 지나쳐온 글들을 슬프게 보고 있는 나를 보는가.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먼저 소리치는 나를 보고 있는가. 또한 다시 적어보거니와 나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이 쉽게 웃음을 지으리라며 나를 보고 있는가.


아, 우습다는 말을 어찌 다시 만나야 할 이들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 미안한 일이다. 그들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만이 나의 기억을 되살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럴까, 동떨어진 웃음이 미안스럽게도 나만의 이득을 위한 것인가. 그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마지막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로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그나마 멀리 떨어져 지나는 웃는 나의 시간을 보는 일이 바로 내 삶의 목적 자체라고 꼭 고백해야 할 것이다. 쓸쓸하지만 지금 말이다.


지금도 지나는 아름다운 일이란 한낮 스치는 영화 속의 우는 여인 눈썹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믿어야 하는 순간,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었음을 나 먼저 인정해야 할 듯하다. 나의 것이야말로 서로 '좋은 것'이라며 나만 보았다는 것을 서로 끝까지 확인시키려는 인간들. 그래도 그들과 더불어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살아있기 위한 맨 끝 자존심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쓸데없는 패배자의 질문이라 하겠지만, 남자거나 여자거나 저 모기거나 얼마나 다를 것이냐란 질문이다. 미리 변명을 만들어 보지만, 사람들 먹는 방법이 모기들보다 많이 갖고 있을 뿐이 아닐는지.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 보이는 것이 자꾸 멀리 보일수록 사람의 욕심은 무섭게 변한다. 그것도 교활하게 말이다. 욕심을 내는 만큼 커지는 고통에 조금씩 익숙해지며 불평을 털어놓지만, 한꺼번에 닥친 고통이란 그 순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비열함을 어찌 강조해야 할지. 천천히 알고 있었던 것을 더욱 천천히 고통의 울타리에 몰아 쓰러뜨릴 때, 아름다운 것이나 그러하지 않은 것이나 처음 확인하는 공포거나 모두 같아 보일 것이란 볼펜 찌꺼기 같은 말이다.


꼭 기억해 주길 바라건대, 뭐 하나 남길 수 있을 때 남기란 말이다. 지금까지 알았고 행동했던 것들을 나열하는 일에 남은 힘을 다하란 아주 쉬운 말이다. 혹시 더 남아 있다면 자신 있게 그것을 누구에게든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 나를 알고 있는 모두에게 드러내 놓고 고개 들어 구름을 보란 말이다. 다시 매듭을 지어야 할 시간이다. 사람은 항상 마감하는 버릇에 익숙한 것 같다. 그럴수록 남아 있는 시간이 모자라 간다. 지금 이 아름다움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매번 하늘엔 구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에는.




18-3. 어리거나 늙을 수록 자연인이다


용가면 만드는 코흘리개 아이가 용수염을 들고 가면에 붙이려 두리번거렸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이는 풀 대신 색종이 붙일 밥알을 집어 입에 댄다. 뜨악해하는 자원봉사자.

아니, 얘! 종이 붙이려고 밥풀 가지고 온 거야!

응? 그래도 먹는 거야. 먹는 것과 붙이는 것, 밥풀. 헤헤헤!

후후! 그래 먹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는 거야, 원래. 밥풀은.

훗훗훗!

자원봉사자 입에서 흐르는 소리는 자연의 순수한 바람을 닮은 소리로 들렸다. 아이의 자연스러움을 어찌 어른이 흉내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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