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까.
수술날짜를 잡았다고 양가 부모님에게 통보를 했다.
여전히 친정부모님은 너무 부담 가지 말고 잘될 거라는 말씀 외엔 일체 어떤 말도 없으셨다.
예민한 딸내미와 애처로운 사위를 위한 조용한 배려이셨다.
반면 시댁반응은 역시였다.
다만 이번엔 내가 소통을 일절 하지 않았다.
모든 소통은 남편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 저번에 김치통사건 이후로 난 시댁에 연락을 먼저 하지 않았다.
시댁에서 오는 전화를 거절하지는 못했지만 먼저 선뜻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머님은 뭐라셔?”
“뭐가?”
“수술? 다시 한다고 하니?”
“모... 굳이 또 왜 하냐고 하시지?”
“엥?”
“그건 무슨 뜻 이래?”
“어차피 못 찾는다는데 왜 자꾸 수술하냐는 거지?”
“그럼 어떡하라고?”
“둘이 살면 된다는 뉘앙스 같으셨어.”
“아.....”
더 이상 이어 나갈 말이 없었다. 당사자인 내가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아이 없는 삶에 대해 먼저 말씀을 꺼내실 수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아. 말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절대 시댁문제로 스트레스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기에, 더 이상 시댁반응을 물어보지 않았다.
결혼하고 초 시부모님은 아들을 뺏겼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닐까? 할 정도로 남편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셨다.
이 상황에서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남편에게 수시로 시댁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부모님과 점심을 한 끼 하도록 하기를 cuz제안했다.
남편도 시부모님과 나사이에서 중간역할이 힘들었던 찰나에 내 제안에 기꺼이 그러겠다 하였다.
(남편직장과 시댁이 가까워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난 조금 시댁부모님 간섭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본의 아니게 이 점심자리가 단순한 시부모님과의 점심자리가 아닌 시누이에 시누이 조카까지 합류가 되어 시댁 가족조임이 수시로 점심에 남편 직장 근처에서 벌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주제가 이게 아니므로 자세한 애기는 생략하겠다.
첫 수술 대기 기간에는 남편 눈치를 보느라 많은 대화가 없어다 치면 이번 수술 대기 기간에는 이 수술을 끝나고 난 후에 대해 대화를 계속 시도했다.
사람이 타이밍이 희한한 게 첫 번째 수술에서 보이지 않았던 정보와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자기증’
‘입양’
이번 수술이 실패하게 되면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가짓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저 두 개에 옵션밖에는 없었다.
“여보. 만약에 이번 수술이 잘 안 되면 어떡할 거야? “
“수술 끝나고 생각해 보자.”
“난 아이 포기하기 힘든데.”
“난 아직 거기까지 생각 안 해봤어. 수술 끝나고 얘기하자.”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왜? 벌써? 실패한 후에 일을 생각하지?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나도 이런 대화를 좋아서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실패하게 된다 해도 난 아이 갖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나에 의견을 남편에게 어필하지 않으면 남편도 이 수술을 마지막으로 아이 갖기를 포기할까 봐.
다른 방법을 먼저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이번 수술에서 기적적으로 정자를 찾아, 순탄하게임신을 해서 아이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 수술이 실패하게 되면 우리 부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대한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무 트러블 없이 시간이 흘러 이제 수술하기 D-4일을 남겨 놓은 시점에 또다시 문제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