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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수 Jan 12. 2023

'페미니즘'과 '나'

저는 20대 남자예요.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른다. 요즘 하나의 학문처럼 여겨지는 이것에 대해서 나는 심도 있게 공부한 적도 없다. 네이버에 페미니즘의 정의를 검색하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로 나오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약간 '여성권리 운동'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 또한 그런 느낌으로 이 글을 쓰려한다. 또한, '페미니즘'은 요즘 남녀에게 예민한 주제이다. 다소남자인 이 글을 쓰는 게 걱정되기는 하지만, 한 번쯤 글을 쓰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혹여나 글의 내용이 불편하신 분들께는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괜찮으시다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그 분과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나눠보고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의 대한 첫 관심

내가 21살~22살일 때 즈음, 그러니까 2018~2019년도에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했던 것 같다. 나도 그전까지는 이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게 남자여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회적 이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페미니스트'였던 여대 여자친구를 만난 뒤부터였다. 사실 모든 사람을 '진보', '보수'로 나눌 수 없듯이, 그분을 이분법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이 약간 모순 같기는 한데, 그냥 당시에 사람들의 큰 관심이 없을 때 소리 내어 권리를 주장하던 사람? 정도로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여대에 다니는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요즘 여대에 '페미니스트'가 많다고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 말의 의미는 극단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페미니스트'가 있을 수 있으니 생각의 강요를 받지 말라고 조심하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은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만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Go Wild, Speak Loud"라는 문구가 써진 여자친구의 배경사진을 보고도, 나는 그녀가 페미니스트인 줄 몰랐을 정도로 페미니즘에 무지했다.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을 올린 것을 보고, 나는 그녀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별 생각은 없었다. 불공평한 대우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소속 집단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혹시 페미니즘에 관심 있냐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나고 생각하면, 그녀는 나에게 페미니즘 사상을 넌지시 주입하려고 했던 것 같다. 갑자기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영화관에 데려가, 상영스크린도 몇 개 없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영화를 보여줬고(당시에는 그 영화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영화라는 것을 몰랐지만), 어떤 뉴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자여서 어땠다거나 여자여서 어땠다거나 그런 말들을 자주 했다.

여자친구와 페미니즘 사상에 대해서 크게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혜화에서였던가 시위를 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와 데이트하기로 한 날에 갑자기 그 시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시위에 가는 것은 상관없었다. 사실 상관없다기보다는 내가 다 큰 성인의 행동을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시위의 이유가 '홍대 누드 크로키' 사건이었던 것 같은데, 피해자가 남자여서 수사가 신속히 진행됐다는, 여자였으면 신속히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슈화 정도나 피의자를 바로 특정할 수 있었다 거나한 다른 이유도 있었을 텐데, 피해자가 남자여서 그렇다고 당연시 단정 짓는 것은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날 페미니즘을 주제로 엄청 싸웠고, 이후에도 그녀의 다른 생각들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서 헤어지게 됐다.

그녀가 군대를 가고 싶은데 여자가 군 생활하기에 시설이나 제도 등이 잘 갖춰지지 않아서 못 간다고 했던 것도 있었고, 수많은 장병들이 강원도 전방에서 벽도 아닌 가건물에서 살면서 물이 부족해 샤워도 제한된 시간 내에서 하고 있는데 말이다. 본인은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너는 군대에서 공짜로 돈을 주는데 네가 데이트비용을 더 내야 하지 않겠냐는 것도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과 생각들은 당시 순수했던 나에게 너무나 벅찼고, 큰 충격이었다.



나는 사람을 단순히 고정관념에 의해 '남'과 '여'로만 구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미용실의 '남성커트'와 '여성커트'는 '단발'과 '장발'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온 것이고, 군인, 경찰 시험에서 체력검정의 기준은 남자가 신체적으로 우수하고, 여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의해 성별적 차이로만 구분되어 있다. 신체적 특성으로 대부분의 남자가 여자가 근력으로나 지구력으나 기초체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모든 남녀에게 그 기준을 적용할 정도로 모든 남자가 여자보다 기초체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성인'과 '청소년', '아동' 등으로 구분하는 식당이나 대중교통의 요금체계는 '사회적 지위'라는 기준으로 정해진 것인가. 예를 들어, 무한리필 식당의 '성인', '아동'은 '60kg 이상', '60kg 미만'으로 바뀌어야 하고, 대중교통의 금액 또한,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기름소요가 많다는 전제하에 현실성이 없더라도 몸무게로 금액을 차등부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데이트할 때 남자가 밥사고, 여자가 커피를 사야 한다는 논쟁. 적어도 나는 대부분의 여성보다 많이 먹으니까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깝지 않다.

'남', '여'의 임금격차는 큰 사회적 문제이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성별'에 의한 임금격차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안타깝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자녀'와 '고소득층 자녀'의 임금 차이, '학력'에 의한, '출신지역'에 의한, '외모' 등에 의한 임금 차이는 왜 크게 관심받지 못하는 것일까.



젠더 이슈에서 '입대'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국방의 의무가 남자한테만 편중되어 있다. 심지어 현역 근무를 할 수 없는 건강하지 못한 남자는 공익 근무라도 해야 한다. 반면에, 이런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훨씬 뛰어나고 건강한 여자는 총자루 한 번 쥐어보지 않는다. 

아무리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한들, 나는 여자가 입대하는 사회는 거의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가 현역으로 입대하는 법을 발의해야 하는데, 그 사람은 적어도 인구의 절반인 50% 여성의 지지를 잃게 되고 입법도 하지 못할 텐데 누가 감히 그런 일을 하겠는가. 근데 아이러니하게 남자인 나 또한, 미래의 여자친구나 딸을 군대에 보내기 싫어 반대를 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니까 군대에 가야지'를 사회로부터 세뇌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입대를 하고 군 생활을 하면서 '남자여서' 차별을 당했다.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등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20대 청춘 중 2년을 받치는 남자들의 감내에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으면 좋겠다. 

입영 정책이 이렇게 유지되는 한, 어쩌면 남녀평등한 사회는 존재하지 못할 수도.. 서로의 불편함과 대우를 그냥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지..



이성(異性)인 남자가 생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인 한 작가는 한 달의 1/4, 삶의 반의 반을 함께 하는 생리를 매우 복잡한 상념이라고 표현하는데, 어쩌면 남자에게 생리는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것에 무지하다. 그것을 크게 의학적, 감정적인 측면 두 가지로 이해해야 한다면, 전자는 일반 남자의 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다. 생리가 'Day'가 아닌 'Period'의 개념인 것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됐으니 말이다. 후자는 더 심각하다. 미안하게도 사실 나의 이성(理性)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신체적 변화가 감정을 지배한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 나의 변명이다. 내가 유일하게 ‘공감’이라는 단어를 쓰레기통에 넣게 되는 순간이다. 그저 ‘1 더하기 1은 3이다.’처럼 꾸역꾸역 받아들일 뿐이다. ‘오늘은 ’그날‘이니 여자친구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해야(보다는 받아들여야)지.’ 이처럼 최소 절반을 이해하기를 실패했으니 나는 무지하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초월 집단에 있는 나는 ‘여혐(그 누구보다 여성을 좋아하면서, 혐오한다는 것이 웬 말인가)’이라는 단어가 적지 않게 들린다. 그 시작이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으나) ‘보건휴가’, ‘여성휴가’에서부터임이 분명하다. 하기 싫은 일 혹은 힘든 일을 하는 날에만 그 휴가를 사용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시기하여 입 밖으로 꺼낸 것일 거다. 그녀의 공석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닌 경우에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것은 지금의 나를 더 부끄럽게 하는 일이니, 나 또한 그러했었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Period’의 개념을 이해하고, ‘아파도 참으면서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이해? 동의가 된다.


언젠가 이어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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