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건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버려보자
언제부터 불안했을까. 아마 임신테스트기의 흐릿한 두 줄을 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선명한 두 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줄도 아닌. 임신이 맞긴 한 건지, 간절함 때문에 있지도 않은 줄이 하나 더 보이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나만 불안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임신 출산 카페의 질문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불안한 임산부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두 줄 맞나요?', '저만 보이는 건가요?'부터 시작해서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셨어요.', '임신인데 갈색 혈이 나와요.' 같은 불안할만한 질문들이 이어지고 '임신 중인데 고개 숙이고 머리 감아도 되나요?', '태동이 너무 많은데 괜찮은가요?'같은 내 기준엔 뭐가 걱정인지 모를 질문도 꽤 보인다. 그 와중에 나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어 위로받는 느낌이 드는 이상한 경험도 한다.
임신 중 피해야 될 음식에 대해 알아보다가 황당한 속설도 알게 됐다. 임신 중 닭고기를 먹으면 아기 피부가 닭살처럼 오돌토돌해지고 오리고기를 먹으면 아기 손발이 오리발처럼 붙어서 태어난단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나에게 '그러니 오리고기를 먹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맙소사. 저런 속설이 있는 것도 놀랍고, 믿는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우며, 우리 엄마가 믿는 걸 보니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속설인 것 같아 한 번 더 놀랍다. 이 또한 불안한 마음이 만들어낸 이야기겠지.
무사히 아기가 태어나고 다행히 피부가 오돌토돌하지도, 손가락 발가락이 오리발도 아님을 확인한 후에는 안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랐었는데 건강하게 태어난 걸 보니 건강의 기준이 좀 더 까다로워진다. '누구는 뒤집기를 한다는데', '누구는 기어 다니던데', '누구는 걸음마를 시작했다는데' 같은 비교가 또 불안하게 만든다. sns로 다른 아기의 일상을 쉽게 볼 수 있어 비교하기도 불안하기도 참 좋은 시대이다. 그러고 보니 인스타그램에 올린 우리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도 다른 엄마들의 불안을 유발한 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다.
아이가 4살이 되고 나니 주변에 뒤집기를 못 하는 아이도, 걷지 못하는 아이도, 말을 못하는 아이도 없다. 때가 되면 다 하는 것을 왜 그렇게 불안해했나 모르겠다.
동네 엄마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학습지 이야기가 나왔다.
"영어 노래에 관심을 보이길래 영어 학습지 상담을 받았는데 더 어릴 때 시작하는 엄마들도 많대요."
"저도 한글 좀 시켜볼까 하고 알아봤는데 6살, 7살 되면 늦는다고 빨리 하라더라고요."
이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대놓고 흔들어대니 또 살짝 흔들린다. 다른 아이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해지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걸 보니 불안은 모든 부모의 취약점인가 보다.
부모가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자식이 생겼으니 무슨 일이 생겨서 지켜주지 못할까 봐 불안할 수밖에. 부모가 된다는 건 불안을 감당해야 되는 일인가 보다.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불안도 줄어들 것 같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해본다. 내 불안이 아이를 불안하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를. 내 불안이 나의 가치관을 흔들지 않기를. 그리하여 아이와 내가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