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산 한 번 안 잃어버린 사람이 있을까?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나갔는데 집에 올 때는 비가 그쳐서 깜빡하기도 하고, 비가 온대서 챙겨 나갔는데 집에 돌아올 때까지 비가 안 와서 까먹고 그냥 오기도 한다. 얼마 전 어떤 가게 사장님이 가게 문에 "아 맞다, 우산!"이라고 써 놓은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우산 챙겨 가세요.' 보다 짧고 간결하고 임팩트까지 있는 다섯 글자를 보니 사장님이 얼마나 센스 있는 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웃을 일이 아니었다. 요즘 내가 그놈의 "아 맞다, 우산"을 얼마나 외치는지 모른다. 특히나 아침에는 더 정신이 없다. 큰 애 유치원에 데려다 줄 준비를 하면서 "아 맞다"를 몇 번 외치는지 세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걸 셀 정신이 있으면 "아 맞다"를 안 외치겠지.
"아 맞다, 수저!"
"아 맞다, 휴대폰!"
"아 맞다, 실내화!"
얼마 전에는 겨우 준비해서 아파트 놀이터까지 갔는데 아이 원피스 안에 속바지를 안 입힌 걸 깨닫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한 번 실수했으니 그다음 날은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마스크를 안 씌운 걸 유치원에 다 와서야 알았다.
그렇게 정신머리가 어디에 달려있는지 모를 날들을 보내다가 결국에 민망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더니 아이가 옷에 뭘 쏟아서 여벌 옷으로 갈아입혔단다. 선생님은 세탁해야 할 아이 옷을 지퍼백에 예쁘게 담아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옷이 없는 거다. 아이 유치원 가방도 뒤져보고 유모차 짐칸도 뒤져봤는데 그 지퍼백이 안 보였다. 집에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사 먹였는데 거기에 두고 왔을까? 아니면 유치원에서 아이 신발을 신길 때 잠깐 내려놓고 그냥 왔나?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일단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아솜이 엄만데요. 혹시 제가 아솜이 옷을 받아서 유치원에 놓고 왔나요?"
"아니요~ 어머니 아까 들고 계시던 보라색 가방에 넣으셨어요."
이렇게 민망할 수가. 보라색 가방은 마치 몸의 일부라도 되는 듯 어깨에 잘 메고서는 메고 있는 줄도 몰랐다.
"아하하하. 제 가방은 빼고 아솜이 가방이랑 유모차만 뒤졌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하. 한 번씩 그럴 때 있죠"
한 번씩만 그래야 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서 문제라는 말은 꾹 참고 삼켰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내가 지퍼백을 가방에 넣은 것뿐만 아니라 내 가방이 보라색인 것 까지 기억하시다니! 역시 젊음이 좋구나 싶었다. (선생님의 나이는 모르지만 얼굴을 보고 짐작하건대 20대가 확실하다.)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자꾸 깜빡한다니까
어렸을 땐 이 말이 비겁한 변명인 줄 알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은 가질 수 없는 '나이'라는 강력한 핑계 뒤로 숨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그 나이 돼도 안 그럴 건데요.' 생각했다. 아직 그 나이도 안 됐는데 왜 이렇게 깜빡깜빡하는 지. 나이 탓을 하기엔 아직 너무 젊은것 같아 출산 탓도 해 봤다.
"애 낳으면서 뇌도 같이 낳아버렸나 봐. 머리가 안 돌아가."
"맞아 맞아! 나도 애 낳고 나서 건망증이 심해졌어."
출산과 건망증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지인들의 의견, 이른바 지피셜에 따르면 뇌세포의 일부가 출산할 때 양수에 섞여서 흘러나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는 교대 동기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내 성만 따서 나를 '킴'이라고 부른다.
"킴은 공부 진짜 안 했는데 몇 시간 벼락치기로도 시험은 잘 봤어. 머리가 진짜 좋다니까."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뇌도 스펀지처럼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흡수하던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누가 스펀지를 쥐어짜기라도 하는 듯 간신히 머금고 있는 5분 전 기억마저 뚝뚝 떨어져 나간다.
고작 서른다섯 살에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사실 나도 조금 부끄럽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이만큼이나 지혜롭고 현명하셔서 존경심이 절로 들게 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분들의 비결은 뛰어난 유전자라고 믿고 싶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유전자를 타고난 나는 세월을 온몸으로 맞은 뇌를 애석해하며 오늘도 나이 탓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