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마 50일에서 60일이 되가는 그 시기였을 때다.
아기 귀에 하루에도 수백번씩 속삭여주다 같이 얼굴을 마주보며 노는데 그렇게 옹알이를 했다.
그 한 마디가 그렇게 벅찰 줄은 몰랐다.
이름 석 자 부르지 않아도, 어떤 칭찬보다 깊이 마음에 박힌 소리였다.
처음엔 “응어”, “으어어” 같은 옹알이였다.
그마저도 우리는 박수 치며 기뻐했다.
말이 되기보단 소리에 가까운 울림이었지만, 아기가 자신의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려 애쓴다는 걸 느끼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단어의 형태를 갖춰갔다.
“빠빠”, “까까”, “멍멍”, “마마” 같은 익숙한 단어들이 아기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우리는 매번 놀라고 감동했다.
아기는 단순히 우리를 보고 흉내를 내는 게 아니었다. 사물과 감정을 표현하고 가르쳤던 순간을 기억해두고,
필요한 걸 표현하며 원하는 걸 말로 전하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보며 '소통'이란 단어가 이렇게 작고 투박한 말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말을 배우는 과정은 그 자체로 성장이다.
그저 단어 몇 개 익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의도를 담아 표현하는 법을 익혀가는 시간이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나 역시 배웠다.
아이의 말을 기다려주고, 틀리더라도 바로잡지 않고, 마음을 먼저 읽으려 애쓰는 법을.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조금씩 말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조금 더 천천히, 부드럽게, 아이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게 됐다.
가끔은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투정을 부릴 때도 있다.
“아냐!”, “빼빼!”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버릇없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아이가 자기를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켠은 ‘잘 크고 있구나’ 하고 안도하면서도,
이제부터는 감정 표현뿐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함께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따라온다는 걸 실감한다.
아이가 말이 트이기 시작한 후, 우리 가족의 일상도 조금씩 풍성해졌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답을 해주고, 그 안에서 웃음과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들이 쌓였다.
말이 서툴고, 어순이 엉켜도,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따뜻한 대화였다.
육아는 늘 그렇듯, 기다림의 연속이다.
말을 배우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기다려주는 만큼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했고,
나는 그 기다림 속에서 말보다 중요한 마음 읽기를 배웠다.
이제 아이는 자기 생각을 제법 말로 표현한다.
“아빠 우유주세요”, “안먹어요”, “주세요.”
어느 날은 잠자고 일어나서 나를 빤히 보다가 갑자기 “아빠 사랑해”라고 웅얼거리듯 말하더니,
내 눈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 한 마디에 행복감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말을 배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마음을 배우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한 걸음씩 서로를 이해해가는 이 시간이
우리 가족을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