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에 뉴스를 보는 편인데 내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의 뉴스를 통해 무거운 소식을 들을 때가 많다. 근래 아침에도 뉴스를 통해 그런 소식을 들었다. '아침에는'이 아닌 '아침에도'라고 말하는 것이 대놓고 씁쓸한 아주 슬픈 소식이었다. 한동안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했던 마약 관련 혐의를 받은 모 배우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 나는 내가 잠이 덜 깼나 하며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딱히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 배우였다. 그 배우가 나온 작품이 인생 드라마라고 하는 사람도 워낙에 많았고, 인지도나 이미지도 좋아서 국민배우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사실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으나 그의 죽음이 그 자체로 너무 슬펐다.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들면 삶을 스스로 포기할 수가 있을까. 겉보기와 다른 것은 삶과 그 삶 속의 사람이라 생각하니 나조차 한없이 바닥으로 치닫는 기분이었다.
몇 개월 전, 출근길의 신호 대기 중에 SNS 알림이 떠서 확인을 했다. 과거의 오늘에 내가 누구와 무얼 했는지 보여주는 알림이었다. 평소엔 휴대폰을 잘 보지도 않는데 왜 그날따라 굳이 알림을 바로 확인했을까. 줄곧 뭔가가 나를 무너트리려 망치질을 하는 것 같았다.
수년 전 그날, 나는 그분과 함께 했다. 종종 방문했던 일식집에서 소주를 엄청 마셨던 날이었다.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람.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는 내게 아버지 같이 다정한 분이었다.
그날엔 많은 술을 마신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인생의 선배로서, 이 사회의 한 어른으로서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 그때의 대화 내용은 대부분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속상한 것들이었다. 삶이란 이렇게 쓴 맛이라고 현실을 가르쳐주시면서도 너는 그래도 이렇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따스한 말도 빼먹지 않으셨다. 참 어른과의 대화는 매번 큰 영향을 준다는 내용으로 SNS에 비공개로 나만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겼다.
그날로부터 4년 뒤 그분은 하루아침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주변인들과 연락을 끊고 잠수 타듯 조용히 지내시던 분의 소식을 전해 들은 건 일 년쯤 지난날이었다. 유난히 바쁜 금요일이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커피야, 잘 들어. 울지 말고. 있지..."
울지 말라며 내 걱정을 하면서 겨우겨우 입을 떼 소식을 전하려는 지인의 망설임에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잠시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서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을 꽉 주고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갈 열차를 예약했다. 금요일이라 열차의 좌석을 구하려면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까지 근무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을 하고 얼른 서울역으로 갔다. 열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눈물이 났다. 지난 추억과 나눈 이야기들, 무엇보다 그분의 가족. 순박하게 웃는 모습이 닮은 식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힘겹게 찾은 인생의 길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 어떨지, 어떤 고난과 역경을 겪었을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저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는데 가까워질수록 자꾸 다리가 후들거렸다. 걷는 게 내 뜻대로 잘 안 되니까 짜증 나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빨리 가야 해.' 내가 나를 재촉하며 발걸음을 옮겨 가 그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영정사진 속의 모습은 내가 언제나 보던 모습처럼 밝았다. 그 미소는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런 죽음을 전해 들을 때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남은 가족들은 어떡하냐고. 억울하면 어떻게든 살아서 일은 해결했어야지 하고. 나조차도 누군가의 죽음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 죽음을 곁에서 경험해 보니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남겨두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오죽했겠어.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얼마나 무서웠겠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만 가득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들구나. 어른은 더 아프구나.
벼랑 끝에 몰려 삶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판단하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알림이 떴던 날의 기록을, 말을 되새겨보다가 다시 한번 무너졌다.
"너는 그래도 이렇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있지 않냐."
되짚어 보니 당신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해줄 사람도 없다는 말 같았다. 그런데도 내 생각부터 해주던 분이었다. 커피 일로 전향하고 자리를 잡고 일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로 신경성 위염을 겪는 나를 위해 건강한 먹거리를 챙겨 쥐여주던 분이었다.
그렇게나 온기 있던 사람은 왜 남은 생을 마다했을까. 세상이 당신에게 등을 돌린 것 같아 당신이 세상을 등졌을까. 이야기할 사람도, 이야기를 해줄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목이 메어 당신의 목을 맸을까. 아는 이들은 아는 이유로 슬프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슬프고 만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달라졌다.
입버릇처럼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말하고, 심심풀이로 보던 운세나 앞날을 보는 점 같은 것을 보지도 믿지도 않는다. 오늘의 삶이 내일은 죽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그것들은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오늘을 산다.
그렇게 몇 번씩 무너져가며 하루를 살아낸 내게 남는 것은 그리움이다. 하지만 그리워도 방법이 없기에 SNS 속 잠금 표시로 남은 사진과 기록에 의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