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손님이 있다. 이른바 ‘얼굴이 주문인 손님’.
하늘이 두 쪽 나도 늘 같은 메뉴, 늘 같은 시간. 몇 번만 봐도 그 얼굴은 곧 메뉴판이 된다. 그 손님이 카페 문턱을 넘기도 전에, 창밖에 얼굴만 비쳐도 내 손은 이미 음료를 만들고 있다. 주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음료를 짜란~ 드리면 “엥..? 벌써 나왔어요?” 하고 당황할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변태처럼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나도 카페에 가면 대체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는 하지만, 간혹 그런 날이 있다. 괜히 고소한 카페라테가 먹고 싶거나, 달달한 버블티가 당긴다거나. 메뉴판 앞에서 ‘아메리카노 ↔ 라떼 ↔ 버블티’를 오가는 눈알 굴리기를 시전 하다가, 맞은편 직원 눈에서 ‘레이저빔’이 발사되려는 찰나, 다급하게 외친다.
“아.. 아이스아메리카노요..!!”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방송 작가 말고 늘 다른 일이 당겼지만, 막상 그만두고 나서도 결국 또 작가를 택했다. 연애로 치면 헤붙(‘헤어졌다 붙었다’라는 뜻. 에헴)을 무한 반복하는 커플 같은 거랄까?
대학 졸업 후 들어간 방송아카데미에서 동기들은 하나 둘 쏙쏙 방송국에 뽑혀가는데 나는 과정이 다 끝났는데도 백수였다. 나와 같은 처지의 동기 몇 명과 함께 “수강료가 얼만데!” 하며 2~3개월을 더 들러붙었지만, 결국 시작된 것은 골방 백수생활. 6개월 동안 눈물콧물 쏟으며 나름 심각한 시기를 보내고, 어찌저찌 들어온 일자리는 tbs TV 시사 프로그램. 내가 하고 싶었던 라디오도, 2순위였던 예능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 일한 막내 작가 친구들이 좋아서 1년 넘게 일했다. 우리는 늘 말한다.
“너네만 아니었어도!! 나 정말 방송작가 접었을 텐데!!!”
(참고로 그때 만든 우리의 단톡방은 아직도 건재하다. 10년이 훨씬 넘었다.)
그 뒤로 그렇게 꿈꾸던 라디오를 결국 해봤지만, 환상은 생각보다 금방 깨졌다. 주 1회 방송을 준비하던 TV와 달리 매일이 생방. 그 말인즉슨, 매일매일이 마감이라는 것이었다. 하루치 대본도 벅찬데 DJ 스케줄 등의 이유로 녹음을 몰아서 해야 하는 날이면 하루 만에 5일 치 원고를 쓰기도 했다. 청취자와 아름답게 소통하는 것도 환상이었다. 방송 중에 이상한 문자도 많이 오고, 혹은 문자가 너무 안 와서 그때그때 가라 사연을 써야 했으며, 안 그래도 정신없는 일정인데 PD님까지 성격이 급한 분이시라 말끝마다 “빨빨빨빨!!’을 외치셨다. (‘빨리’라고 발음하는 시간조차 참지 못하시는 분이셨다. 한겨울에도 덥다고 늘 부채질을 하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개편 시즌이 찾아왔고, 이때다 싶어 이젠 진짜 작가 끝이다! 하고 나왔다.
이후에는 나인투식스를 하겠노라며 기업 사내방송 작가도 해보고, 그때 같이 일했던 선배 작가의 제안으로 지상파 스포츠 채널에서 일도 해봤다. 그리고..
그 선배 작가 덕분에(!) 진짜 방송 작가를 그만둘 수 있었다.
누가 그랬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고.
나도 그랬다.
방송 작가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런데
또 작가였다.
대신에, 방송 말고.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