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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05. 2022

가장 잊고 싶은 것부터 써보세요

가장 잊고 싶은 것부터 써보세요. 내가 가장 수치스러웠던 순간,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덜어내고 싶은 순간, 그 순간부터 털어내 보세요. 


글쓰기 수업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당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가장 잊고 싶은 것부터 쓰라는 말. 수치스러웠던 순간을 굳이 떠올리며, 그것을 한번 글로 써보라는 말. 선생님은 덧붙여 이런 말을 하셨다. 그것을 배출하는 순간, 그러니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단어로, 문장으로 쓰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고. 그때부터 진정한 글쓰기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진정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래서 나는 그때 가장 수치스러웠던 순간, 잊고 싶었던 순간에 대해 나열했을까. 나열을 하고, 그것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무언가를 쓰겠다는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글을 읽어 내려갔을까. 


글쓰기에 관련하여서 여러 가지를 듣고 보았는데,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솔직함'을 가장 큰 무기로 삼으라는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솔직함이라. 나는 내가 너무나 많은 거짓말(그것이 하얀 거짓말이든, 검정의 거짓말이든)을 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와 모든 것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나하나를 전부 흩트려놓고 진위여부를 따지고 나면 나는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작아져있을 것임을 안다. 어렸을 적 아이들이 개미보다 더 작아져 부모님들이 찾아다니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나는 작아졌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거짓말에 잔뜩 짓눌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에게도 솔직하지 못해서, 솔직한 글을 쓸 수나 있을까 싶다.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전부 솔직하게 쓴다. 보고 들은 것을 약간 각색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최대한 솔직하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 이야기만 하면 자꾸 작아진다. 남의 이야기는 곧잘 들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린 만큼, 내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줬으면 또 달라졌을까.


솔직한 것이 제일 어렵다. 어디까지가 '솔직'의 범위에 드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펜을 내려놓고, 혹은 노트북의 커버를 탁 소리 나게 닿거나, 아무런 찝찝함 없이 '시스템 종료'를 눌러본 적, 나는 없다. 앞으로도 솔직하되 완벽히 솔직하지는 못한 글을 써 내려갈 것 같다. 아이러니하다. 내가 가장 솔직한 순간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무언가를 쓸 때인데. 그래서 나는 솔직한가. 아닌가.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영영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글을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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