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누군가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번호부를 마구 뒤진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지 않아도 거뜬히 외우고 있는 그의 전화번호를 밖에 놓인 공중전화기에 꾹꾹 눌러본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단축번호 하나에 그를 밀어놓고 서로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굴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또 그렇지 않다.
열한 자리 숫자에 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019,011이 아니라 모두가 010이 되고, SNS가 더 활발하게 몸집을 불리면서 우리는 가끔 전화번호가 아니라 아이디를 먼저 묻는다. 서로를 팔로잉하고, 서로의 팔로워가 되어 그렇게 졸졸졸 시냇물 흐르듯 사이를 유지한다. 상대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활짝 웃는 음소거 사진을 보거나 잔뜩 생동감을 불어넣는 듯한 색색깔의 이모티콘이 가득한 텍스트만 읽고도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군다.
휴대전화 기종을 바꾸면서 안에 있던 내용물이 몽땅 사라졌다. 그전에 있던 휴대폰에 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길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자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휴대폰은 거의 3~4년에 한 번씩 바꾸거나 아니면 더 오래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때 전화번호를 직접 옮기는 건 나만의 조촐한 의식에 속한다. 무작정 모두 옮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름과 번호를 들여다보면서 한참 생각에 빠지는 경우도 잦다. 대부분은 이렇다.
아예 세상에서 사라진 자의 이름이 있다. 전화를 걸어도 받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어느 누구의 이름은 나의 새 휴대폰에 저장될 수 없다. 저장하는 순간, 휴대폰이 더 묵직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과감히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 마음에 새긴다.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서 사라진 자도 있다. 그들은 이전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내 눈을 스친다. 다시 연락이 닿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 이들의 손을 놓는 것엔 그리 많은 품을 들이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나를 마음에서 지웠을 이들의 이름도 있다. 나는 그들을 조금 더 붙잡을지, 아니면 나만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을지 잠시 고민한다. 대부분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예전엔 모든 것을 가득가득 붙잡고 싶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안 잊히는 전화번호가 많다. 예전에는 전화번호가 풍성하면 마음도 풍성해질 줄 알았다. 가끔 나에게 '전화번호부에 몇 명이나 있어?'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그들은 자신의 전화번호부에 자리한 이들의 수를 말해준다. 적게는 몇 십 명이고, 많게는 백 단위가 넘는 숫자를 아주 자랑스레 말한다. 나도 한때는 다양한 이들의 전화번호를 아주 흡족하게 바라본 적이 많았다. 요즘은 글쎄.
'전화번호부에 몇 명이나 있어?' 보다는 '몇 명이나 남았어?'가 나에게 더 어울리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남은 이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아주 간단한 안부를 전해볼까. 이들은 내가 뱉는 아주 뻔한 '미안, 내가 연락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미안, 내가 좀 살갑지 못해서.', '미안, 내가 조금 더 챙겼어야 했는데.' 같은 말을 수십 번 듣고도 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니, 오늘 갑작스러운 나의 연락도 흔쾌히 받아주지 않을까. 아닐까? 모르겠다. 그냥 대뜸 연락해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싶다. 너는 어떻게 지내냐고 되레 물어오면……. 음.
뭔가를 쓰고 싶고, 써야 하는데, 뭘 쓰고 싶고, 뭘 써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나 들려달라고 할 것이다. 그걸 핑계로 오래오래 남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