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한 Apr 14. 2024

날씨가 너무 좋아도 문제 안 좋아도 문제

요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산불이 날 정도의 건조함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표면적으로 볼 때 날씨는 그저 좋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빛나고 있다. 날씨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사람으로서, 나는 요즘 이런 날씨가 달갑기도 하고 그리 달갑지 않기도 하다. 이상하다. 비가 오고 우중충하고, 번개나 천둥이 치는 날씨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날씨가 그저 눈부시고, 선명하기만 해서, 마치 내 죄(?)를 정확하게 직면해야 할 것만 같아서 당황스럽지만……어쨌든 요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당신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가? 사실, 날씨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범위 안에 있다. 기상청도 늘 100% 정확하게 날씨를 맞출 수는 없다. 비가 오다가도 갑자기 날씨가 화창해지는 것은 요즘 자주 있는 일이다. 기후 변화, 기후 위기, 이런 것들을 제쳐놓고서라도 날씨라는 것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나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마구 휘둘린다. 자주 휘둘린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휘둘리고, 나쁘면 나쁜 대로 휘둘리는 것 같다. 


이를 테면. 날씨가 너무 좋은 날에는 꼭 어딘가에 가야 할 것 같고, 창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청소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들어 두렵다. 남들이 모두 어딘가로 떠나는 것 같고, 나 혼자만 남아 우중충하게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한 기분도 든다. 비가 오거나 번개가 치거나 천둥이 울리는 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이기도 한데, 이럴 때도 내 기분은 그저 한없이 바닥을 치기만 한다. 내가 '그런' 날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딘가 안전하게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비를 맞지 않고, 방에 물이 들어차지 않고, 흠뻑 젖지 않은 채로, 방에 가만히 앉아서 내리치고, 내리꽂는 소리를 그저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비를 흠뻑 맞고, 잔뜩 쪼그라들어도 그 날씨가 좋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날씨 때문에 어떤 커다란 피해를 입고도 그 날씨를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그때는 선뜻,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듯, 날씨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씨라는 것은, 사람 마음을 이렇게도 변덕스럽게 만든다. 꼭 자기처럼.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우울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무언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선명하게 느껴져서 우울하다. 햇빛이 너무 강렬하고 선명해서, 초록이 맹렬한 초록이라서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이제 생의 열기가 한껏 느껴지는 여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나는 우울할 것이고, 자주 우울할 것이고, 가끔은 기분이 좋을 것이고. 모르겠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대비해서 가방에 묵직한 우산을 넣고 다니다가도, 오늘은 비가 오지 않겠지 싶어서 우산을 내려놓고 집을 나섰을 때, 꼭 그럴 때 갑작스럽게 소나기를 만나는 것처럼, 그래서 흠뻑 젖는 것처럼, 나는 요즘 그런 날을 보내고 있고 그런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읽어야 할지, 무엇을 보고 들으면 좋을지에 관련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척척 사서 읽었고, 보았고, 행복해하곤 했는데, 요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씨인 것 같다. 모든 것을 날씨 탓하면 편한 것 같다. 물론, 날씨를 조장하는 누군가는 이런 내가 싫겠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누군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난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보너스'라는 말이다. 말이 참 좋다. 아침에 일어난 것 이후로는 모든 것이 보너스라니.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와닿는 말이다. 말의 힘이다. 이런 것이 말의 힘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말을 되새긴다. 일어난 이후부터 모든 것이 보너스. 물을 마실 수 있었던 것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날씨나 탓하면서 내 우울을 넘길 수 있는 것도, 그러면서 글 한 편을 또 쓸 수 있는 것도. 다 보너스. 내가 지금 이런 상태라는 것을 쓸 수 있는 것도, 쓰면서 내 기분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수 있는 것도, 그래서 잠깐이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것도, 이런 글을 쓰는데, 이런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내가 되려 위로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도, 글을 여기서 마무리지어야겠다고 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도, 다 보너스. 보너스. 

 

이전 16화 아 나도 유튜브나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