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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May 05. 2024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

어린이날을 기념하며

비가 내린다. 비가 엄청 많이 내린다. 얼마 전 내린 비가 봄을 맞이하는 마지막 비일 줄 알았는데, 그런 나의 생각을 가볍게 무시하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좋다가도, 어린이날을 완벽하게 즐기지 못할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안쓰럽다. 다들 실내에서 놀고 있을까?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애석해하며 부모님을 향해 울음을 발사하고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 친구들 중에도 '엄마', '아빠'가 있다. 그들은 나를 자연스럽게 이모와 고모로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인식하지 못한다. 쌍둥이도 있고, 여자아이도 있고, 남자아이도 있다. 오늘 그들은 말한다. 미치겠다고. 어디 갈 곳도 없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좁은 실내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집에서 놀려고 하니, 아이들은 새로운 곳에 가고 싶어 하고 뛰어놀고 싶어 한다고.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안쓰럽다. 


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리고 있다. 사실 어린이날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뭐 한때 어린아이였지만 지금은 아닌 나로서는 이 날씨가 좋다. 비가 내리고,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면서, 집에서 글을 쓰고 무언가를 읽을 수 있는, 그것도 빗소리를 벗 삼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 나른하다. 오늘 정말 오랫동안 잠을 자서 오후를 넘긴 상태에서 일어났지만, 마음만 먹으면 더 잘 수 있을 것 같다. 잠은 왜 자도 자도 그리운 걸까 생각하면서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 보겠다. 


나의 어린이날은 어땠나, 문득 생각해 본다. 사실, 어린이날의 기억은 별로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어린이날마다 나를 안고 애써주신 부모님께 죄짓는 듯한 기분이지만, 정말이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말고는 어린이날에 무엇을 했는지 선뜻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으러 갔을 수도 있고, 그 당시 집 근처에 있었던 작은 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다. 이제 뭔가, 어린아이였던 나보다 부모였던 그들에게 더 가까워진 나이로써 생각해 보면…… 당시 부모님들이(물론 지금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직장인이 된 나는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을 기다린다. 주말을 기다리고, 공휴일을 누구보다 빠삭하게 외우고 있다. 어린이날도 쉬는 날 중 하나이니, 부모는 당연히 그날의 쉼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쉬지도 못하고 아이와 놀아줘야 하다니. 어린이날에 대단한 기억도 없지만, 너무 서글펐던 기억도 없는 걸 보면 나는 대체로 어린이날을 잘 보냈던 것 같다. 새삼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려본다. 


어린이였던 나는 당시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고, 어떤 책자에서 본 그러니까 이름이 화려하다는 이유로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내 집이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 서른이라는 나이는 정말 멀고도 크게 느껴졌으니까, 아무튼 그 나이가 되면 내가 뭐라도 되어있겠지 라는 생각을 굳건히 가지고 있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연예인도 아주비행사도 푸드스타일리스트도 아닌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오늘을 잘 보내는 것만을 최고의 목표로 삼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어린이날에 왠지 모를 설렘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정말 완연한 봄이 오겠지. 어쩌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수도 있겠다. 그때의 나는 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하며 나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어른이가 되어야겠다고, 빗소리를 배경 삼아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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