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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May 06. 2024

어떻게든 계속 켜야지

한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굉장히 심란했다. 글을 쓰는 일은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하고 싶은 일이라 이것을 이어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생활자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옳았기에, 나는 한 달 전부터 꾸준히 일을 알아봤다. 아직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기 때문에 그랬다. 아무 걱정 없이 글만 쓰면서(글을 쓰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걱정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전업작가가 되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원대한 꿈이다. 언젠가는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현재의 상황에 떠오르는 말을 글로 풀어쓰고, 내일 아침 출근을 위한 알람을 맞춘다. 


단기 알바를 했다. 두 달 정도 어느 한 알바가 끝나면, 다음 알바를 하는 식으로 일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젠 단기로 할 수 있는 알바도 극히 적어 제대로 된 일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이때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혔다. 나는, 자격증도 없고, 워드를 잘 활용하지도 못하고, 운전면허도 없는 데다가 여러모로 일을 오랫동안 한 경력도 없었다. 이력서에 무슨 말을 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공모전 수상이나 출판 이력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많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된 내 나이를 붙들고 어디든 이력서를 넣기 위해 노력했다. 


면접을 보고, 불합격의 연락을 받거나 받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 그럴수록 나는 자존감이 더욱 떨어졌고,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나 있을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밤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하여 묻고, 정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고심하는 일이 많아졌다. 애초에 연극영화과를 가지 않고 어떤 기술을 배웠다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나는 정말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 수 없는 어두운 생각 속으로 나는 매일 새벽 빠져 허우적거리기 바빴다. 


그러던 중, 오전 아홉 시에 출근하여 오후 여섯 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9 to 6 일을 구하게 되었다. 주 6일이라 토요일에도 출근하는데, 토요일은 9시부터 오후 1시까지이기 때문에 나름 괜찮다. 오랜만의 출근에다가 처음 받는 인수인계까지 더해져 거의 2주 동안은 꼼짝없이 앓았다.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잠이 들면 금세 누군가 나를 마구 쫓아오는 악몽을 꾸기 바빴다. 피부가 모두 뒤집어져 두드러기가 나고, 거기다 생리까지 겹쳐 아주 고생을 했더랬다. 이제 인수인계가 끝나고 나 혼자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 가까워졌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또 못할 것은 뭔가 싶은 생각에 힘을 내길 반복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거기다가, 얼른 나의 루틴을 만들어서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고 글은 글대로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있었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하루종일 시간을 바치고 난 후 집에 돌아오면 거의 일곱 시, 씻고 밥을 먹으면 여덟 시, 이제 뭔가 좀 해야겠다 싶어 책상에 앉으면 노곤하고 피곤하다. 그냥 빨리 잠들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지금 자고 몸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다음날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한 페이지를 그냥 비워놓은 채 넘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찝찝하다. 생활의 패턴을 꼼꼼하게 잡아보고, 괜찮은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이 읽고 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가 말했다. 넌 그래도 대단하다, 하고 싶은 일이랑 해야만 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원래는 그렇게 말할 의도가 아니었는데 말이 헛나왔다. 나는 말했다. "계속 켜야지." 친구는 되묻지 않았다. 나도 고쳐 말하지 않았다. 내가 원래 하려던 말과 헛나온 말의 맥락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야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의 회로와 말의 회로가 엉켜서 "계속 켜야지"라는 말을 뱉게 되었다. 계속하는 것과 계속 켜져 있는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고치지 않았고, 친구도 가만히 들어주었다. 


가끔은 꺼진 상태를 이어가도 좋겠지만, 지금은 계속 켜져 있는 것이 중요할 때인 것 같다. 켜져 있음으로 많은 것에 집중하고 싶다. 본인의 on, off 스위치의 위치는 본인만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의 스위치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누르거나 누르지 않는 것도 본인의 자유일 것이다. 나의 스위치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한번 잘 살펴보자, 그것이 on인지, off인지도. 우리는 적절할 때 켜져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스위치를 힘주어 누르는 힘을 기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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