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번 여행, 시작부터 망한 것 같다

슈투트가르트 여행기(2)

by 엘 레나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기차역에서 신나게 핫도그를 사 먹고 각자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으나, 역시 애 둘을 데리고 하는 배낭여행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슈투트가르트라는 목적지는 내가 정했지만, 또 엄마표 가이드 투어처럼 '자, 이제는 여기, 다음은 저기!' 하는 식으로 끌고 다니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세부 스케줄을 촘촘히 짜 놓지 않고 아이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주려고 했다. 물론 슈투트가르트의 명소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의 후보지는 여럿 꼽아놓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 여행을 시킨다는 핑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소홀히 했던 나의 안일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말 그대로 내 뼈와 살을 깎는 고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슈투트가르트도 중앙역(Hauptbahnhof) 근처에 관광할만한 포인트들이 많이 모여있다. 신궁전(Neues Schloss)과 그 앞의 광장,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Die Staatstheater Stuttgart), 쉴러플라츠(Schillerplatz)와 같은 유서 깊은 장소에서부터 각종 주요 박물관과 쇼핑 장소들이 중앙역을 중심으로 1.5km 반경 안에 모여있다. 그래서 도착 후에 중앙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중심지에 있는 명소들을 가볍게 산책하면서 아이들과 어디를 가보고 싶은지 대화하며 그다음 일정을 정하는 게 나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슈투트가르트는 공사 중


하지만 이 계획은 슈투트가르트 역에 도착하자마자 와장창 깨지기 시작하는데... 기차역과 그 인근 지역이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양손에 하나씩 애들 손을 잡고 기차역을 헤매기 시작했다. 애초의 계획은 기차역 안에 있는 물품보관소나 코인로커에 무거운 짐가방을 맡기고 주변지역을 탐색하면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었으나, 기차역은 꼭 필요한 철로와 플랫폼, 일부 주요 시설 외에는 대부분 공사용 가림막으로 출입을 막고 있어서 가방을 맡겨놓을 만한 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여행안내소마저 코로나 영향으로 축소 운영하고 있어 안내소의 도움을 받는 것도 포기해야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역 주변만이 아니라 역 안도 온통 공사판.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여야 했기에 우리는 3박 4일 치의 짐을 등에 짊어진 채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가다가 구경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태연히 이야기했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2월의 독일은 생각보다 추웠고, 아이들은 '춥다, 가방이 무겁다' 칭얼대다가 드디어 들어가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장난감 가게.

이렇게 옛 건물들과 박물관으로 가득한 오래된 도시의 거리에서 장난감 가게를 찾아내는 것도 감탄할 만한 능력이다.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이나 와서 가고 싶은 데가 고작 장난감 가게라니...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찬 바람을 피할 수 있게 해준 장난감 가게가 고마웠다.


아이들이 장난감 가게에서 2월의 추위와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를 잠시 잊고 정신없이 구경에 빠져드는 동안, 나도 생각을 정리하고 결정을 내렸다. 비상상황에 준하는 지금의 상태에서 또 엄마가 독단적으로 갈 곳을 정하는 걸로!


역시 인간은 다급한 상황이 되면 항상 하던 데로,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엄마가 가이드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여행은 더 이상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시작한 여행은 이렇게 첫출발부터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사가 한창인 역 뒤편으로만 안가면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나도 당황해서인지 애 둘을 데리고 엄청나게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짐가방과 애 둘을 데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일 피난처로 내가 꼽은 장소는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Staatsgalerie Stuttgart)이었다.


- 슈투트가르트 여행기는 다음 편에 계속



슈투트가르트 시내에는 큰 미술관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방문했던 주립미술관(Staatsgalerie Stuttgart)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미술관인 쿤스트뮤제움(Kunstmuseum Stuttgart : Museum of modern & contemporary art)으로 모두 중앙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전면이 유리로 디자인되어 외양부터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는 쿤스트뮤제움은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추상화가 빌리 바우마이스터(Willi Baumeister)를 비롯해 생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어낸 오토 딕스(Otto Dix)의 컬렉션으로 잘 알려져 있고, 현재 독일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기획전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
주립미술관(Staatsgalerie)은 중세 독일, 이탈리아 작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어서 유럽의 미술, 특히 독일 지역의 미술 흐름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기획전시 또한 르네상스 회화부터, 모더니즘 회화와 조각, 현대 설치미술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17세기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출처/참고 : 쿤스트뮤제움 웹사이트,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웹사이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들과 떠나는 여행지를 고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