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찬 아줌마를 통해 자본주의에 눈뜨다

엄마의 브랜딩 002

by 엄마의 브랜딩

내가 있었던 아파트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종종 이런저런 동네의 소문들도 들을 수 있었는데 또 놀라운 소식 하나를 듣게 되었다.


집에 혼자 있던 아주머니가

-위챗(중국카톡)단톡방으로 한국 반찬을 지인들에게 조금씩 팔다가

-장사가 잘되서 상가 임대로 본격적인 사업확장을 하고

-조선족 직원들을 둬서 본인은 양념만 만들고

-상해까지 배달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은 수돗물이 석회수가 나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식자재를 수돗물로 한번 씻고, 정수기 물로 2차 헹궜다. 즉, 조리 시간이 배로 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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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한식반찬은 중국요리처럼 웍으로 휙휙 스피드하게 되는게 아니라 재료 손질하고, 다듬고, 양념하고, 졸이고, 무치고 등등_들어가는 손에 비해 금방 먹어 시간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한마디로 두배의 조리시간까지 쓰면서 요리하는게 좀 더 번거롭단 말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이 많았던 그 지역에선 반찬을 단톡방으로 공동구매로 먼저 주문받아 만드는 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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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찬 만드는 원 재료값은 한국에 비해 배로 싸고

(지금은 좀 올랐지만, 당시 한국돈 200원이면 오이 한 봉지 가득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선 강남 백화점 기준 2개 4,000원이었다.고기도 엄청 쌌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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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받는 가격은 한국과 동일하거나 살짝 더 비쌌다.

(순 이익이 많이 남는단 말)그래서 아예 나가서 사먹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인 특성상 한식을 꼭 정기적으로는 먹어야 속이 개운한 식문화로 스테디 고정 사업은 될수 있었다


3)상가 임대료는 한국보다 말도 안되게 쌌다.

(당시 평균 괜찮은 아파트 근처 상가가 월 50정도였다. 정말 크고 넓은 곳은 월 80정도.물론 추후 한국인들이 많이 가격 올려놓았다고는 한다. 집값도..)


4)어차치 해야하는 요리+니즈집단이 확실히 있음+요리를 잘함+돈을 벌 수 있음

->이 모든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면서 그 반찬 아주머니는 사업가가 된 것이었다.


나는 집한채 사교육비를 쓰고도 중국와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데, 그 분은 요리 하나 잘하는 기술로 저렇게 사업까지 하는구나!


나에겐 큰 문화충격이었다. 문득 두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강남 지하상가에 장사하시는 분들의 가게가 작고 허름하게 입고 계셔서 난 그냥저냥 장사하시나보다..했었는데 목 좋은 매장은 월세만 1억이라는 이야기.


유치원 교사로 있다가 동대문쪽에서 떡볶이 포장마차 가게를 운영한 분께서 24시간 알바생도 쓰지만 분식쪽이 이렇게 많이 남길 수 있는지 몰랐다는 이야기.


그랬다. 나는 사농공상과 입신양명의 문화 속에서 장사는_뭔가 큰 돈은 못 벌것 같은, 전혀 생각 자체도 안해본_그런 요소였다. 학교에서 하라는대로 하고 좋은 학교 좋은 회사를 들어가야 그래야만 희망이 있고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만난 장사의 현장은

-고객의 필요를 채워주고 돈을 번다는 아주 매력적인 파트이자

-회사보다 더 벌 수도 있는 흥미로운 파트였다.


한마디로, 파는 사람이 되면 돈을 버는 것이었다. 사업은 뭔가 대단한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 댓가를 돈으로 받는 것. 그게 전부였다.


헬렌켈러가 손에 냉수를 맞고 충격받은 것처럼 내겐 정신적 충격의 기간이었다. 아니! 이 놀라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 학교에서는 12년동안 왜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지 않은거지? 왜 사업자 등록하는 법, 장사하는 법, 세일즈, 마케팅, 학생들의 재능으로 돈을 버는 법, 투자의 종류, 부동산 등기 떼는 법, 세금 내는 법 등등_이런 구체적 부분들을 왜 전혀 안 알려 준거지??


누가 들으면 참 무지한 말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왜 지금 시대에 아예 금융문맹 파트와 부린이/주린이 등 재테크 파트, 고수파트로 나눠지는지 정말 잘 안다. 정말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고, 부모님들과도 집에서 대화를 하거나 이런 부분들을 따로 배우지 않는 이상 알길이 없었다. 나는 늘 보던 기존 세상의 껍질을 깨고 새롭게 눈뜨기 시작했다. 세상은 흥미롭고 놀라운 것들로 무궁무진한 곳이었다.


그 후, 한국에 짬나서 나갈때마다 나는 닥치는대로 뭔가를 배워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새로운 기회로 하나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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