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인터뷰 7차__Q. 어린 시절, 가장 소중했던 물건은?
종용에게 ‘소중한 물건’이 무엇이었냐고 물었을 때 나는 내심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일상 속에서도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신기하고 놀라운 물건. 보기만 해도 닳아 버릴까 봐 다락방이나 곳간처럼 나만 아는 깊숙한 곳에 모셔둔 귀한 물건. 그러다 어느 날 그 물건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야멸차게 빼앗기거나 혼란 속에 부서지는 슬픈 장면. 하지만, 종용의 ‘소중한 물건’은 고이 모셔둘 수만은 없는 존재여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종용의 ‘소중한 물건’은 하늘을 날아야만 값어치를 하는 그런 존재였다.
Q. 아빠, 어릴 적에 가장 소중히 여긴 물건은 뭐였어요?
‘내가 아끼던 물건이 있었나?’ 할 정도로 우리 시절에는 아끼거나 소중히 여길 물건이 그다지 없었다. 왜냐면 다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똑같은 물건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우리 때는 생활이 어려웠고 모든 게 부족했다. 소중한 물건이라고 해봤자 그저 새로 산 옷이라든지, 신발, 겨울에는 벙어리장갑이나 귀마개 정도였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잘 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똑같았다. 학용품은 연필하고 지우개, 연필 깎는 칼 정도를 가지고 다녔다. 그것도 책보에 싸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니 것, 내 것’이 없이 함께 쓰고 빌려 썼다. 그러니 늘 한 가지나 두 가지 정도는 안 가지고 다니는 게 정상처럼 되어있었다.
옷이나 신발은 추석 때와 설 때를 제외하고는 새것을 사 입을 일이 없었다. 새 옷, 새 신발도 2-3일 정도만 애지중지했지, 그다음부터는 헌 옷으로 갈아입고 일이나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소중하게 다루었던 물건이 있기는 했다. 딱 지금과 같은 계절에 유용한 물건인데, 바로 내 할머님이 목화로 만드신 실이었다. 그건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 실이 없이는 연을 날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님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 주셨는지 알았기에 실을 정말로 소중하게 다뤘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만이 아는 장소에 감추어 놓기도 했다.
난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연이라는 걸 띄우기 시작해서, 6학년 때는 연 만드는 일에 도사가 되어있었다. 종류도 방패연, 가오리연, 아주 애들이 가지고 노는 홍어딱지연(가오리연과 모양은 같지만 좀 작은 걸 이야기함)까지 다양했다. 이런 연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연 날리는 실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날리기 제일 좋은 장소는 우리 마을 좌측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집 담벼락 앞에서였다. 거기서 연을 날리면 춥지도 않고 북남풍을 이용해서 연을 금방 날릴 수 있었다. 물론, 연은 날리기만 하는 게 아니다. 연으로 싸움을 하기도 했다.
병을 깨뜨려서 잘게 부순 다음에 그 유릿가루를 연실에 묻힌다. 그 후에 연을 띄운다. 연이 하늘 높이 날아서 높새바람을 타면 내려오지도 더 올라가지도 않으면서 계속 그 위치에서 떠 있게 된다. 그때 연실을 서로 교차해서 상대방 연실을 끊는 싸움을 하는 거다.
연싸움에서 지면 연이 떨어지면서 실을 달고서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지는 사람은 연실이 끊어지자마자 연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려가야 한다. 연을 끝까지 쫓아가 어떻게 해서든 실을 되찾아서 가져와야 한다. 오늘 찾지 못하면 내일이라도 나가서 찾아와야 했다. 그때 함께 찾아주러 간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에게는 꼭 연 하나씩을 만들어 줬던 기억도 난다.
아, 소중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겨울에 논에 물을 대 놓으면 얼음이 어는데, 거기서 썰매를 타는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 남자들은 대나무로 썰매를 만들었고 여자들은 앉아서 타는 썰매를 만들어서 타곤 했다. 이때는 썰매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이었다. 남자들 썰매는 내가 만들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보려고 한다. 사진으로 봐야지, 말로 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 같다.
종용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증조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실은 겨울마다 하늘을 날았다. 실은 아주 오랫동안 제때 제 값어치를 하며 쓰였다. 어떤 실은 꿈을 싣고 날아가고, 어떤 실은 다시 찾아지고, 또 어떤 실은 제 생명을 다했겠지. ‘소중한 물건’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사용된 이야기는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한참 실을 얘기하던 종용은 썰매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겨울마다 종용의 ‘소중한 물건’들이 하늘을 날고 얼음 위를 미끄러졌다니. 아무래도 종용은 겨울에 가장 행복했을 것 같다.
☎ Behind
아빠, 증조할머니가 집에서 실 만드는 걸 보셨어요?
그럼. 봤지!
목화는 어디서 났어요?
목화는 우리가 재배했지.
재배했다고요?
다른 집들도 다 목화를 재배했어요?
그럼 다 했지.
세상에나. 얼마나 재배했어요?
내가 볼 때 한 500평 이상.
목화로 뭘 하는데요?
다른 집들은 베를 짜서 내다 팔았지.
우리 집은 팔지 않고 모시옷을 만들어 입었고.
옷을 살 수 있는데, 왜 만들어 입었어요?
집에서 만드는 게 더 귀한 거예요?
그렇지. 시장에서 산 게 훨씬 싸고, 우리가 만든 옷이 더 비쌌지.
어린이들도 입었어요?
우리도 만들어 줬지. 많이는 아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한 벌,
5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한 벌,
그런 식으로.
한복도 만들고. 잠옷도 만들고. 모시옷도 만들고.
실은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물레라는 기계가 있거든? 솜을 넣으면 막 땡겨 지면서 실이 돼.
그다음에 찌고 널고를 반복해야 돼.
풀 묻혀서 쫙 널어놨다가. 쪄서 또 널고.
몇 번 그런 식으로 해야 실이 단단해진다 이거야.
실을 만들면 증조할머니가 연날리기할 때 쓰라고 줬고요?
그렇지. 두 통을 줘.
그거 받아서 연날리기할 때 쓰는 통에 감아놓는 거야.
실 두 통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는데요?
일주일 정도면 두 통을 만들 수 있어.
다른 일 안 하고 오로지 실만 만든다고 했을 때.
크어-
목화로 만든 실이 연싸움할 때 좋았다는 거죠?
그럼~ 목화 실은 연싸움할 때, 장난할 때 좋은 거고.
단단한 건 나이롱 실이 훨씬 좋았지. 안 떨어지고.
병을 깨서 유리 조각을 실에 바르면 잘 묻어요?
그게 바로 묻겠냐?
돌에다가 깨진 유리 조각을 올려놓고,
돌로 막 찍어서 가루가 되면 헝겊에 올려놔.
그다음에, 자기 연실에다가 딱 대고 십메다 정도만 쫙 묻히는 거야.
연싸움할 수 있는 구간이 있어.
상대방 선수, 그놈도 거기만 쫙 묻히는 거야.
손에 안 찔려요?
장갑을 꼈지.
그럼 그 유릿가루 묻은 실 다시 써요?
딱 한 번만 그렇게 하는 거야.
연싸움을 하고 나면 그 구간은 실로서의 값어치가 없어.
그 구간에 매듭으로 표시를 해놨으니까.
거기만 잘라버리고 연결해서 다시 사용하는 거야.
실도 소중한데 연싸움이 더 소중한 거네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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