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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연_1 04화

인연은 나인가, 타인인가

01 그를 인연이라 느낀 나

by 현루

인연이라는 말은 상대를 가리키는 표현 같지만, 실은 철저히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누군가를 인연이라 느낀다는 말은 곧, 나에게 어떤 감정적 파동이나 의미의 흔적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인연은 언제나 내가 느끼는 것이고, 결국 나의 내부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감각입니다. 상대가 나를 인연이라 여기든 아니든, 내가 그를 인연이라 느낀 순간부터 그것은 내 삶 안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인연은 타인을 지칭하지만, 실상은 나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반영합니다.

내가 특정한 사람에게 끌릴 때, 그것은 종종 그 사람 그 자체라기보다, 내가 그를 통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친숙함, 설렘, 경외감,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통해 그 사람을 ‘인연’이라 명명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외부에서 온 자극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 안에 이미 존재하던 감각들이 누군가를 매개로 일깨워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사람을 인연으로 느꼈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내가 반응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나에게 그 반응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대상 없이 생겨나지 않지만, 대상만으로 완성되지도 않습니다.



인연이란 감정과 대상,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인식해 내는 감수성 이 세 요소가 교차할 때 탄생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연을 특별한 사건이나 운명적인 흐름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운명처럼 보이는 만남도 결국은 내가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이는 첫 만남부터 이끌림을 느끼고, 또 어떤 이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치기도 합니다.

상황은 같아도 해석은 전혀 다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인연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나’라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연을 느끼는 것은 감정의 주관성

그 자체입니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지만, 상대방에게는 단지 일상의 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인연이 덜 진실하거나, 일방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연이라는 단어는 바로 그런 편차와 불균형 속에서도 의미를 갖는 관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타인의 반응이나 인식과 상관없이,

내가 그 만남을 어떻게 체화하고 해석했느냐에 따라 인연은 내 안에 형성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연은 단순히 두 사람이 ‘같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스스로를 통과해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그를 인연이라 느꼈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특별히 느낄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시점에서 마침 그가 내 감정의 파장을 자극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연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이 외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구성됩니다.

따라서 그를 인연이라 느낀 ‘나’를 바라보는 것은, 인연을 바라보는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입니다.

인연이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 하나의 해석이며, 그 해석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경험을 지나왔는지, 어떤 감정에 열려 있는지를 반영합니다.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인연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종종 감동을 받고, 혹은 운명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타인의 행위 때문만이 아니라, 나의 감각이 그것을 감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인연은 타인을 향한 감정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감각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는지, 무엇에 울림을 느끼는지를 통해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순간들이 인연이라 불리는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을 인연이라 느낀 순간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자각이 시작된 때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말, 표정, 기운, 또는 아주 사소한 존재감이 나에게 어떤 울림을 만들었고, 그 울림이 바로 인연의 형태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는 것. 그래서 인연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나의 감각과 해석, 기억의 방식, 감정의 파형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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