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인연은 타인의 시선에서 완성된다
인연은 늘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연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인연이라 여긴다고 해서, 그 관계가 곧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나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인연은 더 깊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방향을 잃고 흐릿해지기도 합니다.
관계는 두 사람 이상이 엮일 때 성립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인연이라는 이름이 붙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라는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단지 마음이 닿는다고 해서 인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닿은 채로 되돌아오는 무언가가 있어야 비로소 인연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인연이라 느낄 때, 나는 그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의미는 내 안에서는 완전할지 몰라도, 상대의 인식 속에서도 공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쪽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감정의 선에 불과합니다.
인연은 단방향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고, 그도 나를 그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관계는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인연은 나의 해석과 동시에, 타인의 시선 속에 내가 어떤 존재로 자리 잡는가에 따라 구체성을 얻습니다.
예컨대, 내가 어떤 이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꼈다 해도, 그 사람이 나를 철저히 타인으로만 인식한다면, 그 관계는 어딘가 비워진 채로 남게 됩니다.
나 혼자 인연이라 믿는 그 감정은 현실 속에서는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내면의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그 기억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그것은 관계라기보다는
일 뿐입니다.
반대로, 나는 그리 특별하게 느끼지 않았던 누군가가 나를 인연으로 여길 때, 나는 그 시선을 통해 그 사람의 세계 안에서 나의 위치를 다시 인식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내게 기대하는 것, 나를 통해 받고자 하는 어떤 감정, 또는 연결. 그 모든 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누군가의 인연 안에 들어 있는 나 자신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종종 당황하거나 부담을 느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시선을 통해 나 역시 나를 새롭게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나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면모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일부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내가 보는 너,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 엇갈리지 않고 마주칠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물리적 가까움이 아니라, 서로의 인식을 인정하는 경험입니다.
인연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를 넘어서, 상대의 존재가 내 존재를 완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에게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
그 인식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조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연은 단순히 감정의 교환이 아니라, 존재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인식과 감정이 엮여 만들어지는 공동 구성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시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관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장을 형성하게 됩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것은 때로 무겁고 불편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선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인연이라는 경험을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