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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둘러보기 계획

12월 생일 자축

by 현루

손만 뻗으면 바다가 닿을 듯한 곳이 여러 군데 있음에도, 나는 이 지역으로 이사 온 뒤 거의 집 안에만 머물렀다.


칩거라고 해야 할까, 자발적 단절이라고 해야 할까. 산도 좋지만, 나는 사실 바다가 주는 그 묘한 기운을 좋아한다.


바람이 부는 날, 차가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중도 장애인 이후로는 한 번도 바다를 보러 가지 못했다.


몸이 자유롭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마음이 스스로를 제한한 면도 없지 않다.

지금 나는 용기를 내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 바다를 보러 가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입원과 진료와 일상적인 생활로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더 컸다.


겨울바다는 차가운 바람과 미끄러운 길, 그리고 휠체어 이동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적 문제들을 동반한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다잡았다.

몇 년간 참아온 욕망을, 늦더라도 실현하고 싶다.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턱은 얼마나 있는지, 길의 포장 상태가 어떠한지. 나에게는 체크해야 할 항목이 수두룩하다.


단순히 ‘바다를 보러 간다’는 일상이 아니라,

내 몸과 조건에 맞는 안전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적인 제약들이 나를 좌절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하나씩 점검하며 준비할 생각이다.


겨울 바다는 차갑고 거칠지만, 내가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양사와 함께 이동 계획을 세우며,

어느 날은 앱 지도를 보고 길을 체크하고,

어느 날은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화장실 위치를 확인한다.

작은 준비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큰 성취감을 준다.


12월이 되면, 나는 근 10년 만에 겨울바다를 보게 된다.

그 긴 시간이 주는 의미와 기다림의 감정이 섞여,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사진도 찍을 생각이다.

바다의 파도와 모래, 차가운 겨울빛을 담고, 휠체어와 함께 찍힌 나의 모습도 기록하려 한다.


그것이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살아 있음과 자유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 될 테니까.


바다를 보는 일,


걷거나 달릴 수 없는 몸으로도 자연을 느끼는 일, 그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진을 브런치북에도 게시하고 싶다.

글로만 남기는 것과 달리, 눈으로 보는 풍경과 몸이 느낀 감각을 함께 기록하면, 나의 일상이 더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과 사진, 두 가지 방식으로 나의 경험을 공유하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조금은 나와 함께 바닷바람을 맞고, 겨울 햇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소소한 즐거움을 미뤄왔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다짐한다.

이제는 미루지 않겠노라고.


날씨와 환경, 몸 상태와 시간. 모든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계획하고 실행하겠다고.


겨울바다는 차갑지만, 나의 마음은 한층 따뜻할 것이다.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기쁨이자 설렘이므로,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계획을 세우면서 문득 지난 과거를 떠올린다.

한때 바다를 마음껏 즐기던 시절이 있었고,

해안가를 걷거나 모래 위를 달리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걷고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지만, 지금은 몸이 제한되어 있어 하나하나 계획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다를 만나는 기쁨은 더 크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양사의 도움과 나의 계획 덕분에, 아마 겨울 바다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닐듯하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겪은 제약과 고단함을 잊게 하고, 삶의 소중함과 작은 행복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 될 것이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 숨을 고르며 웃게 될 것이다.


10년 만의 바다,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내 삶의 작은 승리이자 기념이 될 테니까.


그 바다 앞에서 느낄 설렘과 감동, 그리고 그 순간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일.


이 모든 계획이 내게 주는 의미는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살아 있음과 자유, 그리고 다시 찾은 삶의 즐거움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겨울 바다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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