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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05. 2023

Washington 10. 어제같은 밤이 다시 올까?

너를 좋아하길 잘했어


“이제, 오늘 같은 밤은 다시 오지 않을 거야. 넌 네 인생을 어떤 과업을 위해 바치고 싶겠지. 난 내 인생을 이 난리 통 속에 그저 허비해 버리고 소멸시키기로 결심했어. 언젠가, 어디에선가 너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올해 우리 겨우 열일곱 살인데 살아서든 죽어서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난다면 언제, 몇 살에? 그리고 그때도 우린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될까?“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중



*

나는 지금 환승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어느 지역을 지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 아래 눈덮인 민둥산맥이 초콜릿 광고처럼 흩어져있다. 광활하고 광할한 광경이다. 이제 미국을 떠나야 한다. 나는 미국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다시 오고싶은 밤을 보냈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다. 누군가와 같이 아침을 맞는게 이렇게 따뜻한 일이었나?


인도식 바에 앉아 칵테일을 먹으면서 얘기했다. 나는 미국이 싫어. 미국은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험하게 만들어. 너무 쉽게, 거리낌 없이. 그리고 그걸 애국심으로 포장한단 말이야.

테오는 미해군 장교로 수중 폭발물 제거 임무를 할 때 처음 만났다. 그때도 그는 손가락이 두개만 남은 친구 이야기를 하며 열손가락이 성한 본인의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다치치 마, 하면 이게 내가 하는 일인걸. 했던 테오도르.


<전쟁의 슬픔>은 작가 바오 닌이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사랑이 있기에는 너무 처절한 곳인데도 작가는 주인공에게 한줌의 순애를 남겨놓는다. 테오는 더이상 해군에서 일하지 않는다. 육군이자 전 국방장관인 상사 밑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정당을 위해 일하고 있다. 내년이면 캘리포니아에서 로스쿨을 다니게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어퓨굿맨’의 톰크루즈 처럼 군변호사가 되기위해서.

그럼 해군에 있으면서도 전처럼 위험하게 일하지는 않을거야. 하면서 부드럽게 웃는다. 테오는 미해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영웅이 되고싶었어? 물어보니 이번에 본교에 찾아가서도 이야기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세요. 가장 영웅적인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가 과업에 몸을 불사르지 않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라 좋다. 다행스럽다.


피냄새가 흠뿍 배인 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면 숨을 멈추게 된다. 어제같은 밤이 나에게도 다시 올까?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서도 어제처럼 손을잡고 키스를 하고 원없이 만질 수 있을까? 키스를 너무 많이 해서 입술이 아프다. 이륙하기 전에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 핸드폰 너머로 들은 음성은 똑같이 다정하고 상냥해서 나까지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난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것에 허비하고 소멸시킬 예정이다. 근래 가장 원했던 것을 손에 쥐고 보니 이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다. 비행기 아래 보이는 땅이 가까워졌다. 곧 착륙을 할 모양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다시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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