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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May 17. 2023

대체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데

응? 고관절아.


네? 제 몸에 필라테스요?



우리는 손톱을 상상할 줄 모르니까요. 우리는 성기를 상상할 순 있도록 교육되고 훈련되었어도 손톱을 상상해보지 않았으니까요, 하고 말하는 이야기, 연설하듯이.


유성원,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중


*


필라테스는 무서운 운동이다. 내 몸이 구석구석 답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만든다. 한 번뿐인 생에 일회용인 몸뚱이가 보수할 곳 투성이다. 대충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게 더 문제다.


바에서 앞으로 숙인 채 일을 해서 어깨가 굽은 편이고 거북목 증상이 진행 중이란다. 근육이 가슴 쪽으로만 오그라들어 날개뼈를 지탱하는 등근육이 죄다 늘어나버렸다고. 거북목은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사람한테나 생기는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거울을 보면 눈에 띄게 기울어버린 목과 어깨가 보인다. 이렇게 보기 전까진 몰랐는데.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줄 알았는데.

다른 회원들이 당연스럽게 쭉쭉 뻗고 팔을 드는 동작이 나는 되지 않았다. 안된다기보다는, 되긴 되는데 목 뒤가 엄청나게 뻣뻣하고 욱신거린다. 상체 근육에 욕심을 내느라 플랭크와 팔 굽혀 펴기 등을 했을 때의 자극과 비슷한 느낌이다.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들은 얘기가 저것이었다. 등근육이 늘어나고 약해져 버려서, 같은 동작을 해도 어깨에만 힘이 들어가고 목에 무리가 간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쉐이킹 연습을 해도 스터 연습을 해도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지적을 들었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어깻죽지가 꽝꽝 얼어서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때는 몸이 긴장을 해서 어깨가 굳은 것처럼 보이는 줄 알았는데, 원인을 찾으라면 찾을 수 있는 증상이었다. 나는 틈틈이 가슴을 늘려 오그라든 근육을 풀어줘야 하고, 어깨에 힘이 몰리는 자세와 운동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 거북이가 되기 전에 30분마다 하늘을 보고 척추를 바로 끼워줘야 한다.

가뜩이나 목도 짧은데 어깨까지 구부정하면 정말 난쟁이 똥자루 같을 것이다. 삐그덕 대면서 허리를 펴고 앉는다. 머쓱하게 어깨를 돌리는 스트레칭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어깨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당당하게 팔꿈치를 펴고 이마 위까지 쑥쑥 뻗으면서도 어깨가 욱신거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어깻죽지에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꼭 어딘가 비뚤어지고 나서야 쳐다보게 된다. 필라테스를 하기 전까지 거북목에는 관심도 없었던 나처럼.


문제는 비단 어깨만이 아니다. 유연성이 없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오금을 늘일 일 없는 운동을 했고 그쪽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나이가 서른이 될 때까지 유연성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 이렇게 무지막지한 고관절 스트레칭으로 돌아오는구나. 나의 고관절 가동범위는 상냥한 선생님이 잔뜩 상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양반다리를 하고 발바닥을 붙인 자세에서 덜렁 공중에 떠있는 내 무릎은 봐도 봐도 신기하고 구제불능이었다. 다른 회원들은 골반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건지 선생님이 하는 자세를 고무줄처럼 따라 한다. 유연성이 없는 게 아니었다. 유연성이 없는 상태를 좋아한 거지. 뒷종아리가 땅기지 않고 억지로 구겨접지 않은 자세들로만 찾아다녔다. 아마 내 고관절은 점점 더 웅크려 들어 조금만 벌리려들어도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날 것이다. 선생님은 까마득하다는 표정으로 여섯 번도 넘게 말했다.


“회원님은 고관절 스트레칭 꼭 해주셔야 해야. 꼭, 꼭, 꼭이요. 어깨도 어깨고 굽은 목도 굽은 목이지만 제일 시급한 건 고관절이에요. 아셨지요?”


모르겠는데용.


눈치를 보다가 슬쩍 ‘고관절이 뻣뻣하면 사는데 지장이 있나요?’하고 물어보았다. 이 말은 지금까지 유연성 좀 떨어져도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는 뜻이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선생님이 차분히 얘기했다.


“몸을 반으로 나눠보면 고관절은 거의 한가운데 있는 부분이에요. 다리랑도 연결되고, 척추랑도 연결되는 곳입니다. 고관절을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위아래로 영향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필요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가동범위까지는 나와야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회원님은 현재 다른 분들의 10퍼센트도 안 나오고 계시거든요.”


넹.


이렇게 제멋대로 살다가는 아프고 골골대는 체로 유연성 없게 죽게 되겠군요. 제가 지금이라도 신경 써서 딱딱한 사추리를 쫙쫙 찢으면 죽기 전에 유연한 고관절을 가질 수 있을까요? 티브이에서 보던 발바닥을 귀 뒤로 넘기는 기인처럼요.


사람 몸도 쉬운 게 하나 없다. 조각조각 어찌나 섬세하고 예민한지 괜찮은 줄 알았던 것들이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나는 팔 굽혀 펴기를 무릎 안 대고 스무 번 하는 정도면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등근육이 다 늘어져 너덜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십 분을 쉬지 않고 달려도 너끈하니 나는 튼튼한 줄 알았다. 어깨가 오그라들어 귀 아래에 붙기 직전인 줄은 모르고.

내가 보고 싶어서 이두와 삼두를 만들려고 했다. 복근도 만들고 싶고, 허벅지 근육도 키우고 싶고. 정작 나한테 중요한 건 살에 파묻혀서 보이지도 않는 회음부 대각선의 뼈다귀인데. 철봉으로 매달리기 연습을 하지 말고, 윗몸일으키기를 삼백 번씩 하지 말고 바닥에 누워서 다리나 찢을걸.

생각해 보니 피부에 뭔가를 처바를 때도 내가 좋아하는 얼굴에만 열을 쏟았다. 내 예쁜 눈, 예쁜 코, 예쁜 입, 예쁜 눈썹. 팔뚝이나 발등 같은 보이지 않는 속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엾게도, 몸에도 경중이 있다. 가장 먼저 주목받고 챙김 받는 부위가 있다. 그렇지. 나도 성기를 상상하고 묘사하고 전달하는 것에는 꽤 노력을 기울였지만 가만히 손등 끝에 붙어있는 얌전한 손톱 밑에는 어떤 감각이 웅크리고 있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포로를 고문할 때나 사용되는 도구 아닌가. 손톱 같은 것에게까지 하나하나 촉각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머리가 펑 터져버리면 어떡해. 세상에 사람에 운명에 물건에 사소하고 잡다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들여다보다간. 그래서 호되게 혼나고 있다. 이두와 광배를 만들어보려 했다가 고관절 우는 소리는 듣지 못하는 바람에.


일부러 눈을 감고 사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흔쾌히 들어줄 이야기만 하고 싶어서 가장 뽐낼 수 있는 것들만 집요하게 다듬어내는 삶. 이렇게 나에게도 내 몸에게도 무지한 삶. 왜 혼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것들을 무시해 왔던걸 느끼지 못할까.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유연한 것들을 멸시했었나 보다. 내가 굽히지 못하고 벌리지 못하니까 그 모든 섬세함들을 징그럽고 기이하다고 생각하려고 했었나 보다. ‘여자들이 하는 것 같다’고, 그런 건 ‘건강과 상관없다’고 치부해 버리면 나는 역동적이고 당당한 사람이 되니까. 그래서 복싱과 레슬링에 매달렸다. 발레와 요가에게서 도망치면서. 그 대가로 이제는 일주일에 세 번 고문 같은 스트레칭을 당한다. 집중적으로 고관절에만 자극을 주는, 다소 가학적이라고도 느껴질 만큼의 강도 높은 스트레칭을.


이제는 손톱의 말도 들어줘야겠다. 생각해 보니 나는 성기에게 너무 많이 마이크를 넘겨줬다. 이제는 걔가 하는 말이 좀 시끄럽기도 하다. 쓸데없이 남사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마이크의 각도를 살짝 옮겨서, 대체 고관절이 나한테 무슨 불만을 갖고 있는지 먼저 들어봐야겠다.

너 진짜 나한테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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