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내 글에 혹평을 받고 싶다

대(大)수필시대

by 김과영




혼자 쓰는 사람은 글 봐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지금은 '에세이'가 각광받는 시기다. 에세이스트 전성시대인 만큼 쓰는 사람의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유의미한 피드백은 희귀해졌다.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되어있지만, 나를 불쾌하게 만들 댓글도 없는 형편이다.



앞선 글에서 유시민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의 두 가지 철칙을 제시했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철칙에 도움 되는 방식이 '텍스트 요약'이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하고, 잘 읽으려면 잘 요약해야 한다. 요약은 텍스트를 읽고 압축하는 작업이다. 독해력이 좋을수록 요약을 잘할 수 있다. 요약을 전제로 텍스트를 읽으면 독해력이 향상된다. 요약을 열심히 하면 문장력도 발전한다. 독해력, 문장 구사력, 요약 능력은 서로를 북돋는 요소다.


유시민 작가 또한 이렇게 했다. 그는 대학 시절 가입한 학회에서 매주 책 한 권을 읽었다. 그때 맡은 부분을 요약 발표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텍스트 요약 훈련을 했다.




남에게 평가받는 것이 싫어서 혼자 움켜쥐고 있으면 글이 늘지 않는다.



그는 텍스트 요약을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게끔 권한다. 자연스럽게 자기 글을 남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남에게 평가받는 것이 싫어서 혼자 움켜쥐고 있으면 글이 늘지 않는다. 이것이 이번 글의 주제다. 혹평과 악플을 겁내지 말라.


유시민 작가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견해를 기꺼이 듣는다고 한다. 그는 편집자에게 초고 검토를 요청한다. 의견을 수용할지는 말지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미리 못 박는다. 편집자들은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개진한다. 그는 개중에 타당한 것을 받아들인다. 그는 편집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오류를 찾고, 독자와 눈높이를 맞춘다.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니다. 글을 자신의 인격으로 여기면 편집자의 수정 요구를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견해는 독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말이 좋지, 내 새끼 같은 글을 나의 인격이 아니라며 비판을 겸허하게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혼자 쓰는 사람은 글 봐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지금은 '에세이'가 각광받는 시기다. 에세이스트 전성시대인 만큼 쓰는 사람의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유의미한 피드백은 희귀해졌다.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되어있지만, 나를 불쾌하게 만들 댓글도 없는 형편이다.



혹평도 반갑게 듣고 즐겨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글이 는다. 남몰래 쓴 글을 혼자 끌어안고만 있으면 글이 늘 수 없다.



글판의 무게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전 국민이 한 개 이상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도 있으며, 사업을 홍보하는 사람도 있다. 분야가 무엇이든 글쓰기 능력은 필수다.


예전에는 악플을 걱정했지만, 요즘은 무플을 걱정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남의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자신에게 유입하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타인을 먼저 찾는다. 악플이라도 기다려지는 시대다. 혹평을 반갑게 듣지 않고, 즐기지 않을 리 만무하다. 남이 달아준 댓글 하나를 어화둥둥 끌어안고 경사 났다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혹평을 받기 위해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다음 이야기




















「나는 내 글에 혹평을 받고 싶다」 대(大)수필시대 20.02.23.日.


keyword
작가의 이전글[ㅇㅇ은 '북페어'를 기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