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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별 아나운서 May 10. 2024

늘 남에게만 질문하던 사람, 이제야 나에게 질문해봅니다

[김한별 아나운서의 KBS 퇴사 일기 #11]

많은 분들이 아나운서를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방송으로 아나운서가 표현하는 많은 부분이 

말로 이뤄지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아나운서는 '잘 듣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말의 힘

말과 언어를 전문적으로 갈고닦는 아나운서들은

이 ‘말의 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시청자는 ‘옳은 정보’라는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의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나운서의 ‘말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하죠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말을 하게 됩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도

고민에 고민을 더합니다

나의 말 한마디에 힘을 싣기 위해

평소 ‘신뢰감’을 높이는 연습과 훈련을 합니다


그래서 아나운서들은 말합니다

‘누구나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잘' 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이죠

그래서 한 마디의 말을 던지기 전에 참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렇게 말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아나운서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말을 잘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잘 듣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나운서를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아나운서는 '잘 듣는 사람'입니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는 늘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쩌면 모든 방송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가면서

그것이 대화가 되고, 정보가 되고, 감동과 공감이 되죠

방송의 흐름에 적절한 질문을 하고

시청자가 궁금할 질문을 대신 던지고

출연자가 편하게 답할 수 있게,

때로는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합니다


하나의 질문을 하기 위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그 사람의 작품이나 활동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을 읽으려 노력합니다

시청자가 궁금해할 질문을 위해

참 많이, 누군가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합니다


그렇게 첫 질문을 하고,

다음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합니다

내가 준비한 ‘다음 질문’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들으면서

상대방이 답하는 내용과 어울리는,

그래서 전체 흐름에 가장 어울리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좋은 아나운서는 그래서 잘 듣습니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 좋은 말을 하기 위해

아나운서는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는 늘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쩌면 모든 방송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육아 휴직을 하고,

저는 낯선 경험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중 가장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은

늘 질문하던 제가 오히려 질문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내 이야기’와 ‘내 생각’을 궁금해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내 결정에 대한 질문이 오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준비하면서 ‘나’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됐어요

그동안 수많은 질문을 하고, 그 생각을 들었지만

정작 ‘나에 다한 질문’은 많이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한 마디가  참 어색했어요


“제 생각은요..”



‘균형’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극도로 아끼던 저였습니다

그것이 아나운서로서 좋은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치 판단보다는 그저 바라보고, 들어주고, 공감하기

내 생각은 최대한 아끼면서 중립과 균형을 맞추기

물론 방송에서는 필요했지만,

나에 대한 질문에까지 

균형과 중립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나운서’라는 무게감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오롯이 나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저는 나와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조금씩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늘 함께하지만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무심했던 나에게

이제야 비로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어제 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저는 나와 조금 더 친해지고 있습니다

나를 더 알아가고 있는 요즘

저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긴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지금

저와 가장 친한,

아니 앞으로 더 친해져야 할

내 '평생 친구'에게 

오늘도 질문을 몇 개 던져볼 생각입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진짜 원하는 거'






그동안 수많은 질문을 하고, 그 생각을 들었지만
정작 ‘나에 다한 질문’은 많이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한별아나운서

#김한별작가

#나를찾는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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