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의 KBS 퇴사 일기 #09]
두 번째 육아(我)휴직을 하고,
매일 새벽부터 하던 출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적응했어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ㅋㅋ)
출근하지 않아서 가장 좋은 점
물론 너무너무 많지만,
그중에 제가 가장 장점으로 뽑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만 가능하죠
아나운서라는 직업도 좋았지만
더 정확히는 '음악'과 '공연'이 좋아서 KBS를 선택했어요
라디오 DJ를 비롯해서 음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었어요
특히, 객석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방송도 진행할 수 있는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
KBS에는 <콘서트 필>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이었어요
그리고 배철수 씨가 진행하는 <콘서트 7080>과
유희열 씨가 진행하는 <스케치북>이 있었죠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아무리 KBS의 공채 아나운서이고
대학생 때 음악활동을 했어도,
유희열 씨 대신 <스케치북>을 진행할 수 있을까?
아뇨
제가 시청자여도, 김한별의 스케치북 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고 싶을 거예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 <콘서트필>의 MC가 되자'
그리고 전 6년 동안 <콘서트필>을 진행한 최장수 MC이자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일한 '아나운서 진행자'였습니다
출근하지 않아서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만 가능하죠
그때는 그렇게 '가능성'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콘서트 필 MC'가 되어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와 무대를 경험한 6년은
직업적 만족감의 정점이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알게 된 뮤지션들과 친해지고
지금도 가끔 만나면 그때 얘기를 많이 합니다
참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또한 저에게는 라디오가 있었습니다
입사한 이후 15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했습니다
라디오 속 부캐인 '별디'를 사랑해 주는 청취자는,
작지만 확실한 만족감을 주는,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이었습니다
라디오는 따뜻했어요
라디오는 늘 위기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라디오만의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직접 소통하며, 영상과 음악을 적절히 활용하는 라디오는
앞으로도 경쟁력 있을 겁니다
자기만의 영역에서 말이죠
그렇게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작은 공간,
저는 라디오를 참 사랑했습니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것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큰 상도 2개나 받았고요
(한국아나운서대상 예능상, 한국 PD 연합회 진행자상)
제가 이곳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버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콘서트필>이 폐지되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틀 수 없었습니다
소위 '대세'인 음악만을 틀어야 했습니다
청취자나 제작하는 우리가 원해서가 절대 아니었어요
과도기를 거쳐 프로그램 이름이 바뀌었고,
음악도 색깔도 바뀌고, 청취자도 바뀌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았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육아(我)휴직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더 아나가 KBS 퇴사까지 이어졌고요
요즘 저에게 다시 묻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요
안 입던 옷도 입고
안 하던 스타일도 하고
안 보던 책도 보고
안 듣던 음악도 듣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신경 쓰다 보니
남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 몰랐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찾아가는 시간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고 다시 고민해야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요
아 일단,
내가 좋아하는 커피부터 한 잔 내려야겠네요
내가 이곳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버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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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나를찾는육아我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