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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Jul 18. 2023

쿠폰 만료보다 빠른 진도

물 만난 물고기 되기 프로젝트 13

  수영을 등록하는 날부터 생각한 것이 있었다.


  바로, 수영을 시작한 나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생각한 적절한 보상은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이렇게 네 가지 영법 중에 두 가지씩을 마스터하면 나에게 수영복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저 ‘수영복이나 구경해야지~’ 하며 가입했던 사이트에서 할인쿠폰을 줬는데 생각보다 할인이 많이 되는 것이다. ‘이거 이거, 안 사면 후회하겠는데?’ 싶어서 일단 장바구니를 채우고 그 쿠폰 만료일자를 디데이로 두고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다행히 그 쿠폰은 한 달 정도의 기한이 있었고, 그때쯤 배영 발차기를 배우고 있을 때여서 ‘배영 팔 돌리기를 배우고 평영 발차기를 배우려면 아직 멀었겠네’ 생각했다.


  쿠폰 만료를 1주일 정도 앞두고, 평영 발차기 배우려면 먼 것 같으니까 그냥 수영복은 미리 사두고, 새 수영복을 개시하는 건 평영 발차기 배운 다음에 입어야지! 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 주가 시작됐다. 월요일에 배영 팔 돌리기를 배우고, 수요일에 나의 보상 플랜을 알고 있는 수친에게 쿠폰 만료가 다가온다며 일단 사놓고 평영 배우면 입을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놀랍게도 금요일 수업 끝나기 5분 전에 평영 발차기를 맛봤다.

  와우.


  쿠폰 만료는 화요일 정오였는데, 평영 발차기를 금요일에 배웠다. 무려 쿠폰 만료 4일 전에 말이다. 5분 전에 배운 거라 셈을 안 한다고 해도, 월요일에 평영 발차기를 처음 배운 거라고 해도, 그래도 쿠폰 만료보다 무려 하루 먼저 평영을 접했다! 이거 진짜 실화 맞나요?

  조금 당황스럽지만, 때를 잘 맞춰서 수영복을 주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거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거 같은데 왠지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유형을 배우면서 터득한 물 잡기가 배영에서도 빠르게 잘 먹힌 것 같다. 배영 호흡 타이밍도 몸에 잘 익고, 배영 발차기를 오래 연습해서 인지 몸도 잘 뜨고, 물 잡기도 잘 되고.

  사실 아직은 모든 영법을 팔로 해내고 있는 느낌이긴 하다. 발차기가 힘을 못 받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강사님 눈에는 일단 내가 앞으로 잘 나가니 잡아 세워서 평영 발차기를 알려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젠 자유형도 킥판이 오히려 불편한 지경이고 배영도 바로 팔 돌리기부터 하니, 평영 발차기를 배울 때가 맞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 당혹스러움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은 새 수영복을 사서 기쁘다. 집에 가면 따끈따끈한 수영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수영복을 2개월 반정도 입었지만 조금 질려가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딱 잘됐다. 새 수영복을 입고 새 마음으로 평영을 시작해야지!


  모두가 입을 모아서 평영이 어렵다고 하던데, 나는 내심 ‘에이~ 별 거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영은 정말 별 거였다. 특히 발 모양이 너무 어려웠다. 축구 인사이드킥을 생각하면 쉽다는데, 나는 축구에 축자도 모르니 내겐 의미 없는 설명이었다. 골반과 무릎이 전에 해본 적 없는 자세를 하느라고 애를 먹는 느낌이다.


  분명 지난 글에서 진도 욕심을 부려서 혼난 얘기를 썼는데, 이번에는 진도가 호록 나가버린 이야기를 쓰려니 뭔가 어폐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진짜 실제 상황이다.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 진도 스탑 상태가 될 것 같다. 평영은 자유형과 배영과는 다르게 아주 오랜 시간이 들여서 터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잘 만들어 나가야지.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고, 거기다가 예쁜 수영복도 하나 더 늘었으니까, 더 해볼 맛이 난다. 계속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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