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경컵을 쓰기 때문에 월경을 하더라도 수영에 나올 수 있는데,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종종 여성 수강생들이 일주일 정도 종적을 감추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회사일이 바빠서겠지 라며 넘겼는데, 생각해 보니 월경 때문이었다.
한 달 분의 수강료를 내고도 매달 일주일치의 강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불공평한 일이다.
일주일만큼의 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월경 때문에 멈춘 일주일 동안 수영의 감을 잃고 다시 호흡부터 정돈하고 시작해야 하는 일은 매번 겪어도 더딘 느낌일 것이다.
내가 다른 여성 수강생보다 출석률이 높은 이유는 단연 월경컵 때문이다.
월경하는 일주일 동안 생리컵을 쓰는 내가 하루라도 더 나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므로 수영의 감도 잃지 않을 수 있고 진도도 잘 나갈 수 있다.
물론 나도 월경 때문에 몸이 안 좋을 때는 하루정도 강습을 빠지는데, 하루와 일주일은 큰 차이니까.
월경으로 인한 이런 불공평함이 나는 정말 아쉽고 안타깝고 슬프고 화가 난다.
월경의 혹, ‘우울 멍청 폭식’
PMS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PMS는 월경 전 증후군이라고도 하며, 월경 시작 며칠 전에 시작돼 일반적으로는 월경 시작 후 몇 시간 정도 후면 끝나는 신체적 심리적 증상을 일컫는다.
PMS의 증상에 우울, 무기력, 불안, 분노,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이 있다. 또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증상이 월경기간까지 지속될 수 있고 강도 또한 심해질 수 있다고 한다.
나 또한 PMS를 겪고 있다. 내 경우엔 우울과 멍청, 폭식의 증상이 나타난다.
먼저 ‘우울’은 기가 막히게 월경 시작 3~4일 전부터 세상이 나를 빼고 돌아가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툭 치면 눈물이 바로 나올 것 같은 눈물 오분대기조 상태가 되고, 걸음걸음마다 우울이 뚝뚝 묻어나면서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로 빙의된다.
‘우울’ 증상이 발현되면 누가 어떤 위로와 긍정의 말을 하더라도 무조건 부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불안과 분노를 빠르고 오가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이 우울은 정말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번 매달 나를 찾아와서 괴롭게 한다.
다음은 ‘멍청’ 증상이다.
PMS 증상에 ‘집중력 저하’라고만 적혀있는 것이 통탄할 지경으로, 월경을 하는 동안에는 사람이 대차게 멍청해진다. 집중력 ‘저하’ 수준이 아니라 집중력 ‘전무’ 상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중 자체가 잘 되지 않고, 원래는 눈감고도 했던 모든 일들이 속도도 느려지고 완성도도 개발새발이 된다.
‘멍청’ 증상이 발현되면, 별 수 없이 일주일 동안 멍청한 사람이 돼야만 한다. 다른 방도가 없다.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업무 효율은 개나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는커녕 캐캐묵은 아이디어라도 말하면 용한 상태가 된다. 그저 멍청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달은 제발 ‘멍청’ 증상이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폭식.
이건 우울과 연관이 있나 싶기도 하다. 우울함이 극도에 차오를 때 ‘맛있는 걸 먹어서 해결하자!’라는 마음이 들면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우울은 월경 때마다 나를 찾아오기 때문에 가끔 우울이 같이 데리고 오는 친구 같은 이 ‘폭식’이라는 증상이 나는 버거울 때가 있다.
이전 게시글인 ‘수영이 이렇게 빡센 운동이었나요?’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알약 하나로 끼니가 해결됐으면 좋겠는 사람이기 때문에 폭식을 하는 내가 굉장히 낯설다.
낯선 것도 낯선 것인데 마음만 ‘많이 먹고 싶다!’이지 몸은 또 따라주지 않아서 항상 음식을 남기게 되고 3~4일을 그 배달음식을 데워서 먹게 된다. 이 얼마나 건강하지 않고 자기 파괴적인 일인가. 정말이지 폭식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우울’, ‘멍청’, ‘폭식’ 이 세 증상이 전부 함께 같은 달에 나타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물리적으로 몸이 아픈 것까지 더하면 정말 일주일 동안 좀비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진짜 인간 좀비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월경으로 일주일을 버리지 않으려고 약효가 떨어지는 순간이 없게 4시간을 맞춰서 진통제를 계속 먹고, 배에 늘 찜질팩을 올려놓고, 되도록 7시간 반 이상 취침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일을 매달 반복한다. 진짜 괴롭다.
이 고통과 불편을 매달 여성들만 겪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슬프고 불공평하다.
월경컵의 축복
월경컵을 쓰고 난 뒤로 그래도 나는 양반이 된 케이스이다.
여기서 양반이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생굴을 내 몸으로 낳는 느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양이 많은 날에도 3~4시간에 한번 화장실에 가서 생리대(월경대)를 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잠을 잘 때마저 혈이 샐까 걱정하면 선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주일 내내 검은 하의만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생리대의 화학성분과 혈이 섞여서 만들어내는 꾸릿한 냄새가 옷을 뚫고 풍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위에 나열된 모든 것이 월경컵을 쓰고 사라졌다.
나에게 월경컵은 가히 혁명이었다.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해도 새지 않고, 잠도 푹 잘 수 있다. 최장 12시간 까지 착용하고 있어도 되기 때문에 가끔 내가 월경컵을 쓰고 있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 거기다가 진통제의 약효까지 잘 들어준다면 내가 월경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정말 제발 쓰세요, 월경컵!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위에 나열된 불편함과 고통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수영을 하는 여성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월경컵을 권하고 싶다.
실제로 센터에서 나와 말을 튼 모든 여성 수강생에게 월경컵을 권했었다. 그들이 하루빨리 월경컵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애초에 월경을 하지 않으면 참 좋으련만.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지혜롭게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만드는 지름길인 것 같다.
부디 나의 글을 보고 많은 여성들이 생리대에서 탈출해서 월경컵의 신세계를 맛봤으면 좋겠다.
월경컵의 진입장벽
내가 월경컵을 제발 쓰라고 하면 다들 불안과 두려움에 가득 찬 질문들이 많이 한다.
가볍게 말하자면, 월경컵을 못 빼서 산부인과에 간 적은 월경컵 사용한 7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고, 처음 1년 정도만 팬티라이너를 함께 사용했고 그 뒤로는 정말 월경컵만 착용해 왔다. 고로 안 샌다.
월경컵의 크기는 본인 질의 길이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데 월경기간 중에 직접 길이를 측정하는 것이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내 몸과 내 삶의 질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암시롱 않다.
그밖에 다양한 궁금증과 오해는 나무위키 링크를 첨부할 테니 링크를 참고하면 좋겠다. 세상에 나와 비슷한 여성들이 많은지 정말 상세하고도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