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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Jan 18. 2023

인공지능 아트는 예술인가

인공지능 아트, 미메시스와 네메시스의 경계에 서다

미메시스(mimesis)와 네메시스(nemesis)는 저명한 역사학자 토인비의 책 《역사의 연구》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어느 사회든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소수의 천재가 있다. 이들의 창조적 작업이 성공하려면 많은 일반인의 호응과 흉내 내기가 뒤따라아야 한다. 이렇게 다수 일반이 소수 천재를 모방하는 현상을 미메시스(모방, 재현)라 한다. 한편, 미메시스 과정에서 일반인이 창조적 천재들을 따르지 못하거나 미메시스 자체를 철회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때의 현상을 네메시스(정복 불가능, 응보)라 부른다.

오늘날 4차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칠게 세계를 휘저으면서 그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은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와 있다. 음성인식으로 독거노인을 돕는 디지털도우미, 자율주행자동차, 챗봇 같은 장치 뿐만 아니라 스마트한 금융지원앱, 요리도우미 로봇, 지능형 CCTV 등 생활 곳곳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만날 수 있다.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예술분야도 피해갈 수 없다. 음악, 무용, 소설, 그리고 이제는 미술까지 인공지능의 침투가 본격화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로 제작한 미술 작품이 부쩍 늘어나면서 인공지능 작품의 예술적 가치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인공지능 아트야말로 미메시스와 네메시스의 한가운데 서있다.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들

지난달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작품은 게임 기획자 제이스 M.앨런이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든 것이다. 이보다 앞서 2018년 10월에는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제작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가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예상 낙찰가 1만 달러를 훨씬 넘는 43만 2천 달러(약 5억 원)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에드몽 드 벨라미>는 파리에 있는 스타트업 ‘오비어스(Obvious)’가 개발한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그린 작품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2022)과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2018)

   

인공지능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한 데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업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역할이 크다. 이들 회사는 자사의 인공지능 엔진의 우수성을 알릴 목적으로 인공지능 화가들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드로잉 봇(Drawing Bot)과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 구글의 딥드림(Deep Dream), 트위터의 딥포저(Deep Forger)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그래픽 인공지능 전문기업 펄스나인의 인공지능 화가 ‘이메진 AI’가 있다. 이메진 AI의 작품은 ‘갤러리 아이아’라는 전문 인공지능 화랑을 통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넥스트 램브란트 프로젝트(마이크로소프트사), 딥드림 (구글), 딥포저 (트위터)


반면 사용자가 직접 텍스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텍스트에 적합한 그림을 그려 주는 ‘텍스트투이미지(text-to-image)’ 도구들도 대거 등장하였다. 2022년 5월, 인공지능 독점을 반대하는 ‘오픈AI(OpenAI)’ 진영에서 텍스트를 인식하여 사실적인 이미지와 그림을 제공하는 ‘달-이투(DALL-E 2)’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 참가한 ‘미드저니’나 ‘아트브리더(artbreeder)’ 같은 프로그램도 사용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텍스트투이미지 도구다. 최근에는 단순 이미지 제작을 넘어 텍스트 명령어를 입력하면 짧은 영상을 생성하는 인공지능 시스템까지 등장하였다.

한편, 하드웨어 로봇과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예술 작품을 만드는 실험도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1974년 헤럴드 코헨(Harold Cohen) 예일대 교수는 ‘아론(Aaron)’이라는 로봇 화가를 처음 소개하였다. 아론은 코헨교수가 사망하기까지 40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였으며 2007년 샌디에고에 영구 전시되었다. 초기에는 추상적인 형태가 어우러진 그림을 그리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로잉하는 전문가 수준의 로봇 화가가 되었으며, 마침내 1995년에 채색까지 할 수 있는 단계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론은 이미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한 색과 모양으로 매우 강렬한 그림을 그린다.

2019년 영국 로봇기업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 옥스포드대 알고리즘 개발자, 리즈대 인공지능 엔지니어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아이다(Aida)’라는 로봇 화가이 등장하였다. 아이다는 직접 연필과 붓,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영국의 여성 수학자이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백작부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아이다는 실제 사람과 비슷한 외형과 인체공학적인 손을 가지고 있으며, 눈은 카메라로 되어 있다. 아이다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합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카메라로 본 것을 연필로 스케치하면서 그린다.

헤럴드 코헨(Harold Cohen)과 채색중인 로봇화가 아론과  로봇 예술가 에이다(Ai-Da)가 작품을 만드는 모습


인공지능 아트를 만드는 기계학습의 종류

이세돌과 바둑을 둔 알파고의 딥러닝(Deep-Learning)기술과 달리, 인공지능 아트는 ‘생성적 대립네트워크(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라는 인공지능 학습기술을 사용한다. GAN은 다른 딥러닝 방식과 달리 인간이 개입하거나 학습할 데이터가 없어도 신경망 스스로 학습해 나간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큰 기대와 우려를 한꺼번에 낳는다. GAN은 생성자(Generator)와 판별자 혹은 분류자(Discriminator) 라는 두 개의 모델이 서로 학습하면서 영향을 미치는 상호경쟁방식의 모델이다. 생성자가 지속적으로 ‘그럴듯한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 판별자에 투입하면 판별자는 미리 저장한 진짜들과 비교해 값을 생성자에게 돌려준다. 생성자는 이렇게 돌려받은 값을 반영하여 실제와 가까운 새로운 가짜 이미지를 계속 만드는데, 인간이 그린 그림처럼 보일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 수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GAN은 기존 작품과 유사해 보이지만 기존에 없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에드몽 드 벨라미> 역시 14~20세기에 그려진 초상화 1만5천 작품을 토대로 GAN 학습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하지만 GAN은 판별자를 속여 유사하면서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스타일은 만들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은 인간이 그린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판별자의 역할 때문이다. GAN의 판별자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기계가 그린 것으로 피드백을 해 버린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메인대학교 신경심리학 교수인  콜린 마틴데일(Colin Martindale)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즉 인공지능이 작품을 구분함에 있어 ‘인상주의, 입체파’ 같은 기존 화풍 분류에 해당되는 않아야 하고  동시에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인공지능팀은 이러한 이론에 착안하여  ‘창조적 경쟁네트워크(CAN, Creative Adversarial Networks)’ 모델을 제안했다. CAN은 GAN 알고리즘을 예술작품에 좀 더 맞게 변형한 알고리즘으로 기존에 없는 스타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CAN은 위키(Wiki) 아트 데이터세트를 학습데이터로 이용하여 기존 그림과 그림의 스타일 분류 정보를 훈련한다. 위키 아트에는 15세기부터 20세기 사이 예술가 1,119명의 작품 이미지 81,449장이 25개 예술 스타일(추상표현주의, 바로크, 입체주의, 인상주의, 야수파,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등)로 분류되어 있다. (김전희 외)


창조적 경쟁네트워크(CAN, Creative Adversarial Networks)의 구조 (Ahmed Elagmmal et al.)


CAN은 GAN과 마찬가지로 분류자와 생성자 두 개의 신경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신경망은 각각 두 가지 일을 부여받는다. 먼저 분류자 신경망은 하나의 이미지가 들어오면 그 것이 기존에 학습데이터로 훈련한 이미지와 같은 인간 예술작품 이미지인지, 아니면 생성자 신경망이 만들어낸 이미지인지를 판별한다. CAN의 분류자 신경망은 GAN과 달리 한가지 일을 더 하는데, 바로 입력된 이미지가 훈련 데이터의 예술 스타일 25개 중 어디에 속하는지 분류(Art Style Classification)하는 일도 수행한다.

생성자 신경망도 두 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일이다. 생성자 신경망은 훈련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기에 훈련 데이터 이미지를 직접 변형하거나 혼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다. 다만 분류자 신경망으로부터 자기가 만든 것이 예술작품으로 분류되었는지, 아니면 분류자를 속이지 못해 예술작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는지에 대한 피드백만 받는다.

생성자 신경망의 또 다른 한 가지 일은 자신이 생성한 이미지가 분류자 신경망의 의해 기존 25개 예술 스타일로 분류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즉 기존 스타일과 전혀 다른 스타일 모호성(style ambiguity)을 생성하여 분류자를 속이는 일을 한다. 기존 스타일과 얼마나 비슷한지에 관한 분류자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생성자는 더욱더 정교한 모호성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두 신경망이 경쟁은 인간의 예술작품과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기존 인간 예술 작품 스타일과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는데 기여한다. CAN 신경망은 인공지능 그림이 기존 그림과 비슷한 확률적 분포를 가지게 해서 사람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이처럼 기존 작가의 기법을 모방해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생성하는 CAN 방식은 추상화의 경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러트거스대학 디지털인문학연구소가 CAN이용해 만든 작품


인공지능 아트, 기술인가, 예술인가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하고 학습하고 또 영감을 얻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만의 창의성을 증명할 시대가 왔다며 환호하는 사람들과, 인공지능 아트는 인간이 선택한 학습 데이터를 훈련한 것일 뿐 스스로 만들어낸 창의성으로 볼 수 없다는 사람들이 뜨거운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인공지능 아트는 예술인가?’에 답하려면 몇 가지 우선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첫 번째로 이 질문 자체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이다. GAN, CAN 같은 우수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계속 등장하지만 인공지능은 본질적으로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의 핵심은 미메시스(모방)다. 그래서 ‘인공지능 아트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일상 언어문법을 오독한 데서 오는 가짜 물음에 불과하다. 즉, 언어의 조합은 되지만 올바른 질문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만일 사자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비트켄슈타인의 말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의 문법을 흉내 낸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통과해야 할 질문은 ‘미메시스가 예술의 본질이 될 수 있는가?’이다. 들뢰즈는 예술 창작은 순수감각을 화폭에 구현하는 것이며, 순수감각을 화폭에 구현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기존 지식을 뛰어넘는 왜곡을 감행할 수 있어야 하며, 우연적 요소들과 비유기적 생명의 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신체적 감각과 이를 감상하고 판단하는 직관적이고 지성적인 사고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우연을 대처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인간처럼 우연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도 없다. 우연을 조절할 수 없는 알고리즘은 다만 불규칙하게 새로운 이미지를 확률적으로 생성하고 판별자(Discriminator)로부터 결과를 피드백 받을 뿐이다. 언젠가 우연에 관한 조건을 반영한 알고리즘을 개발하더라도 인간을 모방하는 알고리즘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모방하는 기계가 만든 ‘인간이 그린 것처럼 보이는’ 것을 새로움의 한 영역으로 포함하여 예술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전에는 미메시스하는 인공지능 작품이 예술 본성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음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일 것이다. 인간처럼 생각하거나 인간의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출현 가능성을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특이점은 인간의 기억, 의식, 마음에 대하여 완전한 이론과 검증된 실험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아직까지 기억, 의식, 마음, 뇌의 작용에 관한 복잡성은 커다란 미지의 영역에 있다. 가령 인간의 의식과 기억이 저장되는 공간이 시냅스인지, 뇌세포인지, 아니면 전기적 신호의 순간적 연결들 속에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뇌에 대한 온전한 작동원리를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인공지능은 불완전한 인간을 닮은 실험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어느 날, 인공지능이 특이점에 정말로 도달해 버린다면 그것이 과연 인간의 영역이 될 수 있을까. 기계가 인간계를 넘어섰다는 의미는, 마치 개미가 인간의 손가락 놀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기계가 드디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실 ‘인간처럼 생각하기’라는 말도 앞서 언급한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가짜 문법’이다.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처럼 생각하기’에 도달해야, 그래서 인간 언어를 초월해야 비로소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만들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계가 흉내(미메시스)낼 수 없는, 좌절(네메시스)할 밖에 없는 ‘인간의 고유성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결국 인공지능 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물음이다. 기계와 대별되는 인간의 고유성은 바로 창발하는 인간, 의식(기억)하는 인간, 그리고 협력하는 인간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창의성과 의식(기억)을 완전하게 밝힐 수 있다고 믿지만 어쩌면 이는 영원히 미완으로 남을지 모른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가상공간에 있는 버그들의 집합인 그(the One)가 영원한 윤회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 고유성에 관한 유일한 발견이 있다면 인간은 협력을 통해 더 창조적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기계들도 서로 협력하며 진화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다른 인공지능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반응하며 수정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아직까지 실험정도 수준이다. ‘인공지능에게 예술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탈알고리즘하며 서로 협력하는 성질을 가진 인공지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맞닿아 있다.


인간의 호기심, 창의력, 혼과 생명을 표현하는 콜라보

우리는 현재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에 감탄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예술 활동과 새로운 관계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공지능 엔진이 큰 발전을 이루어도, 인간 예술가의 고유 영역인 호기심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호기심은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다. 인공지능 아트는 이러한 인간 예술가의 운명을 조력하고 협업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사진이 특별한 예술 장르로 정착했듯이 학습 알고리즘 기반의 인공지능 아트 역시 인간의 혼과 생명을 표현하는, 혹은 흉내 내는 예술 장르로 안착할 것이다. 처음 사진기가 나왔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도 지금과 비슷했다. 19세기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세상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화가만이라는 믿음은 뒤집혔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화가의 기술이 결코 사진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으나, 화가의 영역은 사진의 영역과 다르다는 것이 곧 증명되었다. 화가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심상에 집중했고 형상을 분해, 결합, 파괴해 가면서 새로운 미술 사조를 이끌었다. 바로 현대미술이 출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Commune with…. AI화가인 ‘이메진 AI’와 극사실주의 화가인 ‘두민’의 협업 프로젝트


그런 측면에서 인공지능 아트는 새로운 매체로서 예술가에게 창의적 발상을 돕는 신선한 자극제이자 창작 노동을 줄여 주는 조력자이다. 가령 인공지능 화가가 특정 키워드를 학습해 추상적인 밑그림을 그려내면 인간 화가가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 작가와 인간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하며 만든 예술 작품이 더욱 많아지고 다채로워지기를 희망한다.


[참고]

1. Ammed Elagmmal et al. CAN:Creative Adversarial Networks Generating “Art” by Learning About Style and Deviating from Style Norms, 8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ational Creativity(ICCC), Atlanta, GA, June, 2017

2. 김전희, 김진엽,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창작: 들뢰즈의 예술론을 중심으로 예술과 미디어, 2020, vol.19, no.2, pp. 81-112

3. 박설민, AI, ‘예술’의 영역을 정복할 수 있을까, 시사위크, 2020.9.7.

4. 장준혁,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 GAN: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삼성 SD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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