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감옥

by 김헌

당신은 신이 있다고 믿는가? 신이 존재하고 있고,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거나 준비한 계획을 이루려 한다면 신은 분명 나를 내게 가장 합당한 곳으로 보낼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이미 그 자리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그리움에 울먹인다. 혹은 가까이 앉아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을 짓고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 자리가 시간이다. 그렇게 느끼는 시간을 쌓아 우리가 원했던 자리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고 울고 했던 시간의 기억들을 추억이라고 말한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통속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가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 시간을 먹여 살리는 것은 추억이다. 하지만 추억이면서 추억이 아닌 것도 있다. 지나간 과거, 과오로 남아 있는, 아프게 병들었던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가장 고통스럽게 되돌아보는 시간은 만델라가 이야기한 것처럼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개시하던 바로 그때, 가장 낙담하는 순간으로 찾아온’ 시간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그 순간이 비록 씻을 수 없는 실수로 남아 있다고 해서, 내게 ‘인간적 약점이 되었다고 해서 겁을 먹고 싶지는 않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내일조차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면 내일이 근심할 것이다. 그날, 미래의 그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 피할 길도 마련될 것이다. 신이 있다고 믿으면 신이 있기 때문이고, 믿지 않더라도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이들의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곧 자유의 감옥이다. 이런 사실을 현실로 인식해야 한다. 직시해야 된다. 이렇게 자유 속에 갇혀 있다는 인식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써 내가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는 사실과 터무니없는 자라는 사실과 그동안 태만히, 한가롭게 살아온 나를 볼 수가 있다. 지금 내가 선 자리, 자유의 감옥 속에서 내면의 힘을 키우고 나면 나의 두려움과 고통, 외로움과 좌절, 죄책감과 타인이 던지는 따가운 시선쯤은 눈 한번 깜빡이고 나면 잊힐 티끌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격리 혹은 고립된 시간을 고마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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