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기억

by 김헌


지금 나의 현재에 관계하는 사람, 상황, 고통, 즐거움, 환경, 희망, 기쁨, 슬픔, 기대, 실망, 아픔, 좌절, 축복 등. 이런 소소한 것(하긴 그 소소한 것들이 삶의 전부다)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특히 사람의 본모습은(성품, 인성, 습벽 등)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후라야 알 수 있다.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으로만 남아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처음과 끝이 같거나, 다르거나 결국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것들을 잊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각자의 삶에서 현재의 나에 관계하는 그 모든 소중한 소소한 것들을 기록해 두지 않는다면 어떨까. 아마 기억되어진 기억 속에 온전하게 보관된 것이 남아 있을까. 왜곡되지 않은 삶의 편린들. 아프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건강했던 이파리들. 가늘고 약한 줄기로 서서 바람에 흔들리며 버티고 살아낸 시간. 그래서 제법 나무다운 모습이 된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걸음의 발자국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품고 있던 표현되지 못한 사랑이 무관심이나 폭력으로 기억되어져 있지 않은가. 고향집을 찾아갈 때면 해돋이처럼 뜨거웠던 엄마의 눈물이 외로움이 아니라 반가움으로 다시 포장되고 있는 것은 않은지 알 수 없다. 아니 모른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이 만들어둔 기억의 진실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기억을 토대로 지나온 시간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오류가 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해, 편견, 미움, 분노 이런 단어들의 언저리에 또아리를 튼 기억을 지워야 한다. 다시 찬찬히 기억을 되살리며 숨어있던 의미와 작은 단서라도 찾아 다시 써야 한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상자 속에 든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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