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고요함에서 시작되고 존재하리니, 붉은 꽃눈에 붙은 저 눈부신 햇살도 그러하리.
나는 먼 곳에서 왔고 또 먼 곳으로 가리니. 나는 눈을 감고 더듬으며 걷는 것. 아직 아무도 그 길에서 돌아온 자를 본 적이 없고, 바람이 고요한 틈을 벌려 세계의 등허리에 닿는 것처럼 누군가가 내 어금니 속에 달콤한 꿀의 말, 꿀 송이의 언어를 넣어줄까.
세계가 고요함으로 멸절하리니, 그 어둠은 손에 잡히고 별은 멀리 물러나 우리 등을 두드리며 서 있겠지.
고요가 너무 멀다. 세상의 소리와 말이 들리지 않을 때, 그 하염없이 둥근 길을 굴리는 바람이 잠잘 때, 우리가 간다. 어디든 간다. 고요가 내 이름 속에 둥지를 틀고 둥지 위에 넓은 그늘을 채우는 날개를 본다.
세상에서 끊어져 나온 고요함이 수감되어 있는 우물. 마른 공기가 우물에서 나와 젖은 고요함을 가라앉힌다.
보라, 눈을 들어 보라.
세계는 아직 여물지 않은 말랑한 구슬, 빛깔도 윤택도 새겨지지 않은 돌, 하얀 돌이다. 그 어디에도 새겨질 수 없는 이름이 고요의 중심이고, 무겁고 긴 시간이 된다. 지금 고요와 침묵이 내 오른편에서 마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