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모래성 03화

하늘과 발바닥에 구멍이 뚫린 날

by 김흑곰

그날은 세상이 이럴수 있나 할 정도로 뭐든 꼬이는 날이였다.


왜 다들 뭔가 다 꼬이는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분명 핸드폰 알람도 설정했고 충전도 해 놓았는데 하필 콘센트가 빠져서 충전이 안 되고

핸드폰이 꺼져서 알람도 못 듣기도 하고


헐레벌떡 뛰어나가다 발목을 삐끗하기도 하고


겨우 도착했지만 결국 지각을 해서 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이상하게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가

점심으로 먹으려고 했던 김밥을 늦은 오후나 돼서야 생각이 났던 그날.


일기 예보에서 말한 대로 오후가 되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꽤나 많은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좀 빠졌고 계산대에 앉아서 조용히 비가 내리는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난 그때가 돼서야 유독 한쪽 발바닥이 축축하다는 걸 느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신발 밑창이 다 닳아서 구멍이 나 있던 것이다.


“아…. 이거 산 지 한 달도 안 된 건데….”

청과점에서 일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최소 만 보 이상은 걸어 다니게 된다.

그래서 신발 밑창이 자주 닳아 버리곤 했는데 지금 신은 신발은 산지 한 달도 안 된 신발이었다.


“그래 뭐 싼 게 비지떡이지….”

그렇게 혼잣말하다 뭔가 울컥했다.


나름 바쁘고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 살았는데 남들은 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시장에서 밑창이 다 뚫리는지도 모르는 신발이나 신고 다 식은 김밥이나 먹고 있으니.


내가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밖을 바라보다 아침에 우산도 안 챙겨 온 것이 생각이 났다.


“진짜 최악이네”

이러면서 핸드폰을 들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여보세요?”


“어 엄마 그 있잖아 나 우산이랑 슬리퍼 좀 가져다줄래?”

“아침에 안 챙겼어?”

“어 늦어서 뛰어오느라 깜빡했어.”


“슬리퍼는 왜?”


“아 신발 밑창이 또 닳아서 구멍이 나서 양말도 다 젖어버리고 난리가 났네”


“벌써?”


“그렇지 뭐 이거 싼 거 산 거잖아. 뭐 어쩔 수 없지”


“흠….”


아주 짧지만, 잠깐에 정적이 지나고 엄마가 이내 말했다.


“그건 네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야”


“어?”


평소에 낯간지러운 말을 잘 하지 않는 엄마가 저런 말 나한테 해주신다는 것에 좀 놀랐다.


“그냥 그렇다고 우산이랑 슬리퍼 가져다줄 게 기다려”


“어 고마워”


전화를 끝내고 계산대에 앉아 있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그렇구나, 나 열심히 살았구나.


엄마는 그날 그 짧은 통화에서 아들의 힘듦을 알았나 보다.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 증거가 되었다.


엄마는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그 한마디로 어느 순간보다도 최악의 날이었던 그날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꽤 괜찮은 날로 기억되고 있다.


때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축축하고 초라했던 날을 햇살처럼 따뜻하게 바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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