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모래성 14화

귤 박스 안에 썩은 귤(10)

by 김흑곰

시간이 갈수록 나는 조난당한 배처럼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침몰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균열이었던 절망이, 어느새 배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커져버린 듯했다.


내 안의 어둠은 중력이 되어 나를 끌어내렸고, 그 무게는 주변 사람들의 맑은 공기마저 오염시켰다.


나를 둘러싼 이들은 점점 내게서 말을 걸 용기를 잃었고,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나는 매번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그들의 멀어진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또 나 자신을 향해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네가 문제야', '너는 혼자 남겨지는 게 당연해.' 자책은 나를 더 깊은 동굴로 인도했고, 나는 어둠 그 자체가 되어갔다.


스스로 만든 밀실에 갇혀, 바깥세상과의 접점을 모두 끊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깊고 어두운 감정의 바닥을 보면서도 나는 정작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외면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 무게를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혹시라도 지금보다 더 깊게 빠져버릴까 그게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어둠과 외면이 쌓여갈 무렵, 문득 머리를 꽉 채우는 섬뜩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생각이 찾아왔다.


너무도 명징하고 선명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경고를 울렸다.


'이러다 정말 끝이 나겠다.' 절벽 끝에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가장 깊은 바닥에서 끌어올린 마지막 한 줌의 용기로, 나는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누군가 혹시라도 내 통화를 들을까 봐, 목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나는 가장 조용한 새처럼 몸을 웅크린 채 속삭였다.


증상에 대해 설명할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그저 "제가 상담을 받고 싶은데요. 혹시 나중에 기록 같은 거 남지는 않을까요?"라는 말만 겨우 내뱉었다.


다행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답변에 나는 한숨을 쉬었지만, 예약을 잡고 전화를 끊은 후에도 의심은 멈추지 않았다.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떠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약한 걸까'. 불안은 내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온몸을 감쌌다.


진료 당일, 병원으로 향하는 그 시간 마저도 불안은 끈질기게 나를 잠식했다.


입구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밖에서는 낯선 세상의 불안이, 안에서는 나 자신을 향한 의심이 나를 붙잡았다.

도망갈까. 돌아설까. 수많은 갈등 끝에, 나는 드디어 무거운 문고리를 잡았다


.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진료실로 들어섰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어둠을 직면할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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