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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Jan 05. 2021

오늘 애들좀 재워줄 수 있어? 코로나 걱정 때문에...

간호사 이야기



© franciscoegonzalez, 출처 Unsplash



2월부터 시작되었던 코로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이러다 말겠지, 희망을 걸었으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지고만 있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 보다 코로나에 아주 살짝 덜 민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봐주지?"

"우리 아이들까지 걸리면, 유치원에 소문이 나겠지?"

"휴유증이 장난 아니라던데"

"내 딸들이 아픈 꼴은 절대 못 봐"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신랑과 나는 사회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염병도 무섭지만, 생계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이다.


물론 코로나 환자를 받거나, 코로나 관련 병원은 아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를 걸린 환자들을 위해, 힘들게 방호복을 입고 일하는 그런 상황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아니다.


"코로나와 싸워 주시는 의료인들 정말 감사합니다"


가끔 블로그 이웃님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끈거리고 부끄럽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방호복을 입고 힘들게 일하시는 의료인들에게 괜스레 죄송스러워진다.

더운 한여름에는 탈진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방호복을 입고 일하신다는 뉴스를 보고, 정말 많이 안타까웠다.



3월, 한참 중국발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을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 오신 환자분이 입원을 하셨다. 중국에서 한국에 온 지는 약 20일이 넘었을 때였다.  코로나가 터진 그 유명한 지역과, 심지어 이름도 비슷햇다. 

그때 부터 우리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환자분이 수술을 하고 이틀 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수술을 하고 열이 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 흔한 일이, 코로나 시대에는 그냥 넘겨서는 안될 일이었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솔직히 너무 두려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나는 상상 속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있었다.

그 중국에서 온 환자분이, 열이 난다고 해서, 코로나 환자라는 확신도 없었는데, 나는 스스로 확신했다.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은 해야 했기에, 그 환자분을 대할 때는 KF94 마스크를 코까지 꽉 덮어쓰고 일했다.


그 환자분이 열이 많이 났던 날, 나는 일을 하고 밤 10시에 퇴근을 했다. 그런데 집에 가기가 무섭더라.

토끼 같은 딸들이 엄마가 언제 오나,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텐데,

혹시 내가 잘못되면...?


퇴근길에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오늘 내가 애들이랑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아"

"미안한데, 이틀만 엄마가 아이들을 봐줄 수 있을까?"

"환자분이 열이 많이 나는데, 내가 조금 걱정이 돼서.."


이렇게 얘기하니, 친정엄마는 더는 묻지 않고, 알겠다고 하셨다. 이틀 동안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가끔은 나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 집에서 차한잔 마시면서 책도 읽고

노트북도 실컷 해야지. 생각해 왔었지만, 막상 아이들 없이 집에서 혼자 자려니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멍했다.


신랑도 마침 야간 근무이고, 나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 중국에서 오신 열이 났던 환자분은, 단순히 수술 후 CRP (염증) 수치가 올라가서 열이 났던 거였고, 코로나는 아니었다.

괜히 아무 잘못 없는 환자분을 속으로 원망했었다


"왜 이 시기에 수술을 하러 와서"

"왜 우리 병원에 입원을 했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환자분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나는 건강 염려증이 있다.

위암의 가족력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몇 년 전 수술을 받았기도 했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속이 안 좋으면 바로 가서, 위내시경을 받고, 배가 아프면 바로 복부 시티를 찍는 그런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코로나.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졌다.

너무 무서웠다. 하루하루가 걱정의 연속이었다.


병원에서 손을 일하면서 20-30번씩 씻었던 것 같다. 급기에 손등에 살이 벗겨지고, 따가워서 로션을 바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아이들을 못 보는 거야"

"나만 아프면 상관없는데, 우리 애들까지 아프게 되면 나는 평생 죄인이야"


매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손을 열댓 번도 넘게 씻고, 마스크가 벗기 싫어서, 

밥도 물도 먹지 않고 꼬박 8시간을 일하고 퇴근했었다. (물론 지금은 너무 잘 먹는다)


그 후로도, 열이 많이 나는 환자가 몇 명 더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미안해. 오늘도 애들 좀 재워줄 수 있어?"

"내일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아"


퇴근을 하는데, 딸아이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6세나 된 딸이, 내가 오늘 오후 근무여서 10시에 퇴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할머니댁에서

엄마 없이 자야한다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사실 코로나가 일 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이제 무뎌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무섭다

가끔은 나 혼자 증상 놀이를 하기도 한다


" 목이 따끔하고, 콧물이 나오네"

" 왠지 으슬으슬 춥고 오한 기운도 있는데"

" 내 동선은 집이랑 병원뿐인데?"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나뿐만 아니라, 내 직장 동료들, 환자들 그리고 가족들, 친정 부모님까지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요양병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집단 환자들이 속출하면서, 병원 전체를 코호트 격리하는 곳이 많이 지고 있다. 그 안에 계신 간호사 의사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 줄 안다.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엄마가 요양병원 간호사인데, 코로나 환자들과 뒤엉켜, 방호복을 입고 하루에 24시간씩 일한다.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 일 텐데....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실까.


나는 열나는 환자만 봐도, 이렇게 겁이 나는데, 확진자분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견디시는 게 대단하고, 한편으로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게 죄송스럽기도 했다.


의료인인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거니까.

3일 쉬는 내내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지속해야 될까?


큰 욕심도 없다. 그냥 예전처럼 마스크 없이, 직장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얘기하고, 아이들과 마스크 없이 동네 산책 하는거... 내가 원하는건 그것 뿐이다.


PS. 코로나를 위해 열심히 싸워 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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