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 정도 가요
지난 주말에 시댁이 있는 남프랑스에 다녀왔다. 왕복 거리는 1100km. 차로 쉬엄쉬엄 운전해서 갔다 왔더니 11시간 남짓 걸렸다.
남편은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해서(무서워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한국에 사는 동안은 3-4년에 한 번 프랑스에 올까 말까였고 지난 3년간은 팬데믹을 핑계로 아예 발길을 끊었다. 그러던 아들이 조금 멀긴 하지만 같은 나라 안에 살고 있으니 시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척에 있는 그가 얼마나 보고 싶을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아들과 거기다 한술 더 뜨는 며느리는 지난 한 해동안 딱 한 번 남프랑스에 내려갔다. 그 사이 시어머니는 세 번 정도 우리 집에 다녀가셨고,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언제 내려올 거냐는 가족들의 재촉에 우리는 뭉그적 거리다가 3월 초가 되어서야 길을 나선 것이다.
나한테는 고양이들 떼어 놓고 며칠 동안 집을 비우는 것이 내키지 않다고 했지만 왕복 11시간이 넘는 장거리를 나 혼자 운전해야 된다는 것과, 기차를 타기엔 너무 비싸다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벌이 가정이 되고 난 뒤로는 돈 쓰는 걸 극도로 조심하는 그의 성격에 왕복 수 백 유로에 달하는 기차표 가격도, 장거리 운전하기 힘드니 제발 운전면허 좀 따라는 나의 잔소리도 부담스러웠으리라.
나야 쉴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혼자라도 기차 타고 남부에 다녀오라고 해도 굳이 꼭 같이 가야겠다니 별 수 있나. 이 한 몸 희생해서 운전대를 잡아야지. 친정 식구들한테 남편이 운전을 안 해서 너무 피곤하다. 운전면허 좀 땄으면 좋겠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고, 우리 집도 아빠는 장롱면허에 엄마가 평생 운전을 하셨는데 내가 투덜거리는 걸 다 듣고는 아빠가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그렇다고 너무 구박하지 마라"
와.. 아빠.. 사위사랑은 장인이야? 딸내미 고생하는 것보다 딸이 사위 구박할까 봐 걱정되냐고! 생각해 보면 본인 닮아 불같은 딸내미 성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 먼저 단속 치신 듯..
그전까지는 나 혼자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어디 갈 때마다 짜증이 났었는데 아빠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본인이 그렇게 싫다는데 너무 잔소리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싶어서 요즘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번에 시댁에 갔더니 오히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이 이상한 애랑 같이 살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용감하구나"
라는 이야기를 하시지 뭔가. 사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남편의 사촌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듣긴 했다. 저 인간 성질머리가 대단해서 결혼 못할 줄 알았다고..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들 할 것 없이 자기 자식들에 대한 객관화가 어찌나 잘 되어있는지. 프랑스에 내 편 들어줄 가족도 없는데 시댁에서 남편 흉을 같이 봐줘서 그런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주말이었다.
남편은 딸만 있는 집 첫 째 딸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남아 선호 사상이 뚜렸했던 그 시절에 그것도 이탈리아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남아 선호사상이 정말 심했다고 한다)에서 이민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첫 손자라 또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겠는가. 가족들 말에 따르면 그의 말이 곧 법인 집안에서 소황제처럼 자랐다던데. 어린 사촌들은 그에게 차마 대들지도 못하고 자랐다고 한다. 그런 그가 K-장녀를 만나는 바람에 내 동생과 바통터치하며 내 심부름을 하고 살게 될 줄이야 (시어머니는 남편이 나한테 물 떠다 주는 거 보고 기겁했었다).
여하튼, 이번 시댁 나들이는 장거리 운전인 것도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허리와 무릎이야 어쩔 수 없이 좀 아팠지만 남편과 둘이서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라 우리가 나눈 대화만 정리해도 브런치 글 몇 개는 쓸 수 있을 정도. 이제 날씨도 풀리고 해도 길어졌으니 종종 가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