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관광 - 시골 편
파리에서 사흘간의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샹베리로 내려왔다. 우리 집에서 파리에 가려면 리옹 역에서 기차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기는 하지만 리옹역까지도 기차를 타거나 한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라 그나마 한 시간 이내인 샹베리 기차역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지나가는 택시도 없는 시골에 살고 있으므로 기차역까지 택시를 이용한다면 몇백 유로가 나올 것이라 차를 몰고 가서 사흘간 기차역에 딸린 주차장에 세워 두었는데 주차비가 50유로 정도 나왔으니 이 정도면 선방했다.
파리에서 샹베리까지 TGV로 3시간을 자다 깨다 오는 길에는 회색 빛 파리와는 달리 초록초록한 들과 산이 이어졌다. "이 시골 냄새를 좀 맡아봐!"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이랑 엄마는 파리 백화점에서 체력을 소진했는지 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잠을 잤다.
샹베리 역에 저녁 8시쯤 도착했는데, 세상에.. 역내 마트며 화장실을 19시까지만 운영하네..? 다니는 사람이 많은 리옹역은 밤늦게까지 운영하는데 역시 소도시. 동네가 귀엽다는 엄마와 동생을 재촉해서 차에 태우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일몰 시간이 9시 반이라 해가 떨어져 어스름히 짙어지는 시골길을 달리는데, 창 밖을 구경하던 동생 왈 "언니, 여긴 길이 좀 좁네?" "어? 여기 큰길인데?" 대구에서 나고 자라서 서울에 사는 동생이 이런 작은 길을 볼 일이 있었겠나. 프랑스는 고속도로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1차선 도로인 것을. 그나마 차선이라도 그어져 있으면 다행이지..
한참을 달려오니 이제 보이는 것은 들판과 소떼뿐. "이 동네는 소가 흰색이네?" 작년 봄 처음 이사 와서 내가 놀랐던 포인트에서 똑같이 놀라는 가족들. 작년 이맘때는 날씨가 참 좋았는데 하필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날도 좀 쌀쌀해서 여기저기 많이 다니지 못하고 집 주변에서 쉬기만 했다. 원래는 몽블랑도 가보려고 했는데 에귀뒤미디 전망대는 6월에 오픈하는 것 같고 날씨도 오전에만 반짝 해가 나고 오후에는 내내 흐린 뒤 비.
동생은 매일 아침 남편과 산책 겸 동네 유일한 빵집으로 빵을 사러 다녀왔다. 아침은 동생이 사온 빵과 과일을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대체로 하루에 한 끼는 외식을 하고 한 끼는 저렴하고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먹었다.
출국 전날에는 20유로짜리 닭을 사서 백숙도 해 먹음. 우리가 마늘이며 닭을 들고 씨름하고 있으려니 엄마는 닭이 뭐 이렇게 크고 비싸냐고 놀랐는데, 돼지고기 삼겹살도 1kg에 19유로면 사는데 닭 한 마리가 20유로니 비싸긴 하지. 사실 나도 가격 보고 놀랐다. 근데 이 근처가 닭이 크고 맛있기로 좀 유명하긴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냄비에도 한 마리가 다 안 들어가서 이래저래 잘라 솥 두 개에 나눠 삶았다. 마늘은 동생한테 껍질 좀 벗기라고 넘겨줬는데 "헐. 이게 뭐야? 나 마늘 껍질 처음 벗겨봐. 한국에선 까놓은 거 사서 쓰니까" "여긴 그런 거 없어. 다 까서 써야 됨. 근데 껍질 채로 파니까 오래 보관할 수 있어"
뭐랄까. 시골에서의 일주일은 관광도 아니고 그냥 휴식이었던 것 같다. 전 날 저녁 구매한 깐 마늘과 다듬은 야채가 다음날 현관에 도착하는 도시에서 살던 가족들의 자급자족 시골체험. 우리가 사는 곳은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밤하늘에 별이 빼곡한데, 별구경은 좀 하고 갔는지 모르겠다.
시골 살이 한 달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