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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Oct 02. 2022

시골의 불금

동네의 하나뿐인 바에서 생긴 일



힘든 한 주였다. 생산 빵꾸날까봐 전전긍긍 월요일부터 두통약 먹으면서 한주를 시작했고, 주중에는 타이레놀로 버텼다. 그것도 목요일쯤 되니 어떻게든 되겠지 안되면 말고 정신을 다시 장착하고 좀 살만해짐.


금요일 저녁 7.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기 위한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주최자는 나랑 친한 구매팀의 바이어로 이렇게 한 번씩 우리가 이룬 걸 축하하는 재미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한국사람 같은 소리를 하길래 반가워서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갔다. 한국에서 회식을 즐긴 건 아니었지만 친한 동료들이랑은 종종 따로 마셨었고, 회식 개념이 우리랑 다른 프랑스에서는 먹고 마시면서 노는 게 그리워지던 차라 금요일 저녁이라는 시간이 상당히 생뚱맞지만 그러마고 했다.


장소는  지역의 하나뿐인 스포츠 바 Bar. 술이랑 간단한 안주 겸 식사도 팔고 금요일에는 로컬 디제이를 불러서 흥을 띄우는 그런 곳이다. 큰 도시에나 있을 법한 바가 이 시골 동네에 오픈을 했으니 미어터지는 것은 당연지사. 우리 회사나 근처 회사에서 퇴근 후에 간단하게 맥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죄다 여기에 모이는 것 같다.


맥주랑 나눠먹을 샤퀴 테리/치즈 플래터를 시키고 본격 수다가 시작되었다.


한국이랑 프랑스의 회사 문화 차이라던지, 프랑스 공교육의 문제점이라던지, 다른 국가에 출장 갔다가 생긴 당황스러운 일이라던지.. 업무 이야기 말고는 다 한 것 같다.


팬데믹 전에는 출근하면 동료들이랑 비즈 하느라 업무 시작하는데 30분 걸렸는데 요즘은 주먹 인사나 악수로 하니까 효율적이긴 하지만 뭔가 아쉽다던 그들. 일상에서는 비즈가 돌아왔어도 회사에서는 앞으로 영영 비즈 안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 다정하게 비즈 하고 회의시간에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면서 싸우면 어색하지 않겠어?


글로벌 기업이라 영어 때문에 당황했던 에피소드도 다양했다. 다양한 국가의 동료들이랑 일하다 보니 국가별로 영어 악센트가 심해서 톤에 적응하는데 한참 걸렸다는 .


못알아 들으면서 끄덕끄덕한 경험 
다들 있잖아 그치?


예전 우리 글로벌 보스가 프랑스 인이라 신년사나 이런 거 할 때마다 영어로 하는데도 영어 자막이 필요했었다고 하니 (프랑스도 영어 할 때 강한 억양으로 유명하다) 자기들은 너무 잘 들려서 좋았다며.


프랑스에서도 학교에서 영어교육은 문법만 집중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영어권 국가에 가보지도 못한 프랑스인 교사가 프랑스 악센트로 영어 가르치는 바람에 정규 교육 다 마쳐도 영어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다들 한탄함. 요즘 세대는 교육방식이 좀 다르다던데 이야기 들으면서 한국에서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영어교육이랑 똑같아서 소름 돋음.


맨날 문법 시험 치고 회화 시간에는 “Where is Brain?” “Brain is in the kitchen” 이 딴 거나 배우면서 학교 다니는 내내 브라이언만 챙기다가 졸업하고 사회 나가서 영어 쓸 때가 되면 정작 말문이 막힌다던. 다른 나라에서 온 동료도 빵 터지면서 자기네는 Paul이라고. 야 우리 땐 Tom이었어..


배터지는 줄

수다 떨면서 맥주 마시고 샤퀴 테리 먹고 배불러 죽겠는데 주방에서 피자 나가는 게 자꾸 보이니까 궁금한지 동료들이 맛 좀 보자며 피자를 시키기 시작했다. 배부르니까 조금씩 나눠먹을 정도로만 시킨다더니 우리가 5명인데 피자를 4개 시킴..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하고 모여서 맥주 마시는 일이 익숙해진 터라 주최자가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걸 깜빡하고 집에서 저녁 먹고 나갔는데 이게 뭐야.


꾸역꾸역 다들 나름 열심히 먹었는데도 결국  판이 남아서 포장을 했는데 아무도 안 들고 가려고 해서 (건물 밖으로 다들 냅다 ) 결국 혼자 사는 동료가 울며 겨자 먹기로 들고 갔다. 마지막까지 큰 웃음 주고 헤어짐.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모임 이거 괜찮은 것 같다. 프랑스에 온 뒤로 가장 크게 웃은 날인 듯. 일이 지랄 맞아도 이렇게 맘 맞는 동료들이랑 으쌰 으쌰 하는 재미로 회사 다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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